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말

헛소리(?)하고 있군

by 붉나무

이 글은 봄에 명이나물 장아찌를 담그던 날 쓴 글이다.

두 계절이 지났지만 그와 나는 여전히 불통이다. 아니, 스무 해 넘게 불통으로 살고 있다. 그래도 살아지고 그래도 쉰을 지나며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그것이 가끔 낯설다. 나 자신도 낯설고 그도 낯설고.


비가 온다.

“비_가 오_네. 강아지 산책 못 나가겠구나...”

내가 느끼기에 남편의 말속에 들어 있는 뜻은 ‘나 지금 산책 나가기 싫은데 비가 와서 잘됐네. 나 더 늑장을 부려도 되겠구나’로 들린다. 그렇게 추측하게 된 이유는 기분이 좋을 때 톤이 올라가며 말하는 남편만의 뉘앙스가 있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나는 그 말을 남편이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답을 한다. 말하자면 꼼수 부리지 말아라 비가 온다고 종일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치면 산책 꼭 데리고 나가라는 명령일 수 있다.

“5시에 그친대.”


비가 오지 않은 토요일 아침이면 남편은 8시 전에 운동(?)을 가거나, 강아지 산책을 나가는 게 토요일 일정이다. 물론 이 루틴은 금요일에 아무 일이 없었을 때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만약 금요일에 술을 마셨다면 토요일의 루틴은 언제든 사라지고 그가 하던 일은 모두 내 차지가 된다.


어쨌거나 오늘은 비가 오니 남편이 하는 골프도 산책도 없는 토요일 오전이다. 나도 침대에서 오른쪽으로 누워 유튜브를 보다 왼쪽으로 누워 보기를 반복하다 9시가 다 돼서야 일어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났는데 이유인즉슨 주문한 명이 나물이 하루 전에 도착했다는 것이 그제야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베란다에 둔 명이 나물을 싱크대에 박스 째 뒤집어 엎는다.

양이 꽤 많았으나 나물이 한 줌씩 고무줄로 묶여있어 다행히도 나물이 싱크대 밖으로 넘치지 않았다. 갓 수확한 걸 보내주어서인지 다행히 시들지도 않았다. 장아찌를 담글 양념 육수를 만들려고 재료를 살피는데 설탕, 간장이 부족하다.

남편에게 심부름시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심부름을 시키면 꼭 한 마디를 하기에 웬만하면 내가 사거나 주문을 해왔다. 옳지 않은 방법이라는 걸 아는데 입씨름하는 걸 나는 더 좋아하지 않아서 결혼 생활 내내 거의 그렇게 해왔다. 결국 장기간에 의견 조율없이 '그냥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해온 습관이 어느 시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나는 꽤 오랜 기간 잘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침을 준비하면서 마트까지 다녀오기엔 시간도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친절한 말투로 부탁을 했다,

“명이나물 장아찌 시들까 봐 지금 해놓고 아침밥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당신이 간장과 황설탕을 사 와야 할 것 같은데?”

웬일로 순순히 그러겠다며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한다. 보기 드문 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꼭 지금 해야 하냐, 이따 하면 안 되냐, 강아지 데리고 나갈 때 사 오면 안 되냐, 등등 하기 싫은 걸 온갖 핑계를 댈 텐데 바로 나갈 태세다. 그러나 그건 나의 섣부른 예측, 옷을 입으러 가면서 말한다.

“아홉 신데 마트가 문을 열었나...”

“당연하지, 열었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간다. 10분 후에 전화가 왔는데 휴대폰이 무음이라 받지 못했다. 남편이 내게 전화를 한 이유는 집 앞 마트는 문을 닫아서 좀 더 거리가 있는 다른 마트에 와서 사가지고 간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라고 집에 온 이후 말해줘서 알았다.


식탁에 설탕과 간장을 올려놓으며 인상을 한번 쓰더니 말한다.

“왜 이리 물가가 비싸? 설탕도 간장도... 이게 2만 원이 넘어”

“모르셨나? 채소 값만 오른 게 아냐, 모든 생필품이 다 올랐어. 장을 안 보니 모르는 거지. 그래서 장을 더러 봐야 한다니까.”

내가 말하는 저변에는 이런 불만이 깔려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장도 좀 보고 살아. 내가 식료품을 사면서 아무 말 안 하고 사니 몰랐던 거지. 그리고 물가 비싼 줄 알면 좀 아끼자고.. 당신이 치는 골프비용은 아깝지 않습니까? 당신이 몇 년째 올려주지 않는 생활비에서 나는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학비와 학원비, 용돈으로 휘청거려 우리의 형편은 늘 제자리입니다. 내가 당신과 살아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세요. 나는 취미 생활을 해도 골프 같은 비용이 드는... 물론 이것도 개인취향이겠지만 (나는 그 취미를 갖는 남편에게 어느 정도 불만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남편은 중독이리만큼 골프에 빠져있다) 형편에 맞는 취미를 합니다. 특히, 당신이 좋아하는 술, 거기에 2만 원을 쓰는 것은 단 한번도 아깝다고 한 적이 없으면서 설탕, 간장, 과일값 올랐다는 건 참...(언젠가 마트에 같이 간 날 자신이 마실 맥주는 사면서 딸기가 비싸다며 안사려 했던 적이 있다. 맥주값과 딸기값이 비슷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 모든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지만 속으로 했다. 더 오래 전 다툼이 있을 때 몇 번 하기도 했던 말이다. 하지만 반복하면 결국 또 다툼이 되고 나만 자신의 취미와 기호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되고 마니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커피 두 잔을 내려놓으며 한 마디를 더 한다.

