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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ul 24. 2021

<살사댄스> 왜? 오빠가 어디가 어때서?!?

저는 아무나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만.


 다 그렇듯, 운동도 하다 보면 슬럼프가 온다.

 그 슬럼프란 놈은 중간중간에 툭툭 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1년 차, 3년 차에 강하게 온다. 하여 선수할 생각 아니면, 초반 성장 속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슬럼프를 넘기고 끝까지 하는 사람이 위너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있던가.


 벨리댄스 3년 차였다.

 이거라고 다를 리가. 역시 지겨워서 때려치우기 일보 직전 상태에 도달했다. 더 이상 혼자 추는 춤은 싫었다. 물론 벨리댄스도 군무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안무를 맞춰서 다 같이 혼자 추는 춤이 아니던가. 나는 파트너가 있는 춤이 부러웠다.

예를 들면 살사, 탱고… 이런 것들.


 하여 스포츠 댄스 학원을 등록했다.

 내 스승님은… 의외로 남자분이셨다. 응? 댄스 선생님은 당연히 여성이리라 생각했던 나의 좁디좁은 편견에 어퍼컷을 날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스승님은… 몸은 다비드상, 20대였고, 얼굴은 40대였으며, 실제 나이는 60대였다?!?!?

왓! 저게 가능해???? 실제 나이는 우리 아부지랑 동년배인데… 왜때문에 나보다 더 좋은 몸매를 가지신 걸까. 그때부터였다. 나의 의지가 활활 타오른 것은. 반드시 배우고 만다. 스포츠 댄스.


 처음 배운 댄스는 살사였던 듯하다.

 솔직히 잘 기억은 안 난다. 그리고 늘 그렇듯, 김국주는 이번에도 개판이었다. 환갑을 넘기신 스승님께서는 늘 20대의 김국주때문에 팔에는 힘줄이, 이마에는 핏줄이 서셨다. 일단 살사는 벨리댄스와는 많이 달랐다. 요즘 벨리댄스야 퓨전으로 많이 하니, 스텝도 많고 동작도 현란하지만, 원래 벨리댄스란 건 스텝이 그리 많지 않다.


하여 나는 골반을 틀어가며 찍어대는 현란한 살사의 스텝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 골반 쓰는 거야 내 전문이라 해도, 나머지는 완벽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스승님과 손을 잡고 살사를 추기 시작하면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다. 말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진짜로 내 것이 아니었다. 스승님이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지고, 돌리면 돌려지는… 줄 달린 인형 같은.

나는 누구이고,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날도 오르골 돌리 듯 돌려지던 날이었다.

 스승님께서 밀어서 밀렸고, 실수로 손을 놓치는 바람에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벽에 부딪친 탄성으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서 스승님 발 밑에서 발라당 엎어졌다. 마치 뒤집힌 호떡처럼. 젠장.


 스승님께서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시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목의 순금 팔찌를 푸셨다. 그리고는 명품 시계도 푸셨다. 그리고 반지를 빼셨다?!?

 아니, 뭘 그리 많이 푸십니까? 스승님… 혹시 저 패실 건 아니죠? 빡치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김국주, 일어나.”


 스승님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이 났고, 어금니에선 으드득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렇게 이를 악무신 스승님께 고강도 훈련을 받았다.


 그러길 두 달 후, 슬슬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벨리댄스는 열심히 배워서 대회라도 나가고, 공연이라도 한다 치지만 이건 어따 써먹을까?

그래서 스승님께 의문을 제기했다.


 “스승님, 우리 배운 거는 실전에 못 써먹나요?”


 잠시 정적. 스승님께서는 뭔가를 단단히 각오하신 듯 말씀하셨다.


 “김국주, 실전해보고 싶어?”


 그렇다. 이때… 어르신 스승님의 ‘실전에 투입된다.’ 는 말뜻을 헤아렸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살면서 뭔가를 헤아린 적이 있었던가.


 “네!! 실전 가고 싶어요.”


