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노랑이가 맛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얼룩이가가 맛있다 하고... 부드러운 거 찾으시면 노랑이가 좋고요. 단단한 거 원하시면 얼룩이로 드시고."
"더 찰진 게 어떤 거예요?"
"비슷해요"
"그럼 노랑이로 주세요"
아주머니가 낱개 포장된 노랑옥수수 두 개를 봉지에 넣어준다.
나는 동네를 걷고 돌아오다 출출할 때, 또는 저녁 대용으로도 가끔 옥수수를 산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옥수수 가게 앞을 지날 때, 달콤한 옥수수 냄새가 나면 나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곤 한다.
일이 고됐던 날,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옥수수 알갱이를 뜯어먹다 보면 피로가 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날에 나는 옥수수 한 개를 다 먹기도 전에 어린 날 툇마루에서 옥수수 먹던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옥수수 두 개는 순식간에 뱃속으로 사라지지만, 어린 날 옥수수와의 추억은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름에만 먹던 옥수수를 사계절 먹게 된 건 최근 집 앞에 옥수수가게가 생기면서부터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옥수수를 여러 개 먹은 날은 마음의 허기가 진 날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동안에그런 날이 더 잦았던 것 같다. 옥수수로 저녁 끼니를 때운 날.
요즘 내가 먹는 옥수수는 그 시절 강원도 찰옥수수의 맛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옥수수는 옥수수다. 집 앞 옥수수 집 옥수수는 물론 수입산이다. 어떤 날은 맛있고 어떤 날은 옥수수를 산 것을 후회하리만큼 맛이 덜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세 번 중 두 번은 맛있다. 맛있는 옥수수를 산 날은 그날 모두 먹고, 맛이 덜한 날은 한 개만 먹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었다가 출출할 때 꺼내 먹는다.
어린 시절, 옥수수를 먹을 때 나는 쌍둥이 놀이를 하며 먹었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과 옥수수를 먹을 때 그 놀이를 알려 준 적이 있다.
쌍둥이 만들기 놀이란, 옥수수 속대에서 옥수수 알갱이를 한꺼번에 많이 떼었을 때 누가 더 많은 개수의 알갱이를 붙여서 떼는지를 내기하는 놀이다. 알갱이가 일렬로 많이 붙는 옥수수는 제대로 여문 찰진 옥수수다. 쌍둥이가 길게 될 수록 옥수수의 맛을 보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쌍둥이를 만드는 법은 익은 옥수수를 따뜻할 때 세로로 2~3줄을 먼저 먹는다. 그다음에 한 손에 옥수수를 잡고 다른 손 엄지손가락과 손바닥 측면을 사용해 옥수수 알갱이를 최대한 길게 떼어 내는 것이다. 그럼 옥수수가 속대에서 애벌레 모양으로 길게 분리된다. 그렇게 만든 걸 옥수수 쌍둥이라 불렀다. 쌍둥이 만들기 놀이를 하려면 옥수수를 잘 고르는 게 우선이다. 알이 성근 옥수수는 탈락이고, 덜 여문 옥수수는 당연히 제외다. 촘촘히 알이 박힌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 옥수수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알갱이가 흩어지지 않고 잘 붙어 속대에서 분리가 잘 된다. 쌍둥이 만들기 놀이를 하면 언제나 내가 지곤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적당히 힘을 주는 요령도 필요하지만 손 큰 자가 유리한 이유도 있다. 그렇게 옥수수가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따는 일부터 먹을 때까지 놀이의 일부였다. 이렇다 할 놀잇감이 없던 어린 시절 우리 고장에선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는 것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중 옥수수를 따서 쪄 먹는 일, 고구마를 캐서 쪄 먹는 일, 감자를 숯불에 구워 먹는 일, 팝콘을 만들어 먹는 일, 나물을 캐는 일, 떡을 만드는 일, 두부를 만들어 먹는 일, 감자 부침개를 해 먹는 일 등이 그랬다.
가난했던 산골에서 여름철 최고의 간식이었던 옥수수, 나는 옥수수를 무척 좋아하지만 옥수수를 먹기까지는 복병도 있었다. 그건 옥수수 껍질을 벗길 때다. 새까만 옥수수 벌레가 수염아래 웅크리고 있다가 배를 뒤집으며 나타나서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럴 때면 옥수수를 마당에 냅다 던지고 방으로 달아나곤 했다. 벌레를 징그러워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지금도 옥수수를 깔 때면 검은 벌레가 웅크렸다가 몸을 펴고 나타날까 봐 무섭다. 나는 꼬물거리는 애벌레 공포증이 있는데 그중 옥수수 벌레도 소름 돋을 만큼 싫어한다.
언젠가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 갔을 때, 옥수수 껍질을 벗기다가 벌레가 나와 옥수수를 통째 마당으로 집어던진 적이 있는데 그걸 본 아버지는 세상에 무서워할 게 없어 벌레를 무서워하냐며 한심하단 투로 혀를 찼었다. 그걸 본 아이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깔깔거렸던 기억이 있다. 똬리를 튼 뱀 무리를 보는 것보다 징그러웠으니 무서움의 크기는 개체의 크기로 비교될 수 없다. 공포의 대상은 개별적인 감정이라서.
정신의학에 정신의학에 '특정공포증'이라는 진단이 있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극심한 공포나 불안이 유발되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질환을 말한다고 한다. 나는 아마 그 대상이 다리가 없는 벌레인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 판매용 옥수수에서는 농약 때문인지 벌레를 보지 못했다.
암튼 그 시절 옥수수를 따는 것부터 가지런히 솥에 넣는 것까지 모두 우리의 일이었는데 나는 그런 것이 벌레를 맞닥뜨리지만 않는다면 싫지 않았다.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던 시골에서 옥수수처럼 내 입에 맞는 간식은 없었기에 여름이면 옥수수가 여물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옥수수수염이 나기 시작하면 엄마를 졸라 언제 옥수수를 먹을 수 있냐고 자주 묻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그때마다 아직 여물지 않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건 옥수수를 따오던 날도 그랬는데, 그런 날 엄마는 예고 없이 이른 아침에 밭에 나가 이슬 맞은 옥수수를 한 소쿠리 따와 마당에 쏟아놓고 옥수수를 먹으려거든 어서 나와 껍질을 벗기라고 했다.
옥수수밭은 숨바꼭질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아무리 키 큰 아이라도 완벽히 숨기고도 남을 만큼 키가 크고 넓었던 옥수수밭, 해 질 무렵 숨바꼭질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어린 날, 여름이라는 계절은 애벌레를 제외하곤 자연으로써는 완벽했다. 가난했지만 산촌의 여름은 가장 풍성한 계절이어서 소름 돋을 만큼 무서웠던 애벌레를 가끔 마주치더라도 견뎌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