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심학산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겨울 산행은 자칫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평지엔 눈이 한 점 보이지 않아도 2월 산속 어디엔가는 눈이 남아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듯, 정말 조심해야 할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눈 한 점 보이지 않는 흙길 아래에 얼음이 꽁꽁 얼어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른 흙 아래엔 더욱 단단한 얼음이 숨어있기도 하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겨울 산길에선 젖은 땅보다 마른 땅을 걷는 것이 위험할 때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한 흙길로 보이는 곳에서 '찍'하고 자빠질 뻔했다. 다행히 등산용 스틱이 나를 구했다. 얼마 전 산길에서 강아지 산책을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는데 그 길도 흙밑에 얼음이 있었다. 지표가 녹아있고 그 아래가 단단히 얼어있거나 얼음이 녹는 중이면 쉽게 넘어질 수 있다. 다시 한번 마음으로 '조심조심'을 되뇌며 걸었다.
낮에는 기온 영상으로 올랐다가 해가 지면 영하로 뚝 떨어져 일교차가 심하고 하루이틀 반짝 따뜻했다가 추위가 몇 날며칠씩 이어지는 시기다. 파주는 1,2월에 눈도 잦았다. 또, 눈이 온 후 기온이 급상승해 순식간에 눈이 녹는 날도 있었다. 눈이 녹고 나서 다음날 바로 추워지는 이런 날씨일수록 산길 곳곳에 얼음이 숨어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오늘이 그랬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심학산에 갔다. 심학산은 해발 200m가 채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산은 산이다. 약천사에서 장상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는 50여 미터가 가파른데 숨이 턱에 찰 즈음에 바로 끝이 난다. 해지기 한 시간 전쯤에 이 코스로 오르면 아름다운 노을 볼 수 있다. 또 시간이 없는데 정상에 오르고 싶을 때 오르면 좋은 코스다. 나는 평소엔 이 짧은 코스보다는 둘레길을 주로 가는데 오늘은 탁 트인 전망을 보고 싶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면 휘돌아 흐르는 한강이 보이고, 파주출판 단지가 서쪽 발밑에 있다. 더 멀리 서울 김포가 보이고 맑은 날엔 북녘땅도 보인다.
심학산은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마치 높은 산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시야가 탁 트여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 운정 신도시의 빽빽한 아파트도 모두 성냥갑처럼 보인다. 그런 성냥갑에 나도 산다. 나는 쉬는 날이면 상냥 갑에서 탈출하고 싶어 안달이다. 진득하니 집에 붙어있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멀리도 못 간다. 그저 집주위를 빙빙 돈다. 동네 길 어디 모르는 데가 없이 싸돌아다닌다. 아니 싸돌아 걷는다. 바깥으로 나가는 충동은 아마 내 다리가 쇠할 즈음에 끝이 날까...
심학산은 가슴을 뚫을 일이 생기거나 크게 숨을 쉬어야 할 때면 혼자 가는 산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언제고 걸으려고 자주 가는 산이기도 하다.
파주는 이렇다 할 산이 없다. 동네 산책할 곳은 요리조리 찾아보면 걷기 좋은 길은 곳곳에 있지만 산 다운 산이 없는 게 조금 아쉽다. 그래서 이 심학산이 더욱 귀하고 고맙다. 오를 때마다 그런 마음으로 오른다. 이 산마저도 없다면 나는 정말 멀리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하니까 말이다.
심학산은 만만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오르기 쉬울 만큼 완만하고 소요시간 또한 한 시간 내외로 짧아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지구력이 매우 부족한 초보 산행자에게 아주 적합한 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심학산엔 어린아이들과 함께 산에 오는 가족 단위 등산객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늘은 정상에 거의 도착할 즈음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는 모자와 마주쳤다. 아이는 이제 5~6세로 보이는데 앞서서 내려오고 엄마는 한 계단 뒤에서 아이를 살피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 둘이 하는 말이 재미있다. 엄마는 아이가 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조심해! 천천히!'를 연발한다. 아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천천히 가고 있어요.'라고 한다. 나는 계단이 시작되는 아래에 멈춰 서서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정말 조심성이 있는 아이로 보였다. 한 계단 내려와서는 정확히 두 발자국 걷고 계단을 내려올 때는 옆으로 내려왔다. 키는 작은데 걷는 게 매우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아이가 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천천히 천천히'를 반복했다. 대여섯 차례 같은 말을 반복하자 아이가 '천천히 가고 있다고요'라고 뒤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는 이렇게 엄마의 도움 없이 계단을 안정적으로 전부 내려와서는 성취감에 젖어 환한 표정을 보였다.
