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인형공장 알바

by 붉나무

"인형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해요. 완성된 샘플 인형을 앞에 두고 자주 보는 거예요. 인형을 안 보고도 인형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은 후에 더 잘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인형을 잘 만드는 방법을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내가 팔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고, 양팔을 대칭으로 잘 붙였다고 조화로운 인형이 되진 않아요.

다리와 몸통, 얼굴도 보아야 해요. 그래야 조화로운 인형이 되죠. 그림을 그리다 한 발 뒤에서 또는 더 멀리서 바라보고 다시 그리는 것과 같은 이치죠."

언젠가 지인과 서로의 알바경험을 이야기하다가 어떻게 하면 예쁜 인형을 만들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이와 같은 답을 했다.


인형 공장 알바를 시작하고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사장님이 커다란 박스에서 인형을 꺼내시더니 인형들을 검정 비닐봉지 가득 종류별로 담아 주셨다. 내가 가져온 인형은 산타, 눈사람, 곰 인형 등 주로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인형이었다.


처음엔 인형을 갖고 싶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형을 받아서인지 하루 종일 인형만 만들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막상 집으로 가져온 인형들이 그리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받아온 인형들을 한동안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가 인형 공장 알바를 마칠 무렵에야 봉지를 끌러 인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어떤 곰인형은 두 다리를 살짝 앞쪽으로 붙였고, 어떤 인형은 팔 한쪽이 약간 비스듬히, 또 어떤 인형은 눈이 수평이지만 가운데로 몰렸고, 또 어떤 인형은 목이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것들이었다. 얼핏 보면 잘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어색한 그런 인형인 것이다.

사장님은 왜 그런 불량 인형을 주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불량 인형이지만 사실 인형을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보면 잘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의 거의 정상에 가까운 인형만 골라준 것이다. 판매해도 얼핏 보면 잘 모를 수도 있는 인형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사장님은 작은 실수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불량 인형이라 완제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까... 눈에 띄게 불량인 인형을 선물로 주는 게 미안했을까... 암튼 그때 받은 완벽에 가까운 불량 인형을 여기저기 나눠줄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학생 때 친구 셋과 방학 동안 인형 공장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낮에도 여러 개의 형광등을 켜야 하는 지하실로 내려가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인형을 만들었다. 그 공장은 인형의 머리, 몸통, 팔다리가 만들어져서 오면 그걸 조합해 완성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었다. 처음엔 인형이 가득한 그곳이 무척 흥미로웠다. 인형을 만드는 일이니 당연히 재미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반복적인 동작을 끊임없이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속도가 느리거나 불량이 자주 나오면 사장님으로부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했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속도는 빨랐지만 사실 가끔 불량을 만들었다. 그 불량은 미세한 차이라 사장님의 예리한 눈도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만든 불량품은 결국 사장님의 손으로 걸러져 검정 비닐봉지에 싸줬던 인형들 속에 들어서 다시 내게로 온 것이란 걸 나중에 인형 공장 알바를 마칠 즈음에야 알게 되었다.


사장님은 우리 네 명에게 한 명은 목을 붙이는 작업, 한 명은 팔, 또 한 명은 다리, 나머지 친구에게는 눈 붙이는 작업을 시키다가 일을 서로 바꿔서 시켜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숙련이 되자 가장 느린 친구에게 눈 붙이는 작업을 시켰다. 핀셋으로 눈 하나를 집어 본드에 살짝 찍어 눈을 붙이는 작업이었다. 나는 주로 다리나 팔을 몸통에 붙이는 작업을 했다. 어느 날은 팔다리 붙이는 게 지루해 나도 눈 붙이는 걸 해보고 싶다고 사장님께 말해서 눈 붙이는 작업을 해보니, 핀셋에 작은 눈을 정확히 잡고 아주 살짝 본드를 붙여 본드가 흐르지 않게 주의해서 붙여야 하기에 오히려 눈 붙이는 작업이 까다롭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나는 다시 팔다리를 붙이는 걸 하게 됐다. 눈 붙이는 작업은 눈과 눈의 적정한 거리와 본드를 적당량 묻히는 게 중요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사장님은 가장 느리지만 꼼꼼한 친구에게 눈을 붙이게 한 것이다.

사람 얼굴에서 인상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게 눈인 것처럼 인형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사장님은 느려도 차분하고 꼼꼼한 친구에게 눈 붙이기를 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눈을 붙였던 그 친구는 지금도 대형병원 팀장으로 병원의 신뢰를 받으며 능력자로 일하고 있으니, 그 친구의 장점을 알아본 인형 공장 사장님의 눈은 지금 생각해도 정확했던 것 같다.


부부가 운영하는 인형공장엔 우리 아르바이트생 넷을 제외하면 30대로 보이는 여직원도 한 명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자리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조용히 인형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지루한 일을 지루하지 않은 것처럼 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화장실도 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인형 공장은 창문에 붙이는 손바닥 만한 크리스마스 인형들을 포함해 다양한 봉제 인형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는 업체였다. 부부가 운영했는데 인형 만드는 걸 지도 감시하는 분은 부인, 완성된 인형을 사각 틀에 가지런히 담아 비닐로 덮어 포장하는 작업을 하는 일은 남편이 했다. 우리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역할도 부인의 몫이었다. 그러니 실제 사장님은 부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일 라디오를 들으며 인형을 만들었다. 한 명은 눈을, 한 명은 목을, 또 한 명은 다리를, 또 한 명은 팔을 붙였다. 나는 알바가 끝날 때까지 주로 몸통에 팔이나 다리 붙이는 걸 했다.

그렇게 스무 살에 분업이 뭔지 처음으로 알았고, 지하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무리 작은 인형 한 개라도 여럿의 손을 거쳐가야 하고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으면 팔 수 없는 인형이 된다는 걸 알게 됐던 거 같다. 또, 불량의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이며, 남이 하는 일이 아무리 쉬워보여도 막상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거... 뭐 그런 걸 안 것 같다.


대학생이 된 아이가 주말이면 편의점 알바를 한다. 일이 안 힘드냐고 물으면 돈을 더 쓰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때의 물가와 요즘의 물가 수준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 30년 새 이토록 복잡해진 세상에 돈 쓸 일이 너무 많게 된 아이의 생활이 아직 낯설고,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에서도 학업과 알바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씁쓸했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 아이에게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경제력을 갖춰야지, 생각했지만 그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제테크에 너무 둔감한 나는 노동으로 받은 만큼 먹고 사는 사람이라며 아이에게 내 삶의 당당함을 증명해보이려 하지만 요즘 아이의 눈엔 답답한 부모로 비춰지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