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들기름 한 숟가락

by 붉나무

나는 두어 달 전부터 매일 들기름을 한 숟가락씩 먹는다. 아니, 어떤 날은 두 숟가락을 먹기도 한다.

혈관 건강을 걱정해 들기름을 먹기 시작한 건 아니다. 그냥 갓 짠 들기름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먹어보게 된 건데 그날 이후 날마다 먹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동네 방앗간에서 짠 중국산 들기름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아무 들기름이나 사서 먹었던 내가 들깨농사를 짓는 분한테서 들기름을 사 먹게 된 건 지난겨울부터다.


지난 여름 걷기 동무와 저녁 무렵 걷기를 나갔다가 숲길이 끝나는 마을 어귀에서 들깨농사를 짓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분은 자소엽이라는 들깨와 흡사한 보라색 잎을 따고 있었는데 그 향이 어찌나 진한지 지나가다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걷기 동무가 무슨 채소냐고 묻자, 몸에 좋은 자소엽이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조금 따가라고도 했다. 우리는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밭이랑으로 뛰어 들어가 한 손에 잡힐 만큼 자소엽을 따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주머니와 밭에 심은 몇몇 작물들에 대해 짧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마당이 넓고 햇살이 잘 드는 그 농가주택은 제법 넓은 텃밭이 딸려 있었는데 밭에는 감자, 고구마, 쌈채소, 고추, 땅콩 등이 심어져 있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함께 간 걷기 동무는 아주머니에게 가을에 땅콩 수확하면 파실 수 있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별 망설임 없이 수확할 때쯤 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땅콩 구매를 예약하고 자소엽을 한 줌씩 얻어 30분을 더 걸어 집으로 왔다.

그후 밭의 농작물이 그 어느 것도 남지 않았을 때, 그 집에 들러서 땅콩과 들기름, 들깨를 사게 된 것이다.


들기름을 사던 날, 아주머니는 이틀 전에 방앗간에서 기름 짤 때 지켜보고 가져왔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들기름은 가히 신선했다. 나는 이제껏 들기름은 고소한 맛이라고만 생각했지 맑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깨끗하고 고소한 맛인지는 몰랐다. 그 집 들기름을 먹어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그날 이후 냉장고를 열 때마다 들기름 맛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매일 들기름 한 스푼을 먹게 된 것이다. 단지 맛있어서 먹기 시작한 들기름이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이젠 잊지 않고 챙겨 먹게 된 것이다.

얼마 후 들기름을 사던 날 함께 사 온 들깨를 볶으려고 생들깨를 프라이팬에 붓다가 레인지 밖으로 흘렀는데 흘린 들깨가 아까워 알갱이 하나하나를 집어 프라이팬으로 옮기던 중 문득 어린 날 부모님과 가을걷이를 하던 때의 장면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다. 늦가을 일요일에 들깨 수확을 하던 날이다. 중학생 이상이 된 언니들은 장거리 등교의 어려움으로 모두 타지로 나갔을 때다. 휴일에 어머니 아버지를 도와 들깨 터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깻단을 날라 들깨를 터는 엄마 옆에 가져다 두는 일이었다.

