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년간 나의 등굣길은 왕복 두 시간이었다. 골짜기 산기슭에 살았던 나는 그 덕에 살찔 틈이 없었다. 어린 날은 그야말로 길 위의 인생이었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에서 지낸 시간들이 너무 많아서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 그 때를 잃어버린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부러 시간을 내어 흙길을 찾아 걸을 만큼 비포장길을 좋아하게 됐다.
내가 어렸을 땐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한 것은 태풍이나 홍수였지만 정작 나에게 가장 무섭고 위험한 대상은 자연이 아닌 일부 어른이었다.
한동안은 내 어린 날의 시간들이 무력하게 지나간 것 같아 스스로 연민에 빠져 내가 한없이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면 우울감이 꽤 오래 가슴 깊이 파고들곤 했다.
엄마는 바쁜 농사일에 우리를 챙길 겨를이 없었고, 그렇게도 많은 일을 해냈음에도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게다가 자주 아팠다. 아니, 그래서 아팠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동생을 본 후붜는 엄마를 돕는 일, 엄마가 덜 힘들게 하는 일을 찾아하곤 했다. 언니들도 나도 그렇게 어른 아이로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값지고 짧다. 나는 내가 그렇게 자랐기에 그 시간들이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있었으나 마음으로 온전히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습관적 불안과 긴장은 아이들을 양육할 때도 오랜 기간 나를 지배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버리고 나서야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의 가치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한 것 같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 같다. 아이들에게 내가 많이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간다. 당시엔 늘 최선의 결정을 한 것 같지만 결과론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내 안에 사랑받지 못한 어린 나를 또 한 명 키우느라 급급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뿐이다. 그 아이를 방치했다간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내 아이들과 격돌할 수 있기에 나는 내 안의 그 아이를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어떤 시간이 진짜 귀한 시간인지 무의미한 것인지도 죽기 직전까지는 모른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린시절에 애련이 드는 사람은 그 때 결핍을 그때로 돌아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완전한 과거형이라는 것에 애통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 때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안도감이 든다. 아무 것도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시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그것이 젊음이라도 절대 돌아가고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이 좋다. 행복이란, 누군가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 말할 자유가 있는 것, 나는 그것이 행복의 가장 기본적 조건이라 생각하니까.
그리하여 지금 나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내 삶의 선택을 내가 결정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내가 그 무엇도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던 열 살 쯤의 기억이다.
어느 날, 내가 무서워하는 아저씨가 죽었다는 말을 친구로부터 들었다. 믿기지 않아서 아버지께 진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혀를 차며 아직 젊은데 너무 빨리 갔다는 말로 그 아저씨의 죽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의 감정을 기억한다. 그건 안도감이었다.
동네에서 아는 어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보통은 무섭거나 슬픈 감정이 들기 마련인데 그 아저씨가 죽었다는 소식은 나에게 무섭거나 슬픈 감정이 아닌 ‘낯선 안도감’이었던 것이다. 그땐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억압받고 살았던 시기였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 마저도.
그 아저씨가 죽기 전, 등하굣길에 나는 그 아저씨를 가끔 마주치곤 했다. 그때마다 아저씨는 멀리서부터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길을 막거나 손목을 잡아 끌고 '우리 집에 가자'라는 말을 했다. 상기된 얼굴에 그 소름끼치는 웃음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 손목이 뻘게지도록 악을 쓰고 뻗대며 울어야 겨우 보내주었다. 지금 같으면 당장 아동 납치미수범이다. 그땐 인적이 드문 시골길에서 그 아저씨를 제외한 누구라도 멀찌감치 보이면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나는 초등학생 시기에 몇 번 그런 일을 겪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심장이 쿵쿵거려 심장보다 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길은 외길, 학교는 가야 하고 나는 날마다 그 아저씨를 마주치지 않길 빌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죽었다니 두려움에서 벗어난 나는 하늘이 나를 도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 왜 부모님께 말을 못 했을까. 아니, 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당시 내가 부모님께 말해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은 아버지가 잘 아는 사람이고 언젠가 밥상 앞에서 그 아저씨가 했던 나쁜 행동을 말했을 때, ‘놔줬으면 됐지. 장난이지... ’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말에 순응적이었던 어린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만 것이다.
