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계시는 집이지만, 그날 이후 나는 손님이 되었다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나서 몇 달 만에 고향집을 찾았다.
내가 쓰던 방에 있던 조잡한 물건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끔해지자, 방은 휑해 보였다. 낯설었다.
내 물건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었지만, 중학생 때까지 쓰던 학용품이나 일기장, 앨범, 상장을 보관해 두었던 파일들이 보이지 않았다.
안방에 들어서니 담뱃진이 배어 퀴퀴하던 냄새가 사라진 것은 물론, 잡다한 아버지의 물건들도 보이지 않았다. 화장대에는 금박을 두른 새어머니의 화장품 병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새어머니가 운전면허를 따려는지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집도 한 권 놓여 있었다.
자전거도 무서워해 탈 줄 모르던 아버지와는 달리, 몇 달 뒤 새어머니는 한 번에 필기시험에 붙었고 새 차를 몰고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나는 당시 아버지가 조금 미웠다. 그것은 질투와 원망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그리도 인색하던 아버지가 새어머니에게는 자동차까지 사줄 만큼 그렇게 후하다니….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들어간 부엌은 마치 다른 집의 부엌처럼 보였다. 엄마가 앓아누운 뒤 정리하지 못해 어수선하던 부엌은 몰라보게 깨끗해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는 구경하기 힘들던 양문형 냉장고가 부엌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는 것조차 어색해 수돗물을 틀어 마셨다. 이제 이곳은 내 집이 아닌 것 같아서, 왠지 허락을 받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쓰던 옛날 접시며 스테인리스 그릇, 코팅이 벗겨진 냄비들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꽃무늬가 화려한 사기 그릇들과 세련된 주방용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가 계시는 집이지만, 나는 손님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떠난 뒤 새어머니가 들어오기 전까지, 아버지가 홀로 사는 집에 도착하면 앉지도 않고 청소부터 했다. 집에 도착하면 주방을 먼저 정리해야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기에 언제나 주방부터 손을 댔다. 냉장고를 뒤져 오래된 식재료며 상한 음식을 버렸다. 그다음에는 아버지 방에서 냄새 나는 옷과 이불을 모아 세탁기를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렇게나 쌓아둔 신문이며 잡지들을 모아 버렸다. 그리고 나서야 아버지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동안 궁금했던 언니들의 근황을 하나하나 묻곤 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소식을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아버지가 듣고 싶어할 주제로 뻥을 좀 보태 전해 드렸다. 모두 잘 살고 있다고, 아버지만 건강하면 우리에게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렇게 아버지와 몇 마디 나누다 보면 밥때가 되었고, 나는 주방을 정리하며 미리 불려 두었던 보리쌀과 서리태를 넣어 잡곡밥을 지었다. 때로는 아버지가 해 두었던 오래된 밥에 내가 사 간 고등어를 굽거나 불고기를 볶고 된장찌개를 끓여, 둘이 앉아 이른 저녁밥을 먹었다.
내가 스물여덟 살이 되던 1월에 엄마가 떠났고, 그해 11월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아버지의 재혼은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뜻에 따라 속전속결로 이루어졌고,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에서 식을 올렸다. 언니들 중 한 명은 새어머니가 못마땅해 식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나머지 언니들과 나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아버지가 이제는 외롭지 않을 테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웃으며 축하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상태에서 새어머니를 기쁘게 맞이할 정도로 나는 감정의 정리가 빠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어머니와 아버지 앞에서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새어머니가 온 뒤로 우리는 한시름 걱정을 놓을 수 있었다. 매달 순번을 정해 반찬거리를 사 들고 아버지를 찾아뵙지 않아도 되었고, 아버지가 혼자 어떻게 지내실지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아버지의 건강이 궁금해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자주 가는 것이 혹여 새어머니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자제하기도 했다. 대신 계절마다 한 번은 갔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였다.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나서 내가 처음 집에 갔을 때 가장 속상했던 건, 어린 시절의 일기장이 모두 불태워졌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얼마간 써 온 노트 열 권쯤의 일기장이 잿더미가 되었다니, 내 추억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새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방에 있던 일기장이 전부 사라졌는데 보지 못했느냐고 아버지에게 묻자, 일전에 새어머니가 모두 태웠다고 말했다. 나는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오래된 걸 가지고 있어 봐야 뭐 하겠느냐며 얼버무렸다. 이미 없앤 일이니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속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화도 났다.
그래도 그날 나는 갓 재혼한 두 분 사이에 나로 인해 다툼이라도 생길까 봐 차마 새어머니에게 따지지도, 묻지도 못한 채 부글부글 끓는 화를 속으로만 삭였다.
“그래, 많이 속상하지…? 그때 내가 말리지 못해서 미안하다. 대신 사과하마.”
그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딱 그 정도였다.
‘일기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없어도 사람은 산다. 세상에는 일기를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 나 역시 일기를 쓰지 않고 지낸 시간이 훨씬 길다. 일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다. 내가 필요했던 것은 한 마디 사과나 위로의 말이었다.
주인의 허락 없이 필요 여부를 판단해 버리는 일은 옳지 않다.
꽤 오래전부터 나는 블로그에 아이들 이야기와 나의 하루, 고마웠던 일과 괴로웠던 일을 비공개로 기록해 왔다. 사춘기 아이와 이런저런 일로 속상했던 날에는 아이로 인해 가슴 뛰게 행복했던 날의 일기를 찾아 읽기도 한다. 그러면 눈물이 흐르고, 새삼 가슴 깊은 곳에서 아이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이 솟구친다.
울음 끝에 드는 생각은 ‘이 정도면 잘 살았구나’, ‘나는 아직 부족하지만 그때보다 나은 엄마가 되었구나’ 같은 감정이다. 그렇게 긍정의 힘을 얻고 나면 다시 아이들을 웃으며 대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의 기록은 그렇게 타인에 앞서 나 자신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과거에 상처받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누구든 위로받지 못하고 자란 어른이라면, 지금이라도 어린 나를 찾아가 부지런히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받은 상처를 내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게 된다. 그러니 나를 만나는 글쓰기는 내가 더 괜찮은 어른이 되기 전까지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과 나에 대한 기록은, 아이들로 인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를 찾게도 한다. 그래서 기록은 타인에게 보여 주는 자랑거리로써 남기는 것보다, 아이들로부터 받은 감동의 몸짓을 솔직히 적어나가는 것이 위로가 된다.
사춘기를 지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시간을 지나간다. 어떤 아이는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맞닥뜨린다. 그럴 때는 무작정 기록하며 오늘을 견뎌 내고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음 날,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견뎌 내길 잘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과거의 일기가 현재에 정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방향을 준다. 나는 그 방법을 실천하며 살아왔기에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
때론 눈물을 글썽이며, 어떤 날엔 분노에 가득 차 기록했던 글들은 다시는 열어 보고 싶지 않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읽어 보면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나은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고통마저 이겨 냈다는 사실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지금 나만큼 힘든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일단 오늘 하루를 견뎌 보았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주변 사람의 탓으로 돌리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욕설을 퍼붓는 파괴적인 행동은 하지 않게 된다. 그런 행동들은 결국 후회와 자괴감만 남긴다는 걸 과거의 일기를 통해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해야 할 말을 종이든 휴대폰 메모장이든 가리지 않고 잔뜩 쏟아내면 도움이 된다. 적어도 부정적인 감정으로 넘쳐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쓴 글을 한참 뒤에 다시 읽어 보면,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너 그때 잘 견뎠구나. 너 참 괜찮게 살아냈구나.”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