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보건교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990년대에 보건교사라는 명칭은 ‘양호교사’에서 ‘보건교사’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그 존재가 더욱 애매모호해졌다. 모호해졌다는 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할이 많아지고 그 무엇에도 속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라고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보건교사’라고 명칭을 변경하며 포괄적 주변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건’이라는 개념은 건강을 예방, 관리뿐 아니라 교육하는 일 등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우리 삶이 행복한 인생을 위해 건강을 지키는 일은 대부분의 모든 분야와 연관되기 때문에 보건교사는 존재하나 역설적으로 고유의 일을 가진 자로 존재하지 못하는 직업처럼 느껴진다.
일반교사뿐 아니라 보건교사도 신자유주의 원리로써 ‘성과’로 평가받는다.
얼마나 많은 업무를 추진했는지, 얼마나 눈에 띄게 했는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왔는지, 몇 건의 응급처치를 실시했는가, 교육을 얼마만큼 했는가...
정작 중요한 일은 숫자로 남지 않는데도 말이다.
며칠째 보건실에 오던 아이의 자해 흔적을 발견해내는 것, 배가 아프다고 오는 아이가 심리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성과로서의 가치가 없다.
보건교사는 보건실에서 아이들 옆에 있는 일, 그들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는 일, 아이들이 끈질기게 꾀병을 부려도 그걸 꾀병이라고 내 입으로 말해버리는 게 아닌 적당한 말을 찾아 스스로 인지하게 하는 일을 한다. 말하자면 돌봄의 영역(초등의 경우)을 더 많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 아이의 통증과 감정은 개별적이기에 그 아이에게는 진실하다는 것, 그것을 믿어주는 것이 회복이다. 따라서 보건교사는 돌봄과 회복에 기여하는 일을 인식하지 못한 채 보건실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교사를 소진하게 하는 것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보건교사의 존재 자체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성과주의, 즉 효율성과 가시화된 결과에 대한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학교의 규모가 매우 크지 않다면 보건교사에 따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은 광활한 사막을 배회하며 아무 계획 없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삶은 비참하지 않다. 떠도는 존재로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존엄을 지니고 있다.
보건교사라는 직업도, 어쩌면 이와 유사하다. 오랜 세월 동안 보건교사는 보건의 영역과 거리가 먼 일들을 감당해야 했고, 때로는 자신의 전문성과 역할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 채 이용당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맞닿아 있었기에 대부분의 보건교사는 그런 것들을 끌어 안았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의 삶의 방식이 일반인과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보건교사 또한 나와 다르게 일을 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안전조치가 미흡한 제도에서 수업을 거부하는 것도,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당장 제도를 바꿀 수 없기에 그걸 감수하며 수업을 놓을 수 없는 쪽도 이해가 된다.
보건교사는 학교 안에서 애매한 존재다. 수업권이 없으면서 수업을 하고, 담임이 아니지만 매일 학부모와 통화를 한다.(이 부분은 오해가 없길.. 초중등에 따라 다르며 학교 규모에 따라 다르다. 초등학교 작은 규모에서 내과적 문제에 대해 학부모와 통화하는 일은 매우 잦다)
오늘도 배가 아픈 아이, 머리가 아픈 아이, 교실에서 소외된 아이, 가정에서 돌봄이 안 되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눈빛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디가 아프니?”
기록부에 적고 문진 쪽지에 적게 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말을 건다.
언제부터, 어디가, 얼마만큼, 약은 먹었니, 화장실은 다녀왔니... 등등 똑같은 말을 다음 아이에게 반복해 묻는다.
이 물음은 어떤 아이에겐 존재를 물어봐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론 처치(치료)적 물음이 아닌 일상의 말을 묻기도 한다.
그러면 그 아이가 배가 아파왔는데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괜찮아졌다며 가기도 한다.
<<노매드랜드>>의 펀이 임시직 노동과 노지 생활에서 사람들과 불을 나누듯이, 보건교사도 잠시 그 아이에게 스쳐 가는 존재지만, 아주 작은 온기를 나누기도 한다. <<노매드랜드>>의 모닥불처럼.
나는 이제 안다. 학교에서 보건교사는 어떤 부분에서는 ‘주변인’으로 존재할 때 더욱 보건교사의 역할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것을. 보건교사의 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 무가치함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는 일, 그 자체가 의미 있고 직업적 존엄을 지킨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을 향한 끈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보건교사의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학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라질 일이 없을 것 같은 직업 1순위, 보건교사
오늘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별일로 만들어 오는 아이들에게서 불안을 보기도 하고, 슬픔을 보기도 하고, 억울함을 보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어쩌면 그 모든 감정을 가진 불안정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여러 분야로 읽히지만 룰루 밀러 자신의 삶을 투영한 에세이로 읽혔다. 책을 읽다 보면 제목이 역설이 아닌 실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책은 내가 아이들을 만날 때 항상 명심하고 보는 것을 다시 환기하는 계기도 되었다.
교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다리가 존재할지 몰라도, 보건실에서는 우열의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건교사 또한 제도적으로 명명했으나, '보건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이 내 방식으로 아이들을 보며 학교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