그 귀여운 몸짓을 보노라니 역시 아이들은 그 어떤 부류의 사람들보다 돋보이는 존재가 분명하다.
그 아기를 뒤로하고 정상에 올라 정자에 앉자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왔던 추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내리막길이 나오기만 하면 내달렸는데 그게 하도 위험해 보여서 나도 '조심해 조심해'를 연발했었다. 그게 입에 붙어 뛰기만 해도 '조심해 조심해'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아스팔트 길도 아닌 흙길에서 넘어져봐야 얼마나 크게 다칠 건가. 그런데도 그땐 아이가 넘어져 큰일 날까 봐 노심초사했었다. 지나 보니 조금씩 까지고 멍들고 하면서 자라는 건 아무 일도 아닌 것을... 사실 흙길에서 부러 넘어져봐야 어떤 곳에서 조심해야 하는지도 알게 하는 것 아니겠나... 나무뿌리가 있는 곳에선 걸리기 쉽구나. 돌부리도 조심해야겠구나. 언덕을 오를 때와 내려갈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덜 힘든 것인지... 신체 발달이 왕성한 어린아이에게 산에서 몸으로 익힐 수 있는 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야말로 오감발달이 저절로 되는 곳이 숲이 아니겠나.
암튼 오늘 이런 모습을 마주하니 아무리 아이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도 말귀를 알아듣고 제 할 것을 해내는 아이에겐 잔소리로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해도 될 말을 끊임없이 하는 건 세상 모든 부모들의 공통적 버릇인 것 같다.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거나 못하면서 말이다.
산에서 바람이 불 때 바람이 나와 부딪치기 전 멀리서 들리는 바람 소리는 파도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폭포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잎들로 가득한 여름 숲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바다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는데 겨울 숲의 바람 소리도 파도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군 겨울에도 새잎이 날 때까지 잎을 붙들고 있는 참나무 종이 있다. 겨울눈을 보호하려는 것이리라. 참나무 종들도 나무마다 겨울을 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울나무는 나뭇가지의 생김을 보는 매력이 크지만, 풀이 무성한 계절에는 잘 보지 못했던 뿌리를 보는 맛이 있다. 어떤 이유로 흙이 쓸려 뿌리가 절반이 드러나 보이는데도 기울어지지 않고 서있는 나무를 종종 본다. 그런 나무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얼마나 깊고 단단할지 감히 가늠해 본다. 이 나무도 언젠가 태풍을 만날 수도 벼락을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걱정하진 않을 거다. 그저 담담하게 그 자리에 있을 뿐이라는 것, 그것이 나무라는 생명체의 진수다
벼락이 칠 땐 치더라도 태풍이 불 땐 불더라도 온몸으로 마주하는 것. 나무들의 그 의연함, 나는 그 모습이 참 좋다. 언제 가도 항상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쯤 우린 모두 알고 있다. 때론 그 나무가 사람보다 더 큰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런 내 주위에도 그런 나무가 몇 그루 있다.
겨울부터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그런 나무 한두 그루 마음에 두고 산책을 하는 건 실로 작은 행복감을 준다.
살며 느끼는 커다란 행복은 자주 없지만, 작은 행복은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그중 자연에게서 느끼는 행복감은 더욱 많아지는 것 같다. 그중 한 가지가 나무에게서 느끼는 감동이다.
심학산 정상에는 고양이들이 산다. 지난가을엔 대여섯 마리 보였는데 오늘은 네 마리가 둘씩 짝지어 햇살을 쬐고 있었다. 큰 바위 잡목 사이와 바위 위에 앉아 서쪽으로 기우는 긴 햇살을 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릿하면서도 따스한지 모른다. 두 눈을 꼭 감고 몸을 맞댄 고양이들. 고양이 얼굴에 선글라스를 씌워주고 싶었다.