“당신이 아침에 커피도 안 사다 준다고 해서 사 왔어.”

아... 나는 이 말에 화를 벌컥 내려다 꾹 참고 말했다.

“나는 커피 사다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나는 집에 있을 땐 집에 있는 커피를 마시지 굳이 바깥에서 사 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왜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거야?”

“암튼 커피 사왔잖아? 식기 전에 얼른 먹어.”

하지 않은 말을 하면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나는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난 빈속에 커피 안 먹잖아. 그리고 요기 아파트 커피숍에서 사면 될텐데... 왜 굳이 밖에서?”

“싸. 두 개 합쳐서 4천 원. 식으면 맛없는데 지금 먹어야 하는데.”

그 시각 나는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청국장을 끓이며 동시에 장아찌 육수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은 커피를 가지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켠다.


“어쨌든 고마워. 이따 밥 먹고 먹을게”

나는 또 남편의 진심이 아닌 진심(?)을 추측해 본다.

남편은 토요일 아침,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마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돌아오곤 했었다. 다 마신 빈 컵을 집에 와서 버리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나는 무슨 말을 한 적은 없다. 강아지를 산책하며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그로서는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누리는 나름의 방법이었을 테니까.

남편은 빈속에도 라지 커피를 모두 마실 만큼 커피를 좋아한다. 나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그 마음을 또 이해한다. 그럼에도 남편이 나를 위해 커피를 산 건 아니라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토요일 아침마다 강아지와 들러서 사던 커피가 생각났을 테고 자기 것만 사려니 미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것을 같이 사 왔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 자기것 사면서 당신 것도 사왔어, 하고 담백하게 사실대로 말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뭐라고 하겠나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맑게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내가 하지 않은 말을 자신이 지어내서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런 말버릇이 있다. 그런 것들로 나는 내내 힘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말습관이 고쳐지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티브를 보던 남편이 분주한 내게 미안했는지 헛(?) 소리를 한다.

“커피 먹여 줄까?”

어처구니가 없다. 우선 이런 말을 평소에 했던 남편이 아니라서 황당했고,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커피 먹여 줄까?’라니... 50대의 남자는 원래 이런 것인가. 이토록 말의 선택이 빈약한 걸까. 부엌을 종횡무진하는 모습에 기껏 한다는 말이 빈속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게 ‘커피 먹여 줄까?’라니... 이런 경우 안하려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니 내 말도 말같지 않다. 매우.


“참... 나... 내가 지금 음식하고 있는데 무슨 커피를 먹여줘? 먹을 거면 내가 마시지. 커피를 어떻게 먹여줘? 먹여줄까라는 말은 아플 때, 손가락하나 까딱 못 할 때 하는 말이야. 지금 당신이 해야 할 말은 뭐 도와줄 거 없어? 라든가 그냥 가만있으면 되는 거야.”

결국 일장 연설을 하고 말았다. 물론 기분 나쁜 말투로 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심부름을 군말 없이 했기에 그걸로 그 이후가 다 용서가 된 것이다.(사실 나는 남편에 대한 기대가 매우 낮다. 남편이 그렇게 만든 건지 모른다. 슬픈 일인줄 안다.)
당연히 같이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너그러워졌는지...(여자의 삶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같이 해야 할 일들을 20년 동안 ‘도와준다’고 표현하는 남편... 끝내 변화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으로 여러 번 수도 없이 이별했다.


싱싱한 명이나물을 장아찌만 담기 아까워 양파, 들깨, 고춧가루, 간장, 식초를 조금 넣고 무쳤다. 맛이 괜찮다. 남편이 젓가락으로 큼직하게 집어가서 맛을 보더니 이후 그 반찬만 먹는다. 몇 번 젓가락에 한 접시가 금세 비었다. 남은 무침을 더 가져오려 하자, 남편이 자기는 괜찮단다.

“내가 먹으려고 그래. 나는 한번도 안 먹었잖아?”

“나는 안 먹는 줄 알고 부지런히 먹었지. 반찬이 남을까 봐.”

“당신이 얼마나 음식을 빨리 먹는지 모르지?”(이 말은 살면서 수백 번 한 것 같다)


예측대로 답이 없다. 남편이 식사를 할 때 음식을 먹는다는 표현보다 먹어치운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같이 밥을 먹으면 나도 왠지 빨리 먹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게 늘 불만이었으나 20년 이상 고쳐지지 않는다. 도리가 없어서 몇 년 전부터는 포기해서 천천히 먹자라는 말을 안 한다.


