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식당에 간 적이 있다.
마당에서 직접 키운 채소들로 몇 가지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차려주는 아주 작은 식당이다.
식탁 한켠에는 나리꽃이 탐스럽게 꽂혀있다. 나리꽃을 보며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아주머니를 본다. 아주머니가 음식을 준비하다가 레몬을 담근 유리물병과 메뉴판을 들고 온다.
음식을 주문하자, 식탁에 칡잎을 한 장 깔고 포크와 숟가락을 가지런히 놓는다. 시간이 좀 걸린다는 말을 하고 부엌으로 돌아간다. 나는 나리꽃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나리꽃을 본다.
주홍빛 나리꽃과 칡잎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이 떠오른다.
여름철 산과 들엔 칡잎이 넘쳤다. 그 흔한 잎이 근사한 식탁 위에 놓이니 세상 멋진 일회용 숟가락 받침이 되었다. 숟가락 받침을 보는 순간 일회용은 그야말로 쓰고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을 일회용이라 해야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어머니는 나리꽃이 피는 여름이면 오랍뜰에서 칡을 한 소쿠리 따오게 하여 옥수수칡잎떡을 만들어주곤 했다.
칡잎은 오랍뜰로 넘쳐나서 쉽게 찾을 수 있고 똑똑 잘 따져서 따는 재미도 있다.
칡잎은 찾아다니느라 애쓰지 않고 보이는 대로 따면 그만이기에 이런 일은 일이라기보다는 놀이이기도 했다.
나는 한 손에 차곡차곡 칡을 포개가며 손바닥에 가득 차면 소쿠리에 담았다.
어머니는 겨우내 말려 가루로 빻아왔던 노랑 찰옥수수 가루로 반죽을 해서 강낭콩을 섞어 떡을 만들었다.
칡잎은 3장씩 모여 나는데 2장은 아래쪽에 마주 나고 1장은 위쪽에 난다. 끝이 뾰족한 둥근 마름모형이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3갈래로 얕게 갈라지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약초도감)
칡잎은 아래쪽에 달린 잎보다는 위쪽에 있는 잎을 따는 것이 요령이다. 가운데 잎이 잎자루를 중심으로 접으면 대칭으로 접혀 떡을 만들 때 반으로 정확히 접히기 때문이다. 그건 떡을 만들어보면서 그냥 알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딴 칡잎은 말린 옥수수가루와 붉은 강낭콩과 섞여 손바닥 만한 옥수수칡잎떡이 된다. 아니 칡잎 크기 만한 떡이 된다.
어머니가 만든 반죽에 언니와 나, 엄마가 둘러앉아 떡을 빚었다.
강낭콩이 버무려진 반죽을 한쪽 칡잎 속에 적당히 올려놓고 반으로 접어 쟁반에 차곡차곡 세운다. 둥근 쟁반을 반쯤 채울 무렵 엄마는 부엌 가마솥에 물을 끓였다. 장작 타는 소리가 들리고 물이 끓으면 엄마는 펄펄 끓는 가마솥에 구멍 뚫린 떡시루를 놓고 떡을 찐다. 언니와 나는 그 떡이 익기를 기다리며 부엌과 방과 봉당을 들락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여름에 꼭 한 번은 옥수수칡잎떡을 만들어 먹었던 것 같다. 엄마가 몸이 아프기 전까지는.
칡이 감고 올라가는 야산이며 들엔 나리꽃이 듬성듬성 피어났고 그 나리꽃은 해마다 그 자리에 다시 피었다.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우리들의 손에 한 개씩 쥐어주었다. 칡잎을 조심조심 벗겨가며 노릇한 떡을 베어 먹었다. 칡잎이 찰진 떡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는데 입으로 들어가도 상관은 없다. 먹어본 지 너무 오래라 표현하긴 어렵지만 찰옥수수의 쫄깃함과 강낭콩의 구수한 맛, 칡잎의 달큼한 맛이 가미된 듯한 담박한 맛이었다. 지금은 맛볼 수 없는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의 맛이다.
음식이 내 앞에 놓여 침샘에서 침이 나오고 나서야 나는 지금으로 다시 돌아온다. 식탁에 꽂힌 나리꽃을 보며 음식을 먹는다. 그러면서 지금도 그 들엔 나리꽃이 피어날까를 생각한다.
엄마는 떡을 좋아하셨다. 떡도 제철떡을 만들어 먹었다. 봄에는 쑥개떡, 가을엔 차조를 넣은 차조떡이나 호박고지와 서리태를 섞어 고슬고슬하게 찐 시루떡, 겨울엔 언감자떡을 했다.
언감자떡은 강원도에서만 주로 해 먹던 떡으로 알고 있다. 감자가 주식의 일부였던 강원도에선 언감자리를 버리지 않고 말려서 가루를 내어 팥이나 강낭콩을 소로 넣고 만든 떡이다. 언감자떡은 색깔이 검은색에 가까워 맛이 없을 것 같지만 당시엔 밥보다 맛있었다. 어쩌면 먹을 게 별로 없던 시절이라 그랬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려서 먹어본 사람들만 맛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달달하게 팥소를 만들어 넣어도 언감자 특유의 맛이 조금은 나기에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떡은 온 가족이 꽤 오랜 시간을 들여 함께 만드는 음식이다. 그래서 떡을 만드는 과정에 이야기가 쌓이고 그것은 추억이 된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아도 떡 만들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봄에 고향에 간다. 양지바른 어머니 아버지의 산소 아래로 칡잎도 쑥도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 쑥이 알맞게 돋아날 것이다. 떡을 만들던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였을 것이다. 나는 엄마만큼의 솜씨를 부리지는 못해도 쑥버무리를 만들어 볼 것이다. 그 쑥들을 먹고 온몸 가득 봄기운을 충전해 아프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