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에 대한 견해

배려가 무엇인지 배우는 시간

by 엄마 영어 선생님

아이의 울음소리는 무척이나 시끄럽다. 객관적으로 내 아이의 울음소리도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듣기 싫다. 하물며 남의 아이의 울음 은은 얼마나 짜증 나는 소리일까.

매년 층간소음으로 우리나라는 병들어 간다. 한국 문화가 예의와 배려를 중시해 그런지 몰라도, 소리를 크게 내는 것 자체를 무척 싫어한다. 파티를 열어도 우아하고 조용하게 열 것 같은 이미지랄까.. 아파트 자체가 모든 소리를 차단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기도 하고.

그런데 아이는 조용하기가 참 쉽지 않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도, 우렁찬 울음소리도 모두 매우 시끄럽다. 특히 말을 잘 못하는 만 2세 전의 아이의 경우 표현거리가 웃음과 울음이 전부인 경우가 많아 툭하면 소리를 지르고 발광을 한다.

나는 얼마나 그 소리가 힘든지 잘 안다. 우리 아이들은 심지어 엄청난 하이피치의 소유자들이다. 지금도 소아과에 가면 소아과 선생님이 본인이 들은 아이 중 1등으로 높은 음의 소유자라며.. 가수를 꼭 하도록 권장하시곤 한다. 그 정도로 귀가 찢어질 듯 아프다.

그래서 애가 울기 시작하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조차도 이렇게 찢어지게 귀가 아프고 힘든데.. 얼마나 시끄러울까 생각하면 얼굴뿐만 아니라 귀까지 새빨개지며 아이를 달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 소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가 만약 그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다면, 그 고마움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 고마움을 전달할 여력이 없었을 뿐이다. 당장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급급해서 한시 바쁘게 행동하고 이동하다 보니 미처 전하지 못한 감사만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날에는 집에 와서 남편과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그 당시에 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감사에 대해 아쉬워하고, 언젠가 우리가 밖에 나가 같은 상황에 처한 부모들을 보면 같은 행동을 하고자 약속했다. 그리고 전하지 못했던 감사는 현재 내 안에만 남기지 않고, 미래의 내가 같은 상황의 부모에게 전하고자 다짐했다. 아이의 울음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이기에.

낮은 출산율을 보며 누군가는 미래 세대가 짊어질 나라의 세금을 걱정하고, 인구수 감소로 인한 국가 경쟁력을 걱정하지만, 나는 이 무엇보다도 내가 겪은 이해와 감사들이 후세대에 배려라는 행위로 전달되지 못하고 단절될까 걱정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어쩌면 생명의 본능을 다 하는 일이자 인류가 번성할 수 있었던 중요한 키 열쇠였던 “배려”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려가 당연한 건 아니라는,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으로 뭉친 세대들만 남아돈다면 결국 인류는 파멸의 길로 스스로 걸어가는 것이니까.


따라서 아이의 울음소리는 단순 소음이라기보다는 배려를 배우는 창구라는 생각을 했다. 육아를 하면 어른이 더 많이 성장하는 걸, 엄마가 되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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