아니, 살도 빼셔야해요.
“아니요. 살도 빼셔야 해요.”
실로 5년 만에 재개한 운동이었다.
그렇다. 나.... 사실은 살 빼러 왔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 댄스를 완전히 그만두었었다. 다시 시작할 마음은 없었다. 당시엔 단호했다. 그런데 왜였을까. 둘째가 태어나고 나니 다시는 임신과 출산을 겪을 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어느 날 문득, 다시 춤이 추고 싶어 졌다. 아무 이유 없이...... 하긴, 언제는 이유가 있었나.
그런데 하고 싶다고 그냥 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장애물은 당연히 뱃살. 나는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무려 18킬로그램이 불어있었다. 욕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18킬로였다. 그리고 내가 추는 춤은 하필이면 벨리댄스였다. 밸리의 그 의상...... 물론 댄스 의상 중에 밸리가 가장 노출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노출 부위에 있었다. 밸리는 복부..... 바로 배를 오픈해야 했다.
이 뱃살이 어떤 것인가. 두피부터 발바닥까지 지방이란 지방은 모조리 다 들어내고 나서야 맨 마지막에 비로소 빠지는 부위가 아닌가. 다시 말해 벨리댄스를 하기 위해서는 다이어트를 적당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때도 나의 뇌보다는 손이 먼저 움직였다. 내 몸뚱아리는 생각도 안 하고 용인 버스킹에 덜컥 서류를 넣어버린 것이다. 물론 넣긴 신재희가 넣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합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팀은 경력도 전무하거니와 멤버도 둘 뿐인 초라한 듀오 팀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넣었다. 심지어는 팀명도 몇 초 컷으로 지었다. 그 팀명을 지금까지 쓸 줄 알았다면 좀 더 신중하게 지을걸.
그런데 덜컥..... 합격 통보가 왔다. 우리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왜지? 왜 합격한 거지? 왜 통과시킨 거지? 하지만 그 이유를 찾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냥 밸리라는 장르의 희소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 18킬로. 그 빌어먹을 18킬로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첫 공연 전까지 빼야 했다.
그래서 찾아갔다. 순환 운동.
순환 운동이란? 유산소와 근력을 미친 듯이 반복하는 시스템의 운동이다. 운동 기계들은 둥글게 원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우린 뱅글뱅글 강강술래를 하며 유산소와 근력을 한 시간 동안 무한 반복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하.
나는 지금까지 인성이 없었지 체력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 한 시간의 운동을 버티지 못하는 내 저질 체력이 참으로 생소했다. 나는 나의 5년간의 공백기를 카운트하지 않은 것이다. 허벅지가 자글자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으며, 숨은 내 가슴에서 턱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왜지? 왜 힘든 거지? 나는 왜때문에 이 지옥으로 다시 기어들어온 거지?
그래서 선생님께 이렇게 말해버렸다.
“선생님. 저 살 빼러 온 거 아니에요. 체력 기르러 온 거예요. 살살합시다.”
그렇다. 나는 그 5년간의 공백 동안 복부뿐 아니라 간땡이도 살을 찌웠다. 운동 선생님께는 게기지 말자. 이 룰마저 잊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아니요. 김국주 회원님. 살도 빼셔야 해요.”
지금은 나도 알고 있다. 운동 선생님께는 (뼈가 골절이 되지 않는 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분들이 정해놓은 그분들의 기준선을 결코 내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깝치면 깝칠수록 나만 x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사실은 체력을 기르려고 해도 저 짓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살을 빼려면 체력이 먼저 길러져야 한다. 다시 말해 체력 증진이 목적이건, 다이어트가 목적이건, 저 지옥의 코스는 피해 갈 수 없는 필수 코스라는 것이다. 그것도 그것이 첫 번째 코스이다.
그리고 두 번째 코스는 동작이었다. 5년 만에 처음 몸을 움직였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어?? 골반이 왜 안 돌아가지? 왜지?”
그 말을 들은 신재희가 말했다.
“언니. 근육 다 사라졌잖아. 당연히 골반이고 가슴이고 안 움직이지. 이 무근육 인간아.”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골반에 윤활유를 뿌려서 돌린 것이 아니다. 가끔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한다.
“우와, 밸리 하면 유연성 좋겠어요.”
물론 유연성이 좋으면 밸리를 하기에 더 유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유연성이 딱히 필수 덕목은 아니다. (내 유연성도 개똥이고...) 우리 밸리 댄서들에게 진정 필요한 덕목은 근력이다. 밸리 역시 엄연히 근육을 써서 추는 춤인 것이다. 근육이 없으면 그 어떤 동작도 불가능하다. 하여 우리는 여기서 다시 첫 번째 코스로 돌아간다. 지옥의 코스, 근력 운동.
마지막 코스는 안무다. 어제 먹은 저녁도 생각이 안 나는데, 5년 전 안무가 생각이 날리 만무했다. 안무 몇 개는 워크숍을 참가하여 배워왔다. 다시 말해 돈 주고 사 왔다. 그리고 몇 개는 예전 추억을 더듬었다. 이 안무를 외우기 위해서 하루 평균 2-3시간씩 춤을 춰야 했다. 당시에는 토리가 어려서 연습실에 데리고 다녔다. 춤을 추다 지쳐서 숨 돌릴 때마다 토리에게 분유를 먹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5년만에 아름답고 빡센 취미를 다시 시작했다.
덧붙1.
사실 댄스의 재개는 다이어트가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먼저 적어야 하지만, 이미 다이어트 관련 글을 한번 적은 적이 있으니 재탕 없이 넘어갑니다. 아래 클릭.
덧붙2.
순환 운동 센터는 이사를 하면서 그만두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운동에 푹 빠져있지요. 뮤직 복싱과 근력 운동입니다. 하여 몸치 아줌마의 댄스 시리즈는, 댄스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운동 이야기도 올라옵니다. 늘 (자신도 모르게) 소재를 주시는 울 운동센터 관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직접 전하진 않겠습니다. 조져달란 뜻으로 받아들이실 것 같아서...)
글이 올라오는 요일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1~11 화까지는
<몸치 아줌마의 아무튼 댄스 1 >
브런치 북에 실려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