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간질 _ 서현 그림책, 사계절
머리가 간지러워 벅벅 긁었더니,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내‘가 되었네!
‘나‘들아, 함께 신나게 춤을 춰 보자.
엄마, 아빠, 누나,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지나자!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깊은 바다 건너 모험을 떠나자.
아, 그런데 머리가 또 간지럽네.
벅벅 벅벅!
오, 예!
더 많은 ‘나’들아, 신나게 춤을 춰 보자.
위이잉, 청소기 소리에 신나는 모험이 끝!
서현 그림책은 정말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이 그림책을 만보랑 처음 읽었을 때도, 어젯밤 오랜만에 꺼내 다시 읽었을 때도, 만보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어봤더니, “웃기잖아! 킥킥!“ 하고 대답한다. 앞면지에 멀뚱하게 서 있던 캐릭터들이 뒷면지에 다 같이 오예 하는 춤을 추고 있는 것까지 함께 본 다음, 만보는 혼자 한 번 더 읽겠다고 했다. 깔깔거리며 혼자 한 번 더 읽고 나서야 책을 내려놓았다.
아침에 침대 맡에 놓인 책을 치우면서 이 책이 왜 그렇게 웃겼을까 생각해 봤다. 물론 유머러스한 그림도 한몫했겠지만, 아마도 머리카락이 분신이 되는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재미있었던 것 같다. 머리카락이 내가 되다니! 그 많은 분신들을 만들어서 춤을 추고 모험을 떠나다니! 나에게 분신이 생긴다면, 모험을 함께 떠나는 것보다는 본체인 나는 쉬고, 분신들을 부지런히 일 시킬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결국 상상의 세계에서도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 버렸나 싶다. 서현 작가 안에는 어떤 어린이들이 살고 있길래,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해졌다.
만보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분신 속에서 본체를 찾는 일을 매우 즐거워했다. 나도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는데, 만보는 책을 두어 번 읽었을 때 알아챘다. 분신들과 다르게 본체만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책을 읽을 때마다 본체 찾기 놀이를 같이 했다. 찾았어? 찾았다! 하면서 말이다. 텍스트가 많이 없지만, 읽어내야 하는 그림이 많아서 읽기가 즐겁다.
나는 직업적 사명감으로 이 책을 좋아한다. 텍스트조차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지도록 편집 디자인된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간질간질> 제목은 정말 간지러운 느낌이고, ‘멀리멀리’ 가자고 할 대는 모음 ‘ㅓ’가 벌써 여행을 떠난 것처럼 멀어진다. ‘위로 위로’ 올라갈 때는 글씨도 함께 산을 오르는 기분이다. ’벅벅’ 긁을 때는 또 어떠한가. 글씨도 머리를 긁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형광 핑크와 형광 노랑이 지배하는 그림도 눈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다. 강렬한 형광색에서 리듬이 느껴진다. (아마도 별색 인쇄를 한 것 같다. - 나는 별색 인쇄를 딱 한 번 해 본 비운의 편집자라, 이 강렬한 색상에 빠져든다.)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고를 때 기승전결이 완벽한 이야기를 찾거나, 어떤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좇게 된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게 하고 싶고, 세상의 이치를 깨치게 하고 싶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고, 행복을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가끔은 그냥 웃긴, 웃기지만 완벽한 이야기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책에서 무언가를 배워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책이 재미있기만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간질간질>은 완벽하게 웃기고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서현 작가의 다른 그림책들에도 <간질간질> 주인공이 등장한다. 서현 작가의 그림책 몇 권을 나란히 읽었을 때 그 사실을 알아챈 만보는 인류의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나에게 으스댔다. “엄마, 여기에도 나오잖아! 간질간질!” 하면서 말이다. 간질간질에 나오는 아이가 왜 이 책에 나오게 되었으며, 이 책에서는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인지 조잘조잘 상상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만보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림책을 깊이 있게 읽으며 작가가 숨겨둔 이스터 에그를 발견하는 기쁨을 마음껏 누린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만보가 앞으로도 책을 사랑하기를, 독서의 즐거움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밤에는 또 어떤 재미있는 그림책을 읽게 될까. 만보에게 가장 웃긴 책으로 골라 보라고 해야겠다.
카테고리: 창작 그림책 (국내)
추천 연령: 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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