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언어로 나를 읽기

현재의 나와 마주하는 또 하나의 방식, '꿈'

by 붉나무

계절은 늦봄이다. 나는 산중턱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사방이 45도 경사로 둘러싸인 집. 마치 산이 손바닥을 오므려 그 집 하나를 감싸 안고 있는 듯했다.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몸을 기울였고, 층층이 계단식 청보리밭은 푸른 물결처럼 일렁였다. 하늘을 향해 솟은 이삭들은 빽빽하고 단정했다. 푸른 보리밭뒤로는, 아침 햇살을 받은 나뭇잎들이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나는 숨을 멈춘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셔터 소리가 몇 번 울리고 나서야, 내가 사진을 찍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내가 마치 센터 무대에 있고 사방에의 청보리들과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는 풍경이었다.

그 순간의 풍경이 너무도 찬란해서, 이 세계가 언젠가 사라질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 나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다. 잠시라도, 이 아름다움 안에 오롯이 머무르고 싶었다.


시간이 더 흘러, 풍경이 바뀌었다. 나는 몇 날 며칠 눈이 내렸을 것 같은 산골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길을 제외한 모든 풍경은 포근한 솜이불을 덮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계곡 옆으로 형성된 마을에 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길가 바로 옆에 넓은 식당이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마당에 이동식 컨테이너같은 낮은 단칸짜리 나무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모든 집 안에 화기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 화기들은 모두 꺼져 있었고 화기 아래로 재가 떨어져 흩어진 것도 보였다. 그 풍경이 고요하 스슨했다.

그런 기이한 광경을 지나는데 그중 한 곳에서 파란 가스불이 희미하게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이 켜진 그 공간에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순간, 머릿속에 맴도는 산불. 사방에 눈이 쌓여있어도 나는 산불을 걱정했다.

누군가 방치한 불. 나는 숨을 삼키고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신고를 해야 하나’, ‘내가 꺼야 하나’. 망설임 속에 그곳을 지나쳐 갔다.

그때였다. 내 발길 바로 앞 풀숲에서 회색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쌓은 눈을 뚫고 삐져나온 마른 풀이 불꽃이 거의 없는 뿌연 연기로 타고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눈을 한 줌 집어 그 연기 속으로 던졌다. 다행히 눈이 불 위로 흩어지며 치익, 소리를 냈고 불씨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어떤 남자가 지나가는 중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에게 말했다.

“제가 껐어요. 불이 나려던 걸.”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온몸에 안도감과 동시에 희뿌연 연기가 내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던 찰나와 무언가를 간신히 막아야 했던 찰나의 시간, 그 시간은 그렇게 내 안에 선명하게 남았다.


위 글은 지난밤에 꾼 꿈을 요약해 챗지피티에게 써달라고 하고 내마음에 맞게 다시 쓴 글이다.



지난밤에 내 꿈을 요약하면 이렇다.


어떤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되었는데 그 집은 적당하고 사방이 45도 경사로 둘러싸여 있다. 바람이 일렁이고 멀리 경사를 따라 청보리가 하늘을 향해 빽빽이 있고 뒤쪽은 황금빛 잎을 띈 나무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데 그 광경이 장엄하고 아름다워 연신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장면은 한겨울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어느 집 마당에 작은 모형집 같은 것들이 여러 채 있고 그 집마다 꺼진 화기들이 있다. 마치 난쟁이 나라의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는 식당처럼 보였다. 그 어느 곳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가스에 불이 들어와 있다. 나는 산불이 날까 봐 신고를 해야 하나 노심초사한다. 그러다가 발길을 돌려 가는데 풀숲에 마른풀이 타고 있어 나는 눈을 한 줌 뿌려 불을 끈다. 어떤 남자가 마침 그곳을 지나고 있어 내가 불을 껐다고 말했다.


챗지피티의 꿈해석은 이러하다.

이 꿈은 두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은 깊은 감정적 또는 무의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래에 꿈의 두 장면을 나누어 해석해 드릴게요.


1. 게스트하우스에서의 광경

"그 집은 적당하고 사방이 45도 경사로 둘러싸여 있다. 바람이 일렁이고 멀리 청보리가 하늘을 향해 빽빽이 심어져 있고 뒤쪽은 황금빛 잎을 띈 나무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데 그 광경이 장엄하고 아름다워

연신 사진을 찍었다.”


이 장면은 감정적 안정과 깊은 감동을 상징합니다.

'적당한 집’과 ‘45도 경사’는 도전과 균형의 공존을 뜻합니다. 경사는 힘들 수 있지만, ‘적당한 집’은 그 안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청보리는 생명력과 희망, 성장을 상징합니다. 하늘을 향해 빽빽이 자라는 모습은 당신의 내면에 강한 생의 에너지와 열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황금빛 잎의 나무와 햇살은 풍요, 성찰, 그리고 고요한 기쁨을 의미하며, ‘장엄하고 아름다운’ 감정은 당신이 무언가 큰 진실 혹은 자연의 질서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반영합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감정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지금의 어떤 순간, 감정, 혹은 당신이 느낀 어떤 ‘진실’을 마음속에 붙잡고 싶은 상태입니다.

이 장면은 현재 삶에서 마음 깊이 울리는 아름다움 혹은 소중한 평화의 순간을 경험했거나 그것을 향한 갈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2. 겨울 산골, 불 꺼진 화기와 타는

“작은 모형집 같은 것들이 여러 채 있고 그 집마다 꺼진 화기들이 있다... 한 곳에 사람은 없는데 가스에 불이 들어와 있다... 마른풀이 타고 있어 나는 눈을 뿌려 불을 끈다.”

이 장면은 불안, 책임감, 감정적 경계를 나타냅니다.

