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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Mar 21. 2022

다 큰 남자를 울린 '미러 워크'

미러 워크: 나를 사랑하는 방법

 "가만히 앉아 있어라. 왜 흘리냐. 빨리 먹어라. 이렇게 안하면 너 큰일 난다."


나는 늘 딸에게 '성장촉진 용어'를 사용했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이런 말을 자꾸 들으면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 긴장되고, 틀리지 않으려고 강박이 생기고, 위축되어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왜 아이를 넉넉하게 품어주지 못하고 자꾸 비난하는 걸까? 이런 나에게 해답을 주는 한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모든 비판을 멈춰야 한다. 자신을 비판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면 다른 사람도 비판하지 않게 된다.
-루이스 헤이, <미러> p.60-

 

딸을 비판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비판하고 있었다. 내 안에 '비판자'의 소리가 말과 행동으로 output 되고 있었다. 딸의 행동이 하나하나 마음에 걸렸던 이유는 내 스스로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이었다. 딸은 거울처럼 나를 투사해서 보여줬다.


<미러> 책에서 '루이스 L. 헤이'는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의 눈을 보며 따뜻한 말을 건네라고 권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시도해 봤는데 참 어색했다. 거울을 보는데 "사랑해"라는 말은 안 나오고 괜히 삐져나온 코털만 눈에 띄었다. 첫날은 코털 뽑느라 끝났다. 미국 정서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의문도 들었다. 더 이상 가족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서 다시 실천해보기로 했다. 점점 내 눈을 바라보는 것이 편해졌고, 하루하루 나를 향해 따뜻한 말을 해줬다. 일주일이 찼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싶어했던 내 마음을 깨닫자 눈물이 나왔다.


미러 워크를 하며 내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쓰럽고 불쌍하게만 여겼다. 저만치 높은 기준을 두고 아직 결과물이 없으면 인정하지 않고 몰아세웠다. '아직 너는 집 마련을 못했잖아. 너는 충분히 돈을 못 벌고 있잖아. 더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혼내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나를 성장시켜온 동기는 따뜻한 지지가 아니라 엄격한 기준으로 두려움을 주는 것이었다.

"~해야지, ~하면 안 돼, ~해야 이렇게 할 수 있어."


딸에게 내가 주로 사용했던 의무 강조형 말투는 내 안에서 반복 재생되는 무의식 소리였다. 내 언어는 부모에게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언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거의 쉼 없이 나를 꾸짖는 오디오트랙이 반복되고 있으니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기준에 맞춰야 사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무슨 일이든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 내가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니 아내와 딸을 수용하지 못하고 "~이렇게 해야만 해"라고 높은 기준을 두고 당근 없이 채찍만 휘두르고 있었다.


그동안 아내가 나에게 많이 표현했던 말이다.

"여보. 한 번만이라도 수용해주고 받아주면 좋겠어요."

사실 딸도 징징거림을 통해 같은 말을 나에게 하고 있었다. 내가 가족을 수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부모가 나를 지지해주지 못했지만, 이제 내가 이 일을 해야 한다. 내가 나를 지지할 수 있어야 아내와 아이를 지지해줄 수 있다. 나는 나의 내면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 너를 정말 사랑해. 네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
괜찮아. 너는 지금 있는 그대로도 완벽해! 내가 널 인정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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