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큰 아이가 대학생이 되던 해 3월에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 화장실에 토한 일이 있었다.
그날 밤 큰 아이는 옷에 토물이 묻어 화장실에 벗어놓고 제 몸만 씻고 들어가 잠을 잤다고 했다.
이튿날 오후에나 잠에서 깬 큰 아이가 제가 벗어놓은 옷을 엄마가 빨았냐며 내게 묻길래 아이가 토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남편도 나도 아이 옷을 빨지 않았기에 아니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술이 얼마나 취했으면 스스로 옷을 빤 것을 기억도 못 하는 것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덧붙여 술의 해로움을 일장연설로 늘어놓았다.
아이는 알았다며 앞으론 적당히 마시겠노라며 귀를 막았다.
며칠이 지난 후 큰 아이가 암만 생각해도 자신이 옷을 세탁한 기억이 없다며 내가 옷을 세탁했는지 물어왔다. 뭔가 미심쩍으면 끝까지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라 나도 자못 궁금져서 옆에 있던 둘째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자신이 아니라고 했던 작은 아이가 사실을 말했다.
이유인즉슨, 엄마가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하는 걸 알기에 형이 술을 많이 마셔서 토한 게 걱정될까 봐 자기가 새벽에 빨래를 해서 널었다는 것이다.
평소 동생 칭찬에 인색한 형이 그날은 동생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
"너 쫌 멋있다! 고마워!"
"형아 생각해서 한 게 아니야. 엄마 걱정할까 봐 한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둘째는 뭔가 자신이 꽤 괜찮은 일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날 아이들의 표정과 말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형제를 기른다는 건 이런 걸까.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왠지 의리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하는데 그런 거에 뿌듯해지는 거 말이다.
남편은 술을 좋아한다. 그런데 남편이 만약 이 첫 줄을 읽는다면 분명 반문할 것이다. 평소에 늘 그래왔으니까.
"내가? 나 술 많이 안 마셔"
그렇다면 나는 바로 맞설 것이다.
"아니, 많이 마신다고 한 게 아니라 좋아하지. 자주 마시니까."
"내가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고.. 진짜 많이 마시는 사람을 모르는군. 기껏해야 맥주 한두 캔, 소주 한 병이 뭐가 많이 마셔? 내가 주사가 있어...(술 마시는 사람은 주사 또한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므로 이건 틀린 말).남들처럼 술 마시고 음주 운전을 해(비교할 걸 해야지)..."
음주를 합리화하면 할 수록 구차해진다. 차라리 그냥 술을 끊기 어려워, 라고 말하면 진심으로 느꺼질텐데 말이다.
남편은 주중엔 2~3회, 주말이면 토, 일 저녁에 맥주 두 캔씩, 와인 한두 잔 또는 소주 1병을 마시는 것 같다. 주중엔 가끔 마신다. 최소 주 3회 이상 꾸준히 마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주 마시는 것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리고 술을 마시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음주에 대한 시각은 천양지차다. 어쨌거나 내가 배운 과학적 이론에 근거로 남편은 술로 스스로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다.
반면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연 1회도 안 마시는 해도 있으니 마시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유인즉슨 술의 위험성을 알기도 전에 술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어서 그렇다. 내가 열 살까지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처럼(아니 중독자였을 것이다)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주사가 있었다. 그로 인해 어머니와 우리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후 마흔에 아버지가 당뇨환자가 되면서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서 당시 나는 아버지가 얻은 병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축복의 병이 있다면 나는 그 병을 '당뇨'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술이 온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는 끔찍한 것이란 것을 나는 어렸을 때 뼈저리게 체험했다. 오로지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로부터.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와 만취가 되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기에 그렇다. 아버지는 당뇨를 얻은 이후로, 아니 술을 끊은 이후로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나름 교육적인 아버지가 되었다.
술은 매우 이기적인 약물이다. 스스로가 자기중심적인지 모르는 채 자기중심적이 되기 때문이다. 술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났을 때 가정에 '술'이 개입하는 순간 행복은 점점 멀어진다. 이건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다.
