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어떻게 삶을 사랑하게 하나?

여름 주황, 나리꽃과 뮤지엄 '산'의 황조롱이

by 붉나무


아이의 티셔츠를 구입하러 갔다가 주황색 가디건에 끌려 내 가디건을 샀다. 나는 옷을 충동구매하는 일은 드문 일인데 하필 무더운 찜통더위에 긴팔 가디건에 눈이 간 것이다.


진열대 맨 앞 옷걸이에 걸려있는 모습이 마치 하루 전 봤던 나리꽃의 이미지가 떠올라여서였을까.

어린 날 한여름 앞마당 나리꽃 군락이 생각난 것일까.


태양의 열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꽃이라 생각되는 나리가 피는 계절에 태어났다. 시골은 8월이 가장 강렬하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산골 마당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나리꽃.

나는 어려서부터 나리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니 나리꽃이 피는 곳에선 언제나 마음이 고향 같았다. 자주 보아서 지금 그렇게 좋아했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온통 주변이 초록인 곳에 나리꽃은 시선을 사로잡았으니까. 산중턱에서 나리를 닮은 꽃은 범부채나 하늘 말나리를 보아도 나는 나리꽃이라 믿었던 것 같다.


나는 카디건을 구입한 후로 주황에 꽂혀서 여름 내내 외출할 때마다 주황색 가디건을 걸쳤다. 가디건을 입을수록 점점 주황색이 좋아졌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지난여름, 원주의 뮤지엄 '산'에 갈 때 무심히 주황 가디건을 걸치고 갔다. 그리곤 정말 운명처럼 그곳에서 주황색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비스듬히 자른 모양의 파스타를 연상케 하는 주황의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 속의 나도 왠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사진 속 주황색 가디건을 걸친 내 사진을 보다가 어린 시절 내가 주황색을 색으로 인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를 더듬어보았다.


처음 밭에서 당근을 뽑아봤던 날처럼 금세 그 시절 주황이 머릿속에서 쏙쏙 뽑아져 나왔다. 당근 농사는 토질이 맞지 않아서인지 아버지가 재배법을 몰라서였는지 겨우 엄지손가락 만한 것들이 쏙쏙 뽑아져 나왔다. 딱 한 번 당근을 뽑아봤고 당근 농사 또한 한 해만 했었는데도 당근을 뽑은 기억이 선명하다. 고랭지 무나 감자만 캐봤던 당시로선 작은 주황색이 밭에서 쏙쏙 뽑혀 나오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마흔 전까지는 주황색은 너무 화려하고 좀 촌스러운 색이라는 색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에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주황색의 매력을 다시 느낀 건, 어머니가 떠나시고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집에 갔을 때다. 손님 중 누군가 꽃밭에서 발견한 작은 주황 꽃이 무슨 꽃이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동자꽃 설화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엔 그런 설화를 들려준 일이 없건만... 그날의 아버지는 내가 아는 아버지가 아닌 듯했다. 그 아버지와 보냈던 8월의 여름에도 마당에 나리꽃이 다발로 피어있었다. 날개 끝에 주황 점박이가 있는 까만 제비나비들이 꿀을 빨려고 나리꽃에 모여들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 도로변에 피어있는 주황색 코스모스

앞마당 낮은 자리에 언제나 피어있던 비단 같은 메리골드

마당 한편 살구나무 아래 두엄 밭에 조롱조롱 줄기 따라 고깔 같은 주머니를 매단 꽈리

당근밭에서 부모님과 당근을 뽑던 기억

스무 살 무렵 울릉도 여행 중 나리 분지에서 만난 나리는 비 온 후 운무 사이로 피어있던 나리꽃은 지금도 사진 한 장으로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얼마 전 알게 된 메리골드차의 친절한 향이 더해 나는 그날 이후 주황의 오묘함에 점점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그리움을 불러오는 주황에 빠지기로 한 건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산책 중 동네 책방에서 주황색 커버 책에 눈이 가서 그 책을 사기에 이르렀다. 버지니아 울프의 <존재의 순간들>인데 내가 입은 주황색 가디건과 초록이 어우러진 북커버다. 나는 그렇게 초록 바지와 주황색 가디건을 입고 책을 한 권 들고 동네 책방을 나오며 괜히 기분이 들떴던 기억이 있다.