둘씩 짝지어서 몸을 꼭 기대고 앉아있는 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일 거다. 함께 사는 법을 잘 아는 다정한 고양이. 나는 오늘부터 심학산 고양이를 다정냥이라고 부르련다.
살며시 뒤로 가서 뒷모습을 찍으려고 하자, 한 마리가 뒤돌아본다. 눈을 뜨고 나를 응시한다. 그래 사진 찍어라 찍어, 하며 포즈를 취해주는 것만 같다. 캄캄한 밤에 곧 올테니 이 햇살을 잔뜩 쬐어둬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작년 가을에 고양이를 돌보는 아주머니를 본 적이 있다. 전혀 모르는 그분과 내가 거의 동시에 정상에 다다랐는데 너럭바위에 널브러져 있던 고양이들이 갑자기 그 아주머니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주머니가 냥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평상에 앉자 냥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야옹 대며 아주머니 주변에 앉았다. 아주머니의 배낭에서 나오는 물, 사료를 반기더니 먹이통에 담아주자 한두 마리씩 와서는 야금야금 먹었다. 아주머니는 고양이들이 사료를 다 먹고 나자 한 마리씩 눕혀서는 진드기까지 잡아주는 것이다.
나는 평상에 앉아 땀을 식히며 한참 그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그 아주머니 덕분인지 고양이들이 포동포동 살이 쪄서 이 겨울을 잘 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져온 생수병을 열어 물통에 가득 채웠다. 나는 사료를 주지는 않지만 정상에 오면 항상 물그릇에 물을 채워놓고 하산하는 버릇이 있다. 그 아주머니를 본 후로.
산에 오르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냥이를 돌보는 아주머니의 목적이 냥이를 위해 뛰어서 산에 오르듯 목적이 있는 사람은 산을 오르는 모양새도 다르고 즐기는 모습도 다르다. 나는 혼자 산에 갈 땐 오며 가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가기도 간다. 겨울산에선 이상하게 사람의 목소리가 더 가까이 와닿는 것 같다. 보이는 것이 많지 않을 땐 소리에 더욱 민감해져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하산할 때, 20대 친구로 보이는 여자 둘이 내 뒤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지인의 허세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재미있었다.
들은 내용은 이러하다.
"야, 그 언니랑 전에 약천사까지 왔다가 내려갔어."
"약천사는 이 아래 절 아니야? 등산도 하기 전에 내려갔다는 말이야?"
"맞아. 주차하고 15분 걸었는데 헉헉대며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느니 이러다 쓰러져 죽을지 모른다더니 그래가지고 바로 내려갔어."
"그 언니 운동한다고 안 했어?"
"맞아. 필라테스"
"예전에 인스타 보니까 헬스 한다고 자랑하던데 체력이 그렇게 안돼?"
"헬스 얼마 안 하고 바로 그만뒀잖아. 요즘엔 필라테스한다고 매일 인스타에 올리더라고. 나는 운동은 양보다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언니는 절대 집 밖에 안 나가잖아. 필라테스할 때만 나가나 봐."
"그래도 필라테스하니까 체력이 괜찮아야 하는 거 아냐?"
"맞아. 필라테스 인스타에 올리는 거 보면 엄청 체력 좋은 거 같이 말하던데. 걷는 건 하나도 안 한대. 평소엔 집 밖에 전혀 안 나오고 필라테스 갈 때만 나간대. 그래서 산책이라도 하라고 했지."
"인스타는 장난 아니던데?"
"원래 그 언니 인스타에 그런 것만 올리잖아."
올해는 산에 나를 자주 올려볼 생각이다. 이 생각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지만. 계획은 자주 바뀌어도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계획대로 하지 못해도 다시 계획하면 그만이다. 계획한 날은 적어도 실천을 하니까.
소원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여 여기, 브런치에 올렸으니 이걸로 오늘은 꽤 의미 있고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