결혼 생활을 하며 '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얼마나 살기 힘든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폭력이나 알콜리즘까지는 아니어도, 일상에서 술을 자주 찾는 이에겐 그로 인한 미세한 짜증이 가족에게로 부가될 때가 자주 있다.
예를 들면, 가족 외식에서 술을 마시는 아버지로 인해 돌아오는 길의 운전은 내 차례가 되곤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마치 기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외식을 하고 싶지 않다. 술이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맥락 없는 훈계를 반복적으로 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모습이 싫어 제지하려고 하면 아이들에게 말도 못 하냐며 그 화살이 내게 돌아와 부부 다툼으로 결국 얼굴을 붉히곤 한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아이들도 나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고 함께 평소에 하지 못한 대화를 나누었을 텐데 술은 언제나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아이들이 어려서 남편이 회사에서 과음을 하고 오면 그로 인한 육아는 그다음 날까지 전부 내 책임이 되곤 했다. 아침에 부석부석한 얼굴로 식탁에 앉는 모습도 좋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처럼 폭음을 하는 건 아니어도 일상에 보슬비처럼 술을 조금씩 자주 마시는 남편의 술 마시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매번 내가 눈치를 주는 것이 아님에도 마치 술 한잔하는 것을 내가 눈치를 줘서 불편하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내 눈치를 보며 술을 몰래 마시고 안 마셨다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 않다.
내가 커피를 끊지 못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술과 커피를 비교하는 것은 애당초 말이 되지 않기에 그만두기로 한다.
어쨌거나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반대의 사람과 결혼을 했다. 솔직히 나는 결혼 즈음에 결혼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외로움에 하는 결혼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쯤은 알았어야 하는데 말이다.(그렇다고 지금 결혼을 실패한 결혼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결혼이란 건 총체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셨을 때만 얘기를 하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대화를 회피한다. 술없이 무슨 대화냐, 그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술이 있어야 대화가 술술 되지, 그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술이 들어가면 또 진지한 대화를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 초점을 벗어나 필요 없는 말들을 지껄이기 일쑤다. 말에 일관성이 없고, 끊기고 횡설수설한다.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그 모습을 보면 부아가 난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겐 술을 마신 상태에서 말하는 사람이 정상으로 들릴 리 만무하다. 그의 대부분의 말은 허언으로 허공에 사라지는 말들이다. 그래서 나는 술에 의존해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술 마시는 사람이 술의 해로움을 모를까? 알면서 술의 중독성으로 그 유혹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인정하는 순간 술을 마실 구실을 잃게 되므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피로가 회복된다. 잠이 잘 온다. 긴장이 완화된다. 소통이 잘 된다. 이런 말들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말하자면 술에 취해 이성적 뇌의 통제가 느슨해져서 말을 쉽게 하게 되는 것이지 진짜 말을 잘해서가 아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말을 자주 하여 오히려 실언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술에 관대한 우리 문화는 청소년기부터 술을 마시는 것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술 좋아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술을 좀 마셔야 자신이 술을 마시는 것을 좀 더 합리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가 너무도 오래 이어져왔다.
몇 년 전에 큰 아이의 졸업식에 갔다가 졸업식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데 눈에 띄는 광경을 보았다. 남자아이들 대여섯 명에 둘러싸인 가운데에 한 아이가 소주 한 병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를 기다리면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 모습을 보았다. 둘러싸인 그 무리에 아이가 있는 줄도 모르면서... 큰 아이가 내 앞에서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그렇게 술을 마셨다는 것에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졸업 당시 아이들이 술을 살 수 있는 연령에서 한 살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날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얼마만큼인지는 몰라도 술을 마셨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술로 어른과 청소년을 구분하는 것 같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즐거울 때, 힘들 때 찾는 술은 루틴처럼 보인다. 그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시점에 술을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최근 유명 가수가 반대편 도로에 주차된 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낸 뒤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음주로 밝혀졌다. 음주는 그렇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사고를 안 냈을 수도 있고 설사 사고를 냈더라도 떳떳했으니 바로 조치를 취했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결국 그 유명인은 예정된 공연을 위해 자신이 술을 마신 걸 감추려다가 오히려 범죄를 키운 꼴이 돼버렸다.