여름에 갔던 뮤지엄 '산' 입구의 커다란 빔으로 만든 주황 조형물은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일 거라 예상했지만 사람이 아닌 황조롱이를 상상해 만든 조형물이라고 한다. 도슨트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자 우리 동네 산책로 수변에 있던 날개가 뜯긴 거대한 황조롱이 조형물도 떠올랐다. 지금은 음악 분수 설치로 철거됐지만 나름 볼 만한 조형물이었다. 호수 공원의 황조롱이 조형물은 눈이 내렸을 때 그 새 위에 왜가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 겨울의 고즈넉함을 더했다. 겨울 아침 산책길에서 그 모습을 보았는데 마치 어미 새의 등에 새끼가 앉아있는 모습 같았다. 흰 눈으로 덮인 가짜 새 위에 진짜 새가 앉은 모습은 더없이 아름다운 겨울 풍경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뮤지엄 산'의 황조롱이와 주황색과는 관련이 없지만 작가는 어떤 이유로 그 황조롱이 주황색으로 표현했을까... 궁금해서 황조롱이 시를 찾아보았다.

제라드 먼리 홉킨스 시의 '빙빙 돌며, 앞으로, 앞으로, 휙휙, 마치 스케이트의 뒤축이 원을 그리며 가볍게 미끄러지듯이, 세차게 나가 스르르 미끄러지면 큰바람도 꺾였다. 자취 없던 내 마음이 한 마리의 새로 하여 흔들렸다'와 마지막 시구의 '주홍 금빛으로 상처 나느니' 이 시구가 이 황조롱이 조형물을 바람에 움직이게 만든 이유가 아닐까. 황조롱이는 먹이를 찾으며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일시적으로 정지 비행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 조형물은 바람이 불 때 빙그르르 돈다고 하니 그제야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황조롱이가 연상이 되었다. 강인한 느낌의 시는 H 빔을 사용한 조형물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조롱이


-우리 주님 그리스도께

제라드 먼리 홉킨스



나는 오늘 아침, 아침의 총아(寵兒),


햇빛 왕국의 왕세자, 아롱진 새벽에 이끌린 매가,


잔잔한 대기를 올라타고 높이 활개 치며


수평으로 선회하는 것을 보았다.


잔물결 치는 날개의 고삐에 끌려 황홀히,


빙빙 돌며, 앞으로, 앞으로, 휙휙,


마치 스케이트의 뒤축이 원을 그리며


가볍게 미끄러지듯이,


세차게 나가 스르르 미끄러지면


큰바람도 꺾였다. 자취 없던 내 마음이


한 마리의 새로 하여 흔들렸다;


- 그 생물의 위엄과 지배력에!


야성적 미와 용기와 행동,


오, 자태, 긍지, 영광도 이에 굴복할 수밖에!


그러자! 그때 그대에게서 터져 나오는 불빛,


억만 갑절이나 더 아름답고, 더 치명적인,




당연한 일이다,


하찮은 노역이 이랑 밑의 쟁기로 간 땅을


빛내고, 푸르스름한 불빛도, 아 보시라,


떨어져, 스치면, 주홍 금빛으로 상처 나느니.



마당에 수도 시설을 갖춘 집을 짓고 나서 수돗가와 담장 사이에 장미를 심었던 엄마는 집을 짓고 나서 이듬해 장에서 장미를 사 왔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장미, 무슨 색 장미냐고 물어보니 피어봐야 안다고 했던 엄마의 말과 미소를 기억한다. 몇 년 후 장미는 여름이면 내 주먹보다 큰 주황색 꽃을 피웠다. 당시 산골 마을에서 볼 수 없었던 장미, 나는 그 장미가 피어난 후 우리 집 꽃밭이 특별하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또 내 기억 속 여름의 주황은 어디 있었을까... 엄마는 내가 대여섯 살 무렵 언니와 내게 주황색 치마를 만들어주었는데 그건 허리를 끈으로 묶는 요즘 말하자면 개량한복 스타일의 치마였다. 나는 그 치마를 여름내 입고 다녀서 그 감촉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주황색 천은 베개에도 밥상을 덮는 보자기에도 사용했는데 주황 코스모스 색이었다. 8월의 주황은 그렇게 여름날 마당에 핀 꽃들과 어머니가 지어주신 주황 치마로부터 온다.


뮤지엄의 황조롱이라는 조형물은 순식간에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주홍빛 꽃밭까지 소환해 왔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주황은 산책로 고사목에 탐스러운 능소화, 풀숲에 칡넝쿨처럼 헝클어져 자라는 아주 작은 주홍 유홍초의 앙증맞은 주황, 유난히 투명한 주홍빛 저녁노을, 무엇보다 단호박 속살을 보면 군침이 살살 돈다. 여름의 주황 그렇게 맛으로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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