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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자격지심으로 성장하는 방법

자격지심을 발판 삼아 더 높이 도약하는 방법

 나는 삼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족들 중에서 특히나 작았다. 어려서가 아니었다. 막내여서 작았고, 힘이 약해서 작았고, 잘하는 것이 없어서 작았다. 작다는 건 가족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막내였기에 지켜주면 되고, 보살펴주면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가족 중 가장 작다는 생각은 나에게 큰 부담감이었다. 8살이 돼도 10살이 돼도 나는 항상 집에서 막내였고, 힘이 약해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없었고, 잘하는 것이 많은 형들과 다르게 잘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나 스스로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내 마음속에서의 작음은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자격지심으로 변해버렸다. 


‘자격지심,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격지심이 가지는 의미이다. 그리고 남과 비교해서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 때, 자격지심을 많이 말한다. 내가 그랬다. 특히 중고등학생 시절에 말이다. 시골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나는 자연스럽게 형들이 졸업한 학교들을 입학하고 졸업했다. 형들과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그 당시 형들은 학교에서 모든 선생님들께서 알고 있었다. 쌍둥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공부든 운동이든 뭐든 잘했기 때문이다.(이건 어린 시점에서 본 형들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런데 이게 왜 자랑거리가 아니라 자격지심이 되었을까?


 초등학생 때까지는 나의 작음은 그저 작음에서 머물러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크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작음이 점점 자격지심으로 변해갔다. 왜 인지 짐작이 가는가? 바로 선생님들의 기대와 비교가 그 원인이었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께서 그러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기대하거나 비교하는 선생님도 없으셨다. 하지만 원래 작음을 가지고 있던 나는 선생님의 사소한 비교 한마디에 서서히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건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한 말이다. 나의 작음 아니 자격지심이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별일 아니라고 넘기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성적 부분에서 형들에 비해서 많이 낮은 점수를 받으면, 간혹 어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형들은 잘했는데, 너는 점수가 왜 이러냐?’


가장 나를 힘들게 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학교 시절에는 1학년 때 이후에는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성적이 많이 올랐었다. 그래도 형들과 비교하는 선생님들은 있었다. 정말 큰 문제는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커졌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모의고사를 본 후 성적표가 나왔다.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내 점수는 지금 내가 봐도 형편없었다. 반에서도 뒤에서 기어 다니는 수준의 점수였다고 기억한다. 어김없이 그때도 선생님들은 형들과 나를 비교했다. 고등학교는 특히 더 심했던 이유가 형들이 모두 좋은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그 동생은 공부를 정말 지지리도 못했던 것이 많이 실망스러우셨나 보다. 1학년 내내 모의고사 성적은 항상 바닥을 기어 다녔다. 다행히도 공부를 안 하진 않아서 성적이 차츰차츰 올라가긴 했지만,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성적이 오르고 있다는 한마디를 정말 건조하게 칭찬하시는 선생님께서도 계셨다. 내가 지금도 존경하는 은사님이시다. 아마도 그 선생님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자격지심을 발판 삼아 계속 위로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쉬는 날 없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다. 뭐 이건 형들도 똑같이 했다는 부모님의 말씀과 부모님께서 형들의 고3 때의 담임선생님(존경하는 은사님)께 부탁하셨기에 했던 것이다.(내가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은 절대 아니다.) 솔직히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은사님의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말까지 나와서 공부하면서 선생님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었다. 그 말씀들 중에서 나를 바꾼 한마디는 ‘너는 너고, 형들은 형들이지, 왜 비교를 하냐?’였다. 부모님도 항상 같은 말씀을 하셨지만, 왜 그때는 선생님의 말씀이 그렇게 마음을 울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말을 되새기면서 생각했다.


‘형들처럼 할 수는 없지, 나는 형들이 아니니까. 부족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형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가지 않을까?’


내 생각의 결론이었다. 저 생각에 자격지심은 들어있다. “부족하지만” 하지만 부족한 것을 매울 수 있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고2 때부터 내 방식의 공부를 시작했고, 최선을 다해서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고2 가을부터 성적이 점프를 뛰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과목에서 그런 것 은 아니었지만, 주요한 과목들은 중상위권까지 성적이 오른 것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내가 그 부족한 걸 뛰어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니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그때 깨달은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걸 ‘자격지심 발판’이라고 부르고 있다. ‘타인과 나를 비교했을 때, 나는 미흡하고 한 없이 초라하다. 하지만 그걸 밟고 올라서면 나는 타인과 비교해도 같은 위치에 있다.’ 계속 자격지심에 잡혀있기보다는 그걸 밟고 올라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어려운 일이다.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해도 안될 거야’라는 생각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럼 언제까지 그 아래서 작음, 미흡함, 초라함과 같이 있을 생각인가? 그것들을 밟고 올라와야 한다. 떨어질 수도 있고, 수없이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걸 잘 밟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자격지심 아래가 아닌, 그걸 뛰어넘어 버릴 수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 겪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남과 비교당하고, 비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초라하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많다. 특히 현재 나와 같은 또래의 사람들은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은 초라하다고만 생각한다. 그럼 자격지심 발판을 사용하자. 쉽지 않을 것이고 수없이 넘어지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성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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