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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Jan 20. 2022

여보! 하고 싶은 것 다해!


아내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 따뜻한 봄 햇살 아래, 아내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보이면 경직됐던 내 얼굴은 춤을 췄다. 5년이 흐른 지금, 아내 얼굴엔 근심과 피곤이 가득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정신이 없다. 2살 된 둘째는 욕구를 채워달라고 엄마 바지를 붙잡고 늘어진다. 낮잠 자기를 싫어하는 5살 딸은 엄마에게 피곤하다고 징징거린다. 힘든 기색인 아내를 돕고 싶지만 이미 내 체력과 정신은 고갈된 상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아내다. 우리 만남은 잔잔한 회전목마 느낌 보다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연애 기간은 고작 9개월. 서로를 충분히 알기에 짧은 시간이다. 결혼 후 바로 다음 달 첫째가 찾아와서 그 해 11월에 태어났다. 결혼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아 셋이 됐다. 가정을 세우는 일에 가치를 두는 아내는 내게 3년의 시간을 정하고 가정을 세우는 데 집중해보자고 권했다. 아이를 가정에서 보육하며 내가 하는 일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참 고마웠다. 하지만 살면서 아내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퇴근시간은 늘 불규칙적이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를 충분히 나누지 못했다. 아내 마음을 읽어줄 여유가 내겐 없었다. 아내를 수용해 주기보다 거절하며 지나칠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아내는 잘 견뎌줬다. 결혼생활 5년이 되어 아내 얼굴을 보니 그동안 눌러온 욕구와 감정이 켜켜이 쌓여있다. 


아내의 사랑의 언어는 '함께하는 시간'과 '스킨십'이다. 꼭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해도 질적으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잠시 책 읽고 글 쓰고 싶은 욕구를 눌러본다.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시간을 따로 정하고 하루 한 시간은 꼭 아내와 대화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집중해서 보내기로 했다. 아내는 첫째 콤플렉스를 가진 이타적인 사람이다. 자기 욕구와 감정보다 남편과 자녀 먼저다. 그래서 몸도 자주 아프다. 아내 건강을 되찾기 위해 저녁 먹고 운동하는 시간을 만들어줬다. 운동하는 날이면 저녁 먹고 바로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여전히 아내가 좋아하는 표현은 잘하지 못해서 딱딱하게 말하곤 한다.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 좀 더 다정하게 말해주면 안 될까요?


아내의 덕분에 공감 능력이 많이 생겼다.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 가장 좋겠지만 아내가 왜 어려워하는지는 알아차린다. 아내의 밝은 에너지 덕분에 내 얼굴도 꽤 부드러워졌다. 자녀 '사랑','바다'를 보면 아내의 실력이 드러난다. 아내는 충분히 훌륭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나 같은 사람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다.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아내가 이제 보여서 미안하다. 이래서 남편과 사는 것을 아들 키운다고 하는 걸까? 아내 덕분에 어른이 되어간다. 




식물에게 물을 주어 생명을 공급하듯 아내는 돌보고 가꿔야 하는 존재다. 잊지 않으려고 의식하고 또 의식해 본다. 매일 밤 대화하며 마시는 꿀 한 모금 탄 배도라지 차는 요즘 우리 부부의 행복이다. 아내를 위해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직장의 환경도 바꾸기로 했다. 아직 입 밖으로 잘 안 나오지만 하루에 다정한 말 한마디씩 해보기로 했다. 아내에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 "여보 하고 싶은 거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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