한낮을 지나 한참 일을 거들고 있을 무렵 익숙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뜻밖에도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는 집에서만 입는 낡고 작아진 옷에 헌 운동화를 신고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선생님께 보인 게 왜 그리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묵례만 하고 괜히 집에 볼일이라도 있다는 듯 그 자리를 서둘러 피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별 말 안 하고 아버지와 몇 마디 나누고 바로 가던 길을 가셨다. 선생님이 가시고 나서 아버지는 어서 하던 일을 마저하라고 재촉했지만 일할 기분이 나지 않아 나는 깻단을 질질 끌어다 어머니 앞에 대충 던져놓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바닥으로 끌고 던지면 깨가 다 쏟아지니 살살해야 한다고 몇 번의 야단을 들었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 나는 어머니의 고된 농사일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은 마음에 끝까지 일을 하면서도 잔소리를 하는 아버지가 그날은 그렇게도 미웠다. 그래서 일부러 더 깨가 쏟아지든 말든 보란 듯이 깻단을 아무렇게나 들어다 놨던 것 같다. 사실 마른 깻단은 아주 살살 다뤄야 깨가 땅으로 쏟아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잘 익은 깨는 조금만 흔들어도 우수수 떨어져 수확량이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니 애써 지은 농작물의 수확량을 부러 줄이는 꼴을 하고 있는 내가 아버지로선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80년대만 해도 시골에선 아이들이 밭일을 돕는 건 예사였다. 농사일이 바쁠 땐 아무리 어려도 농사일을 거들거나 집안일을 했다. 그런데도 그날은 뭐가 그리 창피하게 느껴졌는지... 휴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나의 처지를 선생님께 보인 것이 자존심 상했던 건지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 것이 싫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정확한 마음은 알지 못한다. 그냥 노는 날 일을 시킨 아버지가 미워서라기보다는 어린 마음에 초라한 내 행색을 선생님한테 보인 게 창피했던 마음이 가장 컸던 게 아니었을까. 그즈음 외모에 무척 예민해지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단정치 못한 낡은 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고 일을 하는 모습이라니 어린 마음에 괜히 의기소침해졌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을날 부모님을 도와 깨를 나르는 모습은 얼마나 훌륭한 학생 아닌가 말이다.

아무튼 그날 나는 어스름 저녁이 올 때까지 깻단을 나르고 엄마는 온 동네에 들깨향이 퍼지도록 종일 깨를 털었다. 나는 그날의 모습이 그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슬픔이 약간 보여지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다.

그날 내가 어머니나 아버지로부터 이런 말만 들었다면 아마 완벽한 그림으로 남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은 있다.


“선생님한테 일하는 모습을 보인 게 부끄러운 게 아니란다. 선생님이 너를 기특하게 생각할 거야. 네가 일을 도와줘서 엄마아빠가 이 많은 일을 다 끝낼 수 있었다. ”

아마 나는 그날 부모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요즘 볶은 들깨를 올리브유에 듬뿍 넣어 구운 식빵에 발라 먹기도 한다.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에 밥을 먹기도 한다. 멸치로 우린 국물에 갖은 고구마나 감자 등 야채를 썰어 넣고 들깨가루를 넣고 끓인 들깨탕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해줬던 음식이다. 나는 그런 음식을 할 때면 엄마 생각이 난다.

늦봄 비가 온 후 들깨 모종을 심던 어머니, 여름날 들깻잎을 한 줌 따오게 해서 양념장을 바르게 시켰던 어머니는 밥이 뜸이 들기 시작하면 밥솥에 넣어서 깻잎찜을 해주었다. 수건을 머리에 쓰고 들깨 밭에서 깨를 털던 어머니, 장날이면 들깨 한 말을 머리에 이고 가 생필품이며 고등어를 사 오던 어머니, 겨울이면 들기름 한 종지와 붓을 주곤 김 재우기를 시켰던 어머니. 시골에선 김에 들기름을 발라 화롯불에 구웠는데 엄마는 이런 건 언제나 우리들을 시켰다. 시골 밥상에서 김은 제일 인기 있는 반찬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시큼한 파래김도 들기름만 입히고 나면 그 어떤 반찬 부럽지 않았다. 집에는 언제나 들기름이 있었지만 엄마는 필요한 만큼 꼭 쓰일 음식에만 아껴 사용했다. 어머니는 김을 재우고 종지에 남은 마지막 들기름 한 방울까지 김 한 장으로 닦아냈다.


그렇게 들기름과 사랑에 빠져 사는 어느 날, 어김없이 냉장고에서 기름병을 꺼내 들기름을 조심히 따라 음미하며 목으로 넘기는데,

‘카톡 카톡’ 아침부터 형제자매들의 단톡방이 울렸다.

동생이 기사 한 개를 링크로 보냈다. '파킨슨병 줄기 세포 치료길 열렸다’는 기사다. 그러자 언니가 답을 했다.


“우리 엄마 20년만 돌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