모든 성추행은 가해자의 의도성 여부가 고려 요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가까운 불안함을 느꼈음에도, 어른들은 그 아저씨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할 만큼 그 시절 그 작은 마을은 무지하고 아이들에게 위협적이었다. 어린이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언제나 약자였고 늘 위험과 부딪히며 살았던 시절이다. 자연환경은 너무 아름다웠으나 안전이란 단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도 그 시절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살아남은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법에 무지했고, 하루하루 밥을 굶기지 않고 학교에 보내면 부모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땐 그게 부모 역할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시절에도 시골 어른들 중 물론 좋은 어른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의 시선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은 더 많았다. 그것은 나뿐 아닌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지키는 건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시절 우린 모두 달리기를 잘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죽고 나서 편안해져야 하는데 나는 꽤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 학교 갈 때마다 강 건너 산 아래 산소를 봐야 했다. 산소를 보지 않고 지나가면 되는데도 나는 꼭 산소를 힐끗 쳐다보고 갔다. 어떤 날은 산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공포스러운 존재가 죽었는데 나는 여전히 공포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어떤 날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 아저씨가 사라졌으면 해서 그 아저씨가 죽은 걸까... 그래서, 아저씨가 없어도 나는 무서운걸까, 그런 갖지 않아야할 죄책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나는 그 아저씨의 죽음 후 아저씨와 마주쳤던 길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보다는 차라리 깜깜한 밤의 공포가 더 견딜만했고,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자나서야 괜찮아졌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그때는 신체적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면, 지금은 여러 방법의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과거에 몸을 지켜야했다면 현재는 몸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어쩌면 그때보다다도 더 잔인한 방식의 성폭력의 위험이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세상은 어떤 면에서는 좋아졌지만 어떤 면에선 더욱 끔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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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
성폭력예방체계 구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 번째로 평소 자기주장 및 자기표현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양육자나 교사가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전제가 돼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아이와 자주 대화를 통해 성폭력 유발위험 요소를 조기에 제거할 수 있다. 성폭력의 위험 고리를 끊어주는 것이다. 여기엔 ‘가정폭력에 의한 아동학대, 빈곤’등도 유발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보호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즉,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옆에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모두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양육자), 교사는 모두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경계존중교육이 필요하다. 예방교육 방향으로는 양육자와 교사가 먼저 ‘경계존중’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야 한다. 또래 간, 교사와 학생 간, 교사와 교사 간에 경계존중하는 모습, 가정에서 부모가 경계존중하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실천하고 본다면 자연스레 성희롱, 성폭력은 예방된다. 그래서 모두가 실천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 ‘경계(눈에 보이지 않지만 개인과 개인 간에 존중해야 할 사적 영역을 말함) 존중교육’이다.
그러니, 성폭력 예방교육의 대상은 어른이 먼저다. 특히, 아동을 늘 마주하는 양육자와 교사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피해 아동뿐 아니라 피해 위험에 있는 아이가 준비가 되지 않은 양육자와 교사에게 자신의 피해를 말했을 때 양육자와 교사가 위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성인지 감수성이 낮으면 그 아이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인 아동청소년에게 ‘왜 채팅을 했니? 거긴 왜 갔니? 왜 또 만났어?’ 이렇게 다그치는 질문을 하게 되면 아이는 그 사람에게 다시는 말하지 않게 된다.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준비된 어른인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인지 잘 모른다. 부모라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어떤 말을 해도 될지,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지 안다. 결국, 아이들은 고민에 빠지게 되어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하려면 온마을이 안전해야 하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사회이기에 부모와 교사는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어떤 말을 해도 미루지 말고 들어줘야 한다. 어린이청소년 성폭력에 있어 어린이청소년의 잘못은 없다. 고장 난 사회를 바꾸지 못한 어른의 잘못이다.
무엇보다 학교는 ‘성교육 전문가’는 보건교사라는 인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을 항시 만나는 교사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양육자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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