밥을 먹고 창밖을 보니 봄비가 장마철처럼 내리고 바람도 분다.

“산에 갈 거야?”(내가 평소대로라면 토요일에 아침을 먹고 야산에 다녀오기에 오늘도 산에 갈 거냐고 묻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사정없이 내리는 날에 산에 갈 거냐고 묻는 사람이라니... 날더러 가란 말인지 가지 말란 말인지... 상황에 맞지 않은 말을 하루이틀 들어온 게 아닌지라 뭐 이상하지도 않다. 나도 엉뚱하게 응수했다.

“비바람 부니 꽃비는 실컷 맞겠네. 이런 날에 나보고 산에 가라고? 어제 퇴근할 때 다녀왔지”

나는 내가 얼마나 계획적(?)인 사람인지 좀 알라는 투로 말했다.

그랬더니 또 한마디가 세게 날아온다.

“당신은 아주 오래 살겠어. 산에도 잘 다녀오고?”(왜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을까...나라면 잘했네, 라고 할텐데)

“산에 간다고 오래 사나?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아. 건강하게 적당히 살고 싶지. 그것 또한 내 바람일 뿐이지. 운명대로 사는 거지.”

“난 오래 살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 얘긴 안 하는 게 좋지. 그래도 애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 부모가 건강하게 살아주면 좋은 거지.”

“애들이 뭐 자기들만 생각하며 살 텐데...”

“당신도 돌아보면 그렇지 않았잖아?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잖아. 우리가 살아보니 부모 걱정 없이 산다는 게 마음먹는다고 그렇게 되진 않았잖아?”

“.......”

수긍을 하는 표정이다. 거기서 끝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무 말 없이 티브이 화면만 바라보던 말 돌리기 선수가 또 한 마디 한다. 남편은 할 말이 없거나 불리하면 늘 초점을 흐리거나 주제에서 벗어난 말을 하곤 했다.


“00 이가 어제 전화했어?”

이 말은 큰 아이가 아침 7시에 들어왔는데 자고 온다고 내게 사전에 연락을 했었는지 묻는 말이다. 큰 아이는 어떤 날은 연락을 하고 어떤 날은 연락을 안 한다. 내가 카톡으로 물어보면 늦을 거라는 답을 해주긴 한다.

“아니, 몰랐어. 나는 안 들어왔는지 모르고 잤어.”

사실, 어제는 늦은 오후에 산에 다녀와 피곤해서 깨지 않고 잠에 빠져 아이가 안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잔 것이다.

“그런 걸 혼내야지” 남편이 말했다.

“이제 성인인데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지 뭘 혼을 내. 어쩌다가 말 안 한 걸.”

“그래도 함께 살고 있는데 걱정하니까.”

“그렇긴 하지. 근데 내가 카톡 하면 바로 알려주긴 해. 근데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걸 보고 저절로 익히는 거라... 당신이 할 말인지는 모르겠군.”

“......”


남편이 패했다. 속이 후련했다. 이럴 때 나도 유치한 승부욕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기고도 꼭 한 마디를 더 하는 게 문제다.

“아들이라 다행인 줄 알아. 딸이었다면 어땠겠어? 지인 얘기 들어보면 딸이 너무 늦어서 걱정되니까 새벽에 아빠가 서울 신촌까지 가서 술 취한 딸을 데려오기도 했다더라. 딸은 들어올 때까지 대기지.”

“아. 그러네. 아들 낳아줘서 감사합니다.”

아들 낳았다고 감사하단 말을 듣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닌데 이런식으로 답이 돌아온다. 안전에 있어 아직도 여성들의 밤길은 두렵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려는 거고,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가 부모를 오라가라 하지 않으니 고마운 줄 알라는 것인데 말이다.


“옛날엔 무서워서 밤늦게 다니지도 못했지. 휴대폰 있는 요즘도 무서운데 우리 땐 휴대폰이 뭐야. 나는 밤늦게 다니지도 않았지만 정말 위험한 순간순간이 무척 않았던 거 같아.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그땐.”

“그러네 옛날엔 휴대폰도 없었네...”

“참 좋은 시대인데 걱정은 더 많은 시대가 됐군.”



나는 비가 그치면 잊지 말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라는 당부와 둘째 아이가 마냥 휴대폰 게임만 하게 두지 말고 좀 쉬고 독서실에 가도록 말하라고 하고는 주섬주섬 간식거리와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왔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비바람에 쏟아지고 느티나무는 여린 연두 잎을 부지런히 돋아내고 있었다.

나의 봄날은 어지러이 그러나 순간순간 행복하기도 했던 슴슴한 기억을 가지고 지난 것 같다.


모든 다툼의 상처를 이혼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부부의 관계란 것 또한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부족함 많은 부부에거서 생각보다 잘 성장한 아이들을 보며 하루하루를 긍정하고 그 가운데를 지날 뿐이다. 걸으며 쓰는 일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가을의 문턱에서 숨을 고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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