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 버거울 때

한숨 구멍 _ 최은영 글 / 박보미 그림, 창비

by 김영


송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어요. 속이 답답하고, 몸이 무거웠지요. 가슴속에 까만 구름이 잔뜩 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엄마, 아빠의 배웅을 받으며 새로운 유치원에 가요. 송이는 크게 한숨을 쉬었어요. “후.”

유치원에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새로운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에도 송이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한숨만 후유. 곁에 앉은 친구 아영이가 바람개비를 보여 줘도, 점심을 먹을 때도 한숨만 내쉬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한숨을 쉬어도 가슴속 까만 구름은 조금도 작아지지 않았고, 송이는 까만 구름 걱정에 한숨을 또 쉬었어요. 송이의 까만 구름은 결국 점점 커지더니 머릿속까지 차올랐어요. 그러다 갑자기 뻥! 송이 가슴에 커다란 한숨 구멍이 뚫렸어요. 한숨 구멍에서 까만 구름이 흘러나와 송이 머리 위에서 비를 뿌려요. 송이 얼굴 위로 눈물이 통통.

선생님이 다가와 송이의 볼을 어루만져 줘요. 친구 아영이가 다가와 바람개비를 전해 줘요. 그리고 유치원 문밖에서 엄마가 송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요.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던 송이는 포근한 솜털 같은 엄마 손길에 다시 웃을 수 있어요. 내일부터 송이는 괜찮을 것 같아요. 다정한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올 송이를 기다리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요.




이 책은 최은영 작가의 <그림책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을 읽고 난 뒤, 가장 궁금했던 그림책이었다. 작가는 편집자 출신이었는데, 기획 회의를 끝나고 한숨을 커다랗게 쉬자 동료가 책상에 구멍이 뚫리겠다고 말했던 경험에서 이 책의 글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마음대로 되지 않은 회의 시간, 피드백을 가장한 인신공격을 쏟아내는 상사, 내 능력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지시받을 때. 된통 깨지고 돌아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숨을 크게 쉬는 일 밖에 없을 때 말이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일이었겠지만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이해가 단박에 되었고, 그래서 어떻게 한숨과 구멍 이야기가 그림책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작가를 향한 내적 친밀감이 엄청난 상태라, 당장에 그림책을 구매해야만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가 이 책 작가의 후배 동료이며, 작가의 책을 추천했으며, 심지어는 <한숨 구멍>의 편집자라니. 내가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작가님은 나의 존재조차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작가님의 후배다. 왜냐면 나의 선배의 선배니까!)


그림책 표지 속 아이는 꼭 다섯 살 만보 같았다.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한숨을 쉬는 모습이 만보와 똑 닮았다. 만보의 어린이집 졸업과 유치원 입학의 순간이 떠올랐다. 어린이집을 졸업하던 날 나는 원장님, 담임 선생님 두 분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나의 초보 엄마 시절 가장 큰 지원군이었던 분들과의 이별이라니 눈물이 안 쏟아질 수 없었다. 반면 만보는 내 옷깃을 붙잡고 빨리 집에 가자고 성화였다. 이별의 감각을 모를 때이기도 했겠지만, 새로운 유치원에 간다는 것이 더 설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랑 헤어져서 슬프지 않냐는 내 질문에 만보는 유치원에 가면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유치원 등원 첫날, 셔틀버스에 발을 올리던 만보가 멈칫했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다시 내리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 물론 어림도 없이 엄마가 엉덩이를 밀어 올리고, 선생님이 손을 잡아당겨 버스에 태웠다. 만보는 약간 울먹이며 버스 자리에 앉아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날의 표정이 꼭 그림책 표지 속 송이 같았다. 곧 울 것 같은 눈망울에 입을 잔뜩 내밀고 있는 모습. 아마 그날의 마음도 송이 같았을지도 모른다.


만보와 이 책을 읽고 난 뒤, 만보는 자신의 마음에도 커다란 구멍이 난 적이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았지만 짐작건대 아마도 유치원에 간 첫날이 아니었을까. 커다란 구멍을 어떻게 메웠냐고 물어보자, 집에 와서 엄마가 꼭 안아 주어서 구멍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림책 속 송이처럼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만보에게 하지 않는 말이 있다. "괜찮을 거야." "금방 나아질 거야." 등의 겪어 보지 않았으면서 하는 위로의 말이다.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괜찮다는 말로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 가게 되거나, 낯선 곳에 만보가 혼자 있는 상황이 되면 이렇게 말한다. "무섭고 외로울 수 있어. 불안할 수도 있고. 그런 마음이 들면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이 상황을 당장에 고쳐낼 수는 없겠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까지 괜찮다는 말로 막아 버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올해 3월, 만보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와 새로운 유치원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만보가 다니는 유치원은 시골 작은 학교의 병설 유치원으로, 올해 유치원생이 만보 한 명이다. 등원 전날 밤, 만보만큼 나도 잠이 오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을 떨쳐 버리기가 어려웠다. 만보와 수없이 되뇌던 말, '혼자 있는 것이 어렵고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줘. 엄마가 다른 유치원을 알아볼게.'를 나 자신에게도 들려주고 나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입학식을 가는 차 안에서도 나와 남편은 만보에게 괜찮아라는 말 대신, 힘들거나 속이 상하면 꼭 말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혼자 참아내지 말고, 엄마와 아빠한테 쏟아내라고. 우리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당장 유치원을 바꿔 주지는 못하더라도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지내게 하지는 않겠다는 부모로서의 다짐이기도 했다.


3월은 어린이들에게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준다. 불안을 지나면 엄마, 아빠가 만들어 둔 안전지대가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면,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지내는 어린이는 없지 않을까.



카테고리: 창작 그림책 (국내)

추천 연령: 5세 이상 - 유치원 입학을 앞둔 어린이에게

관련 주제: 유치원 생활, 입학, 이사, 새로운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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