 덥석 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스승님께서는 우리 살사댄스 팸을  ‘태양자’ 라는 간판이 달려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저게 뭐지? 대중목욕탕인가?


 “태양자? 태양자가 뭐예요?”

 “응, 원래는 ‘태양장’ 이었는데, 예전에 태풍때문에 ‘ㅇ’ 이 떨어졌어.”


아. 그렇군요. 그래요… 그러면 ‘태양장’ 은 뭔데요?


 그리고 그곳은… 카바레였다. 

 허허… 이 나이에 카바레를 와보게 될 줄이야. 스승님 아니었으면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보겠습니까.


 카바레는 처음이었지만, 뭐 클럽이나 나이트나 카바레나 그냥 다 거기서 거기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홀이고 의자고 테이블이고 전부 텅텅 비어있었다. 뭐지? 스승님께서 전세 내셨나? 그리고 홀에선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드럽게 못 했다.


 “아니, 스승님. 저 가수요. 노래를 개똥같이 못 하는데요? 저래도 돼요?”

 “어… 가수 아냐.”

 “그럼요?”

 “여기 사장이야. 어… 박사장. 나 왔어.”

 

 왓더… 왜 사장이 노래를 해?

 아… 여기 우리가 전세 낸 게 아니라 그냥 손님이 없는 거였구나. 뭐… 상관없지. 우리는 사장님이 노래를 개똥같이 하든 말든 홀에 들어가서 늘 추던 춤을 췄다. 그리고 박사장님한테 쫓겨났다?!?!


 응? 뭐지? 왜지? 우리 뭘 잘못한 거지?

 기가 죽어 룸에 들어앉은 우리를 보고 스승님께서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늬들, 홀에서 뭐한 거야? 왜 박사장이 승질을 내?”

 “…… 춤췄습니다. 스승님.”

 “뭘 췄길래 그래? 박사장이 또라이들 데리고 나가라던데? 망할 놈… 손님도 없으면서.”


뭘 추다니요? 당연히.


 “…… 클럽 댄스요.”

 “하아…. 국주야. 살사 댄스 추고 싶어서 온 거 아냐? 얌전히 기다려봐. 내가 선생님들 불렀으니까.”


 왓?? 스승님들을 불렀다고?


 스승님께 호출당하신 다른 스승님들은, 내 스승님의 친구분들이셨다. 전부 스포츠 댄스를 20년 이상은 하셨다고… 하여 나이는 모두 내 스승님과 동년배셨다. 그리고 직업이 무려… 00 빌딩 건물주님, 00 병원 의사 선생님, 00 대학 교수님 등등…  바라보기에도 눈부신 전문 직업군들이셨다.

 와우, 우리 스승님 인맥 스케일 쩌시네.


 전부 우리에게 한 수 가르쳐주러 와주신 분들이었지만, 표정을 보니… 백퍼 억지로 끌려 나오신 듯했다. 아… 그렇지. 공사가 다망하실텐데 햇병아리들 상대하러 억지로 시간을 내셨을 테니.


 그런데 그건 그분들 사정이고, 난 춤만 배우면 되는 거 아닌가? 그나저나… 호칭을 어떻게 한다?

사장님이라고 하기엔 내가 직원이 되는 느낌이라 싫었다. 그렇다고 어르신이라고 하기엔 모두 젊어 보이셨다.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나는 나의 스승님이 아니면 절대로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스승님’은  나에게 최고의 존칭이다.

하여… 그냥 오빠라고 했다.

오빠
2. 남남끼리의 손아래 여자가 손위의 남자를 친근하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출처 : Duam 한국어 백과사전]

 뭐… 저 호칭은 사전상으로도 별 문제없어 보였다.

 그런데… 막상 그 호칭을 들으신 내 파트너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빠, 우리 살사 기본 스텝부터 갈까요?”


 그 말을 들은 내 파트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스텝은 엉망으로 엉키기 시작했다.

와… 이러시면 내가 곤란하지?


 “오빠, 댄스 20년 하셨다면서요?! 왜 스텝이 꼬여요? 아!! 거기서 골반을 빼시면 안 되시죠!! 허리 펴라고요!!”


