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의 시대

이 ㅇㅇ 의원 제명으로 청소년에게 성폭력 예방교육의 기회로

by 붉나무

나는 초등학교 보건교사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함께 보건교육을 하고 있으며, 그 보건교육 안에 성교육 일부를포함하여 교육하고 있다.

최근엔 성교육 단원 중 '서로의 경계 존중 교육'을 했다.


얼마 전, 그러니까 대통령 후보자 토론이 있던 즈음 아이들에게 '경계 존중 교육'을 하기 위해 수업을 준비하던 중 후보자 토론을 보게 되었다.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은 여성으로서 모멸감과 동시에 교사, 부모로서 무기력함과 동시에 참담함이었다.


수치심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수치심이란 단어는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저질러서 타인 앞에서 망신을 당했을 때 느끼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아이들에게 해도, 성교육이 반복, 확장, 연속되지 않는 현실을 차치하더라도, 이름 있는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성)폭력 언어와 성범죄는 한순간에 학교 성교육에 애써 왔던 모든 이들을 허탈하게 만든다고 생각되는 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이 의원에 대한 제명 동의가 며칠 만에 44만이 넘는 걸 보면 말이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이런 일이 발생할수록 열심히 성교육을 해야 하지만, 그런다고 권력자들의 성폭력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기간 반복 확인하게 되면서 내가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것조차 의미가 있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본 누군가가 청원에 동의해 숫자가 늘어나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하고 싶다는 작은 희망에 애써 내가 쓰고 싶지 않은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가장 떨어지는 권력자들의 무지와 나태는 디지털 생태계를 얼마나 오염시키고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를 증가시켰는지는 통계가 이미 말해주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로 나온 자가 전 국민이 보는 공적 매체에서 매우 심각한 언어적 성폭력을 저질렀으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있나...? 게다가 사과 아닌 변명을 일삼는 사람이 국회의원이고 대통령 후보였다니...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사람은 대통령 후보로서는 실격은 물론이거니와 이 한 마디로 정치인으로서 자격도 마땅히 없애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즘 학교에서 초등 5학년 아이들은 어떤 경계 존중 교육을 받을까.

나라와 나라 사이, 차도와 차도 사이에 경계가 있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있음을 배운다.

경계란 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허용할 수 있는 한계이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중받아야 할 개인적인 영역임을 강조해 알려준다.

경계는 공간과 물건에 대한 물리적 경계, 시각적 경계, 허락 없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접촉하지 않을 신체적 경계, 상대방으로부터 성희롱적 언어, 욕설, 무시 등을 받지 않을 정서적(언어적)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 경계들은 사람마다 다르며 친밀도, 관계, 상황,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지도한다.

따라서, 경계의 종류를 떠나 한 개인의 경계를 침범하고자 할 때는 매번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야 함을 알려준다.


이렇게 경계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킨 후 세 가지 활동인 '사람과 사람 간의 경계', '내 몸에 대한 경계', '신체 접촉에 대한 경계 활동(동의/거절 연습)'을 직접 연습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사람에 따라 사람과 사람 간의 경계는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고, 사람에 따라 자신의 몸에 대한 신체 접촉의 편안한 경계를 알아보고 자신의 경계가 존중받아 마땅하듯 상대방의 경계도 존중해야 마땅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렇게 하여 다른 사람의 경계에 들어가고자 할 때는 반드시 동의를 구해야 하며 상대방이 거부할 경우 이를 존중해야 함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계 존중 교육은 이른 시기에 알려줄수록 좋고 효과가 있으며 부모 또한 가정에서 부부,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경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경계 존중에 대한 인식이 내면화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는 사람이 된다.


오랫동안 과거의 성교육이 신체 접촉 예방을 위한 교육이었다면 근래의 성교육은 '경계 존중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에 성적 언어에 의한 경계 침해 예방교육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언동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은 게임, SNS와 TV를 포함한 각종 매체와 어른들의 모습이 주원인일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언어적 경계 침해 행위는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모들이 먼저 본보기가 되어야 줄어들 것이라 본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가 전 국민이 다 보는 TV에서 일반적 수준의 성희롱(일반적 수준의 성희롱적 언어라는 표현 자체도 맞지 않지만)도 아닌 참혹한 성폭력적 언어를 서슴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12.3 계엄 이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것 같다.

12.3 계엄은 황당무계해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고, 이번 건은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과 대통령 후보자 수준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만 같아 부끄럽고도 한없이 무력한 느낌이 들었다.

이 의원이 제명되지 않으면 우리 정치인들은 그 어떤 성적인 말을 해도 용서(아무도 용서하지 않겠지만)가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의원에게 있어 어린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나... 청소년이 이 발언을 듣고 실시간으로 검색을 해본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고등학생 아이가 내게 정말 대통령 후보의 자식이 그랬느냐고 묻는 것이 엄마인 나로서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난감하고 부끄럽고 몸 둘 바를 모른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아이들은 정말 그 말을 한 사람이 아닌,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정말 그랬을까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그걸 노렸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몸마저도 정치도구로 삼고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하나도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하면서도 나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의원의 전 국민 대상 언어적 성폭력은 그 수위가 너무 높아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될 일이다.

엎질러진 물, 그 물로 바닥의 얼룩을 지울 기회다.

이 의원 제명으로 트라우마를 입은 전 국민(특히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경계 존중이 얼마나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할 마땅한 경계인지 알게 할 절호의 기회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성인지 교육이고 그걸 막지 못한 선관위와 국회 정치인들이 그나마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이며 교육자의 무기력을 복구시켜주는 것이다.


https://petitions.assembly.go.kr/proceed/onGoingAll/327534C853DF2656E064B49691C198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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