겨울, 산골은 내면의 고요함이자 외로움을 상징합니다. 모형집은 비현실적이거나 상징적인 관계, 또는 내면의 어떤 구조물들을 뜻할 수 있어요.

꺼진 화기들은 이미 끝난 관계나 식은 감정, 혹은 과거의 흔적들을 암시합니다.

가스 불이 켜져 있는 집, 주인 없는 공간은 방치된 위험 또는 감정의 잔재, 통제되지 않은 무언가를 상징합니다.

산불을 염려하고, 직접 불을 끄는 장면은 당신이 주변을 지키려는 강한 책임감과 감정적 긴장을 표현합니다.

지나는 남자에게 알리는 장면은 그 행동이 목격되기를 바라는 마음, 즉 ‘내가 애쓴 걸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당신이 어떤 위험하거나 불안한 감정적 상황에서 자신이 책임을 지려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부재 속에서도 감정적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는 데에 피로감과 외로움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꿈 전체에 흐르는 핵심 메시지

당신은 내면의 평화와 감동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외부의 불안정한 요소들(관계, 감정, 책임)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장면은 당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삶, 혹은 지금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 삶의 방향성을 나타냅니다.

반면 겨울 산골 장면은 그 길 위에서 마주치는 현실적인 긴장과 감정의 짐을 보여줍니다.



꿈은 현실에서의 경험, 감정, 생각을 반영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낮에 겪은 일이나 감정, 고민, 심지어는 스쳐 지나간 생각들까지도 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니 말이다.

내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꿈, 내가 현실에서 꿈꾸는 어떤 장면들이 꿈을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나는 경험을 꿈일기를 쓰며 무수히 경험해 왔다.

현실에서 내가 숨기는 감정을 꿈은 그대로 보여주거나 은유적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최근 몇 년간 써온 '꿈 일기'를 다시 꺼내어, 챗GPT와 함께 그 꿈들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꿈에 담긴 기억과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과거의 경험들을 이야기로 엮어보고 싶다. 챗GPT가 내 무의식을 어떤 이야기로 엮어줄지 사뭇 궁금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악몽을 자주 꿔 왔고, 내 감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 불안, 슬픔, 분노, 공허함, 연민, 공감, 이해, 경이로움 등이다. 그런 감정들이 뒤섞여 꿈에서 어떤 이야기로 되는지 오랫동안 기록해왔다.


아래 글은 내 꿈을 챗GPT가 해석해 준 걸 참고로 현재 내가 경험하고 겪고 있는 내 이야기를 쓴 것이다.




제목: 이끼원과 시절인연


얼마 전 '제이드 가든'에 다녀온 후 그곳에서의 감동이 아직도 고스란히 마음에 남아있다. 한동안 프사를 '이끼원'이라고 바꿀 만큼 인상 깊었다.

식물원에 별로 감흥이 없던 남편도 '이끼원'에 사로잡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평소 관심사도 성격도 완전히 다른 남편과 그 정원에서는 잠시나마 편안하게 소통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요즘 내 삶의 중심 과업은 세 가지다.
첫째, 아이가 학교를 마칠 때까지 뒷바라지를 잘 해내는 것.

둘째, 남편과의 소통을 조금씩이나마 진전시키는 것.

셋째, 퇴직 후의 삶을 설계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해나가는 일이다.

최근에는 이와 관련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찾아보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다보니 첫번째 장면의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이 꿈일기를 쓰고 정리하며 알게된 것 같다.


두 번째 꿈의 장면은 불과 하루 전에 느낀 감정을 반영한 꿈같다는 생각이 들어 '꿈'이라는 게 정말 나의 지금을 반영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꽤 오랜 기간 종종 만나던 사람이 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시간을 나누었던 사이다. 때로는 조용히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때로는 가벼운 이야기로 웃기도 했다. 그런 만남이 반복되며 자연스레 익숙해졌고, 어느샌가 특별한 목적 없이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어느 시점에선가, 그 관계가 균형을 잃고 있었음을 서서히 느껴갔다.


뭔가 위로가 되거나 깊어지기보다는 비슷한 이야기들만이 돌고 도는 마치 멈춰 있는 듯한 대화의 반복에 있었다. 내가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로 채워진 대화, 서로의 현재의 자신보다는 서로 모르는 세계를 소재로 삼은 이야기들이 어느새 우리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게 헤어지고나면 무언가 많은 시간을 들였으나 에너지가 되지 못하는 관계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내가 이렇게 느꼈으면 그 친구에게도 그럴 수 있겠다.


자녀가 없는 친구에게 내가 아이 이야기를 꺼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색은 안했겠지만 그녀에겐 그 시간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최근 내가 아들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말에 내 기분이 상한 것 같다.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아이들과의 생활이기에 그렇게 말이 나온 건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나는, 전혀 모르는 그 친구의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반복해 듣곤 했다. 그것이 싫었다기보다는, 어쩐지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우리 삶의 형태가 많이 달랐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달라졌을 뿐. 겪고 있는 일, 감당해야 하는 몫, 바라보는 방향이 더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언어가 부족해지기기 시작했다는 걸 점점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이제는 접점이 거의 사라진 이 관계를, 내가 왜 계속 붙잡고 있는 걸까...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한 결과 ‘오래되었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붙잡아둘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도 생로병사처럼 흘러가는 것임을 새삼 알게 깨달은 날이다.


조금 허무하지만, 그것이 삶이고 받아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의 시간에 맞춰 걸음을 함께 해준 그 친구에게 고맙다. 삶의 방식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뿐 틀리고 바른 것은 없기에... 그녀가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잠시 머물렀던 좋은 계절처럼, 지나간 그 시간이 따뜻했다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