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

화살나무와 장릉, 그리고 어머니

by 붉나무


장릉이 공식적으로 개방된 후 나는 계절에 한 번은 장릉에 간다. 장릉은 파주 탄현면에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사적으로 지정된 조선 제16대 인조와 인조의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 씨가 모셔진 곳이다.

장릉에 가면 나는 재실 툇마루에 앉았다 온다. 기와와 기와 사이로 들어오는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를 보는 맛이 크다.

거대한 나무를 가까이에서 볼 때는 위엄에 압도당하는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는 마치 내가 그 나무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장릉의 느티나무는 아이들 서너 명은 들어갈 만큼 커다란 구멍이 있는 나무도 있고 혹이 있어 마치 괴물 얼굴 같은 모습을 한 느티나무도 있다. 느티나무는 나이가 많을수록 오히려 잎이 작고 여린 경우가 많은데 장릉의 느티나무 또한 그렇다. 이런 나무의 여러 면모를 보노라면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젊은 게 맞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여름이면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매미의 소리와 함께 나무에게서 느껴지는 푸르름을 한껏 느껴보는 것도 좋다.

나에게 있어 어느 계절이든 장릉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 일상에 환기를 주는 것은 분명하니 장릉에 가는 목적은 거기에 있을 테다.


몇 년 전, 장릉이 개방된 지 얼마 안 돼서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100여 미터 직진으로 걸어가면 왼쪽에 2m는 족히 되는 화살나무가 있는데, 나는 그 나무의 푯말을 보자마자 화살나무라고 표기된 것이 잘못 표기된 것이라 단정했다. 당시 겨울이었고, 내가 아는 화살나무는 코르크 날개가 달려있어야 하는데 그 나무는 그 어디에서도 코르크 날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푯말에 '화살나무'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나는 장릉을 나오며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화살나무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분은 그 나무의 위치를 소상히 물은 후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셨는데 받지 않자 나중에 꼭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태전문가한테 자문을 얻어했을 테니 그럴 염려는 없다는 말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우리 동네 공원에 지천으로 있는 화살나무를 모를 리 없다면서 말이다.

이후 나는 '화살나무' 푯말이 틀렸다는 걸 확인하러 간 건 아니지만 장릉에 갈 때마다 그 푯말을 확인했고 화살나무라고 그대로 표기된 푯말을 볼 때마다 속으로 불편했다. 3년 정도 지났는데도 그 푯말은 그대로였다. 이런 것도 확증 편향이라 해야 할까. 내가 아는 화살나무의 특징에만 갇혀 나는 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관리소 직원이 한 귀로 듣고 흘렸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 가을 지인과 다시 장릉에 갔을 때, 화살나무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마치 나에게 당신이 틀렸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화살나무 맞아요~!'

나무 밑둥에서 올라온 세 갈래중 한쪽 가지 맨 윗쪽으로 코르크징 날개가 아주 조금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내가 느낀 부끄러움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늠이 되겠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출입구를 나왔다.


화살나무에 대해 돌아와 검색해 보니 회잎나무와 비슷하면서도 코르크 날개가 없는 것을 회잎나무라 하는데 이 화살나무의 코르크질 날개는 5년 정도 지나 나무 줄기가 굵어지면 자연스레 사라지기 때문에 회잎나무와 구분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장릉의 화살나무는 5년은 충분히 지난 나무였거나 코르크가 한쪽으로만 발달한 나무였던 것이다.


회잎나무는 화살나무의 품종으로 분류하며, 가지에 코르크질 날개가 발달하지 않거나 아주 미약한 것으로 구별한다. 일반적으로 품종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해당 개체군이 발달하는 서식처 조건에 따라 형태적 변이가 나타나면서 유전적으로 별도의 종으로 분류하기에는 아직 불안정한 상태를 말한다.

화살나무는 줄기의 코르크가 한 그루 속에서도 일정한 방향으로만 발달하며, 4~5년 지나 줄기가 굵어지면서 코르크가 없어지기 때문에 회잎나무와 종종 혼동을 일으킨다. 종소명 알라투수(alatus)는 코르크가 붙어 있는 줄기가 화살 모양인 것에서 비롯하는 라틴어다. 품종명 스트리아투스(striatus)는 이워니무스속(Euonymus)의 공통점인 잎이 약간 물결치듯(rippled) 하는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네이버 지식백과] 회잎나무 (한국식물생태보감 1, 2013. 12. 30., 김종원)


비에 젖은 화살나무잎

화살나무는 어린 시절 개울 가는 길에 있었다. 그게 화살나무였다는 것은 어른이 된 후 알았다. 키가 나보다 조금 컸음직한 나무에 새순이 돋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다래끼를 하나 건네주고 그 개울가 가는 길에 있는 나무에서 어린잎을 따오라고 했다. 오솔길 비탈에 있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나무인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잎을 가득 따 가지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걸 나물반찬으로 먹었던 기억, 그땐 나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물은 맛이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 나무가 무슨 나무였을까 생각하다가 언니로부터 알게 되었는데 바로 화살나무 어린 순이라는 것이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감각만은 남아있어 나는 그 나무의 여린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화살나무를 알게 된 이후로 화살나무를 애정하게 되었다.

동네 공원 산책길 옆으로 화살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 공원에서 가을에 붉은빛으로 물드는 화살나무는 아직 초록으로 남은 버드나무 아래 강렬한 선홍색으로 멋진 대비를 이룬다. 우리 동네 공원 가을의 절정은 단연 화살나무로부터 온다고 할 수 있다.

봄여름의 파릇파릇함, 겨울철의 코르크 날개의 힘찬 뻗음을 보는 맛도 좋다. 눈 오는 날 코르크 날개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은 화살나무의 겨울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저녁 무렵 공원 산책을 하노라면 화살나무에 노을빛이 차곡차곡 쌓여 버드나무의 실루엣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걷는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게 하는 동작인데 화살나무를 보면서 나는 최근 그런 생각이 더욱 든다.


공원에서 자주 보는 화살나무는 내 허리쯤 오는 키 작은 나무지만 어린 날 개울가에 있던 화살나무는 그때의 내 키만큼 컸다. 노을이 질 때 화살나무길을 걸으면, 엄마의 심부름으로 막 물이 오른 화살나무 잎을 따던 여렸을 때의 나와 엄마의 얼굴이 가끔 떠오른다.

그리하여 내게 나무와의 추억들은 모두 그리움이다.

나무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유독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된 걸까, 나무와의 추억이 있어서 나무를 좋아하게 된 걸까. 나무라는 물성이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지만 나는 특히 예전부터 나무 사이에 있을 때 편안하고, 가구도 나무여야 편안하고, 나무에 대한 느낌이 지금보다 젊었을 때부터 남달랐던 거 같다. 나무들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지만 나는 나무가 있는 곳이 편안하고 나무가 멋스럽고, 나무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 그건 확실히 알고 있다.

화살


화살나무 새순이 나고 있다.

날아가 꽂혀도 누구 하나 안 다치는

아픔이 우두커니 마당을 겨냥하고 있다.

어디 하나 맞히지 못해 혼자 속 끓이는

봄 타는 마음에 상처가 난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김재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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