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어떻게 삶을 사랑하게 하나

봄밤 산책

by 붉나무

어스름 해질녘 집을 나섭니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새끼 고양이들이 나무 위를 오릅니다.

길을 가려는데 그 모습이 귀엽고 천진해 자꾸 돌아봅니다.

결국 돌아서 한참 멈춰서서 고양이들을 바라봅니다.


어둑해지는 저녁에 공원이나 숲에서 고양이를 보면 괜히 눈물이 고일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알아차려 봅니다.

추운 겨울에 새끼 고양이는 어디에서 추위를 피하나.

이렇게 어린 너희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 숲에서 사라지겠지.

내가 몇 년 후 마주하는 고양이는 오늘 본 너희들이 아닐 수 있겠구나.

부디 오늘 밤이 무사하길 바라봅니다.

나무 아래 덤불에 납작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미는 내가 다가갈까 나를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날개가 있는 새들이 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과 날개가 없는 동물이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은 다른 느낌이 듭니다.


어린 날, 언니와 매자나무를 놀이터 마냥 타고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우리는 어떤 나뭇가지가 우리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야생 고양이들처럼 어린 시절을 숲에 의지하고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숲에서의 다양한 놀이와 적응은 살며 어떤 위험에 대한 직관을 키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밟아보지 않아도 단단한 얼음인지 깨질 얼음인지, 밟아보지 않아도 부러질 나뭇가지인지 알게 되는 것들.


고양이를 뒤로하고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활짝 핀 홍매가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벚나무는 꽂눈이 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지난 달까지 습지에 떼로 모여 궥궥대거나 얼음 위에서 잠을 자던 큰 기러기들이 생각납니다.


기러기가 보이지 않으면 여기는 완연 봄입니다.

아파트 불빛과 가로등의 조명이 호수에서 일렁입니다.

몇 해전 어디선가 날아와 호숫가 구석에 터를 잡은 머스코비 오리는 호수 터줏대감 마냥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좀처럼 피하거나 놀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찾아 나선 어린 흰빰 검둥오리들이 궁둥이를 되똥거리며 내 앞을 지나갑니다.

어린 동물은 왜이리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지 모릅니다.

실룩대는 꽁무니를 한참 지켜보자니 집에 두고 온 강아지가 생각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데리고 나왔으면 오리처럼 엉덩이를 실룩대며 걷다가 오리를 발견하면 달려가서 짖어댔겠지요. 어서 가서 사료와 물을 채워줘야겠습니다.


버드나무의 연두색 꽃은 세상 어떤 연두보다 봄이라고 온몸으로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 꽃들이 가닥가닥 땅을 향해 흔들립니다. 연둣빛 조명을 켠 듯이 아름답습니다.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에 취해 한참을 올려다봅니다. 그 사이로 반달은 얼마나 투명하고 예쁜지요.

자연은 어김없이 아름다운 계절을 봄이라는 뾰족한 글자체처럼 만물에 생명을 붙여 선물로 가져옵니다.

괜히 가슴이 찡해져 눈물이 납니다.

내가 이런 자연에 감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몹시 뿌듯해집니다.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이렇게 아름다운 봄 산책을 고요히 누릴 수 있는 저녁이 더없이 고맙습니다.

넉 달의 어둠과 갑갑증이 해소되는 느낌입니다.


일상이란 언제나 예측 가능할 때 충만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봄은 늘 그렇게 우리를 예측하게 하여 설렘을 듬뿍 주고 갑니다.

내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올 거라고...

그러니 또 한 계절을 잘 보내고 기다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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