그랬더니 내 파트너가 엉거주춤 허리를 폈다.


 “아니, 오빠!!!! 손 끝이 죽잖아요!!! 초보냐 아니냐가 손에서 판가름 나는 거 몰라요? 와… 이 오빠 엉망이네.”


 내가 아무리 살사 댄스에 관해서는 햇병아리일 지라도, 나름 벨리댄스를 3년이나 했는데… 상대가 누구 건 이 따위 기본자세는 용서할 수 없었다.

나의 파트너가 말을 더듬으셨다.


 “어? 네… 어… 근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아?? 파트너랑 춤추는 게 처음이시라고요?”

 “아니… 그건 아니고… 상대방이 이런…”


이런?? 아하!! 나 같은 인간이 처음이란 뜻이구나.


 “아!! 괜찮아요.”

 “……. 뭐가 괜찮…”

 “친해지면 익숙해지실 거예요. 첨엔 다들 그래요. 아!! 춤에나 집중해요! 또 손 끝!!”


 그 말에 내 파트너의 얼굴이 더 하얘졌다.

 와,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이라더니 피부 관리 하나는 끝장나게 잘하셨네. 그러나 그분은… 잠시 후 공사다망한 핑계를 대고 사라지셨다. 그리고 왜때문인지 스승님께서  빡치셨다.


 “야! 김국주. 이 또라이야!! 너 닥터 김한테 뭔 짓 한 거야??”

 “네?? 제가 뭘요? 스텝 맞췄는데요?”

 “다시는 이런 자리 부르지 말라고 씅내고 갔잖아!”

 

허… 내가 뭘 어쨌다고?!?


 “그 오빠 웃기시네?!? 왜 자기가 씅내요? 그 오빠 너무 못 하던데요? 저 파트너 바꿔줘요.”

  “뭐? 오빠? 오오빠?!? 너 닥터 김한테 오빠라고 했어? 아!! 그러니까 그 인간이 너더러 꽃뱀이라고 하지!! 아오!! 진짜 내가 너 때문에 제 명에 못 산다!!”


 제 명에 못 사시다니요. 무슨 그런 속상한 말씀을 하십니까. 그리고 그분이 진짜 꽃뱀을 못 봤나 봅니다.


 “아, 그럼 뭐라고 불러요?”

 “뭘 뭐라고 해?!? 그냥 선생님이라고 하면 되잖아!!”

 “허, 스승님! 저는 저의 스승님 아니면 절대로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스승님! 그건 스승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스승님!”

 “이 또라이가 뭐라고 씨부리는거여?? 예의!!?? 김국주 너!! 나한테도 스승님이라고 하지 마!!”


아니, 왜 호부 호스승을 못 하게 합니까.

그럼 뭐라고 불러요, 오빠?

 




덧붙1.


살사 댄스는 석 달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자의로 그만둔 건 아니었어요. 스승님께서 김국주를 gg 치셨습니다.


 “국주야… 너… 파트너랑 춤추는 거… 파트너한테 굉장한 실례야. 그냥 벨리댄스 하는 거 어떨까?”


 네, 쫓겨났습니다.

 하여 저는 지금도 벨리댄스를 하고 있습니다.

(저를 안 쫓아내신 다른 스승님들께 감사를…)


내 벨리 파트너 신재희와 단 둘이 연습 in 2021 6월

 “이거 한방에 성공하면 집에 가고, 틀리면 성공할 때까지 집에 못 간다.”


 이 말 한마디에 영혼을 갈아 넣었습니다.

진정 실제 공연 때보다 잘했네요. 공연을 잘하고 싶은 맘보다 집에 가고 싶은 맘이 더 컸나 봅니다.


레전드 영상 나왔다. 이제 집에 가자.

오늘도 수고했다.



 <40대 몸짱 시리즈>는 매주 목, 금, 토요일 셋 중 하루에 올라옵니다. 담엔 뭘 올릴까요? 우리 독자님들이 원하시면 제가 일일체험이라도 하고 올까 합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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