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어떻게 삶을 사랑하게 하나?

비 오는 날 산책

by 붉나무


왜가리.jpg

봄비가 조용히 내리는 저녁, 나는 수변 공원을 걷는다.

누군가는 비를 맞고 달리고, 다리 아래 왜가리는 고요히 서 있다.
교각에 기대어 무심히 건너편을 바라보는 새, 비를 맞고 속도를 내 달리는 사람.

나는 우산을 쓰고 천천히, 어슬렁어슬렁 또 다른 다리 위를 건너며 그 풍경을 바라본다.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그 장면을 사진으로 담는다.

사진을 찍는 건 결국 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

새도, 달리는 이도, 걷는 나도 모두 제 삶의 속도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을 기록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사진을 찍는 건, 지금 이 순간,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기 위함이다.

우산을 들고 걸을 만큼 걸어야 하며,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을 만큼 그 풍경은 내 마음속 어딘가를 움직였다는 뜻일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는 행위는, 사실은 내면을 찍는 것이다.


다르지만 모두 제 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상하리만큼 안심이 된다.

예측 가능한 것이 불안을 줄이고,
예측할 수 없는 낯선 풍경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일 역시 불안을 누그러뜨린다.
이 조용한 장면은 각자의 방식으로 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예기치 못한 일들과 마주하는 작은 연습이 된다.

비를 맞으며 걸어도, 웃으며 걷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저 그렇게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이 풍경은 고요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비를 맞고 걸을 용기가 아직은 없는 누군가에겐 작은 우산 하나가 집밖으로 나오게 하는 용기를 준다.


이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의식의 언어로 나를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