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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지만 갓생이야

5화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큰일 나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졸업 전에 취업했다. 중소기업이었지만, 부모님께 더 이상 부담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만족했다.(물론 수습기간 동안에는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생각했던 업무와 다른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업무를 배우면서 일을 했고, 4개월 정도 지나서 정규직이 되었다. 꿈만 같았다. 많지는 않지만 월급도 받고, 정규직이 되다니! 하지만, 가장 행복할 때 불행이 따라온다고 했던가? 입사한 지 7개월 만에 퇴사를 하고 만다. 그것도 내 의지로 말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왜? 바로 축구를 하다 다치게 된 왼쪽 무릎이 수술이 필요했고, 재활 기간도 상당히 길었기 때문이다. 절망적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있었지만, 수술 후 6개월은 걷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는 걸 알았을 때다. 앉기도 어렵기에 공부도, 운동도 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햇볕이 따가운 한 여름에 나는 수술을 받았다. 더워 미치겠다는 생각보다, 내 생활에서 적어도 6개월은 갓생루틴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5일 후 퇴원하던 날, 목발을 짚었지만 거의 부모님의 부축을 받아서 부모님 차에 탔다. 다리는 굽혀지지 않았고, 발가락만 움직여도 통증이 생겼다. 부모님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내 속은 그게 아니었다. 힘들게 취업했고, 정규직도 됐는데 이런 시련이 생기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씻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에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갔다. 부모님께 가장 죄송했던 시기였다. 

 3개월 동안 누워서 생활하니 몸무게가 100kg으로 늘었다. 재활을 하면서도 무거워진 내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재활을 하면서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고, 앉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내 마음에는 울적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렇게 기본 재활이 끝난 6개월 후, 근육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리는 재활을 시작했다.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하지만, 수술 전의 내가 하던 강도의 10분의 1 수준으로 해야만 했다. 그게 얼마나 답답하던지 무리하고 싶었지만, 수술후유증이 생길까 봐 그렇게 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예전처럼 꾸준하게 운동을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니까 이전보다 더 강한 강도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 순간에도 갓생루틴을 또 찾은 것이다. 바로 ‘처음으로 돌아가기’이다. 


 내가 잘하는 것, 오랫동안 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잘하게 된다. 하지만 슬럼프가 오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사람들 마다 극복하는 방법이 다르다. 여러 방법 중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기가 그 방법이었던 것이다. 공부, 업무, 취미, 특기 모두 슬럼프가 오면 전보다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도 실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 하지만 나는 슬럼프가 오면, 가장 처음에 배웠거나 터득한 방법으로 돌아가서 시도를 해본다. 공부는 손으로 쓰면서, 업무는 기초강의를 들으면서, 취미는 시작할 때 했던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3주 정도 꾸준하게 하면, 이전보다 더 발전되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쉽지 않고 무식한 방법이다. 하지만, 처음에 한 것들을 꾸준히 해서 실력이 쌓이는 것이고, 새로운 방법을 다시 배울 수 있는 방법이다. 어렵지만 시도했을 때 효과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기는 용기도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방식을 가라앉히고, 처음의 방식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더 나은 방식을 찾아갈 수 있다. 나처럼 어쩔 수 없이 터득하게 될 수 도 있지만, 여러분은 시도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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