술은 중추신경계인 뇌에 직접적 영향을 주어 어떤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그 부분을 부정한다. 때론 블랙아웃 증상이 특별한 경험인 것인 양 자랑삼아 말하기도 한다. 술을 계속 마실 구실을 만드느라 자기 합리화에 빠진 결과다. 이렇게 자기 합리화와 술 마실 구실을 찾는 것은 이미 알코올 중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고를 낸 유명인은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채 호텔에 머물다 음주 측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고 17시간 뒤에야 출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사회적 공분을 사고 말았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을 양산한다. 뒤늦은 사과는 진실성에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술은 이토록 개인뿐 아니라 주변인과 우리 사회에 손실은 물론 큰 실망감을 준다.
보건교육을 할 때 내가 어른인 게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간혹 있는데 '음주예방 교육'을 할 때다. 이토록 해로운 술에 대한 규제가 너무 미비하여 냉장고에 술 한두 병은 기본으로 있다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마셔볼 수 있고, 심지어 부모님을 한 잔 마셔보라며 권유까지 하는 실정이라고 하니 참으로 속상한 일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사람이 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일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이건 중독의 문제를 떠나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을 살피지 못하고 술이나 약물에 의존해 스스로를 외면한 시간들이 쌓인 결과가 아닌가 한다. 유명인이 물질적으로 성공했을 때 술과 흡연 등의 약물, 마약 또는 과소비로 채우려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공허와 불안을 술과 약물로 잊으려는 것은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술을 마시는 청소년은 술을 마시는 부모의 밑에서 자란다. 그런 가정이 많으면 그런 사회가 되고 결국 음주 청소년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청소년 음주는 빠른 중독을 가져오고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기억력 감퇴는 물론, 저성장, 비행, 다른 약물에도 쉽게 손을 대는 등 여러 문제를 양산한다. 그런데도 학교에서 음주 예방 교육은 흡연 예방 교육에 비해 매우 느슨한 게 또한 문제다.
오래전 학생 때 국립정신병원에서 실습을 한 적이 있는데 술 문제로 입원한 한 학생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알코올리즘 학생의 폐쇄 병동 생활은 모범적이기까지 했다. 영리했던 그 고등학생은 퇴원해도 될 만큼 정상이었지만 외출만 나가면 만취해 재입원하곤 했다. 이토록 청소년의 알코올 중독은 자신의 의지로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당시 절실히 깨달았다.
초등 5학년 아이들과 음주에 대한 보건교육을 하노라면, 최초 술을 입에 댄 경험은 부모가 술을 마셔보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그랬을 것이다. 술에 대한 지나친 허용적 분위기는 청소년 아이들이 술에 더 쉽게 접근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잘 살아내지 못할수록 약물을 찾는다. 자신의 뇌를 마취시켜 현재를 회피하고 자신을 잊고 싶어 한다.
술 취한 동안 잠시 자신을 잊을 수야 있겠지만 그 유효기간은 너무 짧고 이후엔 자신에 대한 혐오와 자책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런 불편한 상태를 잊고자 다시 술을 찾는 악순환이 되는 거다..
결국 술은 자신의 건강을 조금씩 허물어가며 진정 지켜가야할 관계는 망치고 술을 좋아하는 끼리끼리에겐 좋은 술 친구, 즉 술빼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그야말로 가짜 친구로 남는 것이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 자꾸 술을 마시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좋은 친구가 아니다. 그건 자신이 느끼는 미래의 고통을 너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네 몸을 상해서라도 고통을 나눠갖고 싶은 거다. 혼자 무너지는 건 너무 외롭고 비참하니까.
그러니 술 마시는 사람으로 살려거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충분히 알아본 다음 술과 거래해도 늦지 않다. 술 안마시고 행복하기 잘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술마시는 사람은 잘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기 위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