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장면을 작품처럼 바라볼 수 있는 사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소지품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상자 안에 잡동사니며 책 등 몇 가지 물건을 버리려고 두었는데 누군가 그걸 강물 속에다 버린 걸 알게 됐다. 그 짐 속엔 내가 누군가에게 주려던 물건이 있었다. 나는 그걸 건져내려 했고 얼마만큼은 건졌다.
내가 물건을 정리하기 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주기로 한 걸 깜박하고 따로 챙겨놓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선생님이 내가 잊은 걸 챙겨뒀다고 말하는 걸 들어서 어느 정도 안심은 했던 거 같다.
두 번째 장면은 근사한 그림 석 점 앞 가운데에 나는 서있었다. 그림의 바탕이 노랗고 나무의 기둥이 보이는 그림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집의 외벽에 그려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 그림 앞에서 그림을 감상하며 서 있고 그런 나를 또 다른 내가 보고 있는 꿈이다.
챗지피티에게 꿈해석을 물었더니 이렇게 알려준다.
상자 속 물건을 정리하다, 누군가가 강물에 버림
① 상자 속 물건 정리
‘정리’는 항상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 관계를 분류하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상징한다. 특히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으로 나온 것은, 그 시기가 내게 아직 덜 정리된 감정의 원형(책임감, 죄책감, 인정 욕구 등)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 누군가가 강물에 버림
강물은 흐름, 시간, 무의식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애써 정리하고자 한 감정이나 기억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 버린 것을 뜻할 수 있습니다.
즉,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는데 흘러가 버린 관계나 기억, 말하지 못한 마음을 반영합니다.
③ 누군가에게 주려던 물건
‘누군가에게 주려던 것’은 내가 건네고 싶었던 진심, 배려, 혹은 미안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강물에 흘러들었다는 건, 그 마음이 전달되지 못한 채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 같은 안타까움을 나타냅니다.
④ 선생님이 챙겨두셨다는 말
꿈속의 ‘선생님’은 종종 내 안의 지혜롭고 보호적인 내면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내 안의 현명한 부분이, 놓친 것을 알고 있으며 결국은 지켜주고 있다”는 무의식의 위로 메시지입니다. 즉, “완전히 잃은 게 아니다, 필요한 것은 기억되고 있다.”
2. 노란 바탕의 근사한 그림 앞에 서 있는 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
이 꿈은 자기 인식과 의식의 이중 구조를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① 세 개의 그림
세 개의 그림은 당신 안의 세 가지 측면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바라보는 나(관찰자)'를 나타냅니다. 그림이 ‘근사했다’는 건, 나 자신의 삶이나 감정의 결들을 예술적이고 의미 있게 보고자 하는 감수성을 지녔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② 노란 바탕과 나무의 기둥
노란색은 '자기 이해', '통찰', '따뜻한 생명력' 상징하고, 나무의 기둥은 중심, 뿌리, 생의 지속성을 나타냅니다.
즉, 이 꿈은 자신의 중심을 되찾고, 내면의 생명력을 다시 바라보려는 시점에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③ 그림을 바라보는 나를 또 다른 내가 본다
이건 명확히 ‘메타 인식(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자의식)’의 상징입니다. 지금 자신의 삶을 단순히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예술적 자아로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내 삶의 장면을 작품처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 그림 속의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
AI 해석이 정확한 것도 전적으로 믿을 말도 아니겠지만 '삶의 장면을 작품처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새롭다. 아무튼 꿈해석이 긍정적이고 위로가 되어 기분이 좋았다. 아니 그냥 기분이 좋기로 한다.
종합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이 두 꿈은 서로 이어져 있다고 본단다.
첫 번째 장면이 '잃어버린 것,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무의식의 아쉬움과 위로를 보여줬다면,
두 번째 장면은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성찰과 회복을 보여준다.
즉,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끼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기에
이제 나는 그 잃음마저 작품처럼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꿈은 하나의 내적 성장의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동감이 되는 해석이다. 실제 나는 학창시절에 떠돌면서 살던 가운데 내 물건들을 내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버려지거나 도둑맞은 경험이 있었고, 그 사건은 두 번다 지인으로부터였기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살면서 순간 순간 그 사건들이 떠올라 억울하고 분노에 휩싸였지만 마흔이 넘어가며 그건 인생에서 내게 정작 중요한 물건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엔 몇날며칠 울었던 사건들이 지나보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건 살며 내내 알아가게 된다.
정작 중요한 건 물건을 잃어버린 게 서러운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너무 오래 잊고 살아온 걸 조금 늦은 오십이 될 즈음에야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나를 위로하는 건 친구도 남편도 아닌, 어른이 된 나 자신일 때가 대부분이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니까 그렇다. 가슴 한켠이 아릿해져 나를 위로하고 싶은 겨울에 나는 따스한 메생이 굴죽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