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내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내게 말했다. 늘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나에게 처방이 필요하다고 느꼈나보다. 나는 어떤 사람과 관계할 때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본다. 감사한 일이 생겨도 자석처럼 불행한 것을 쫓아간다. ‘나는 언제 감사를 느꼈지? 언제 행복했었지?’ 감사한 것을 의식해서 세어보니 감사할 일이 많았다. 가장 감사한 일은 내가 결혼한 것이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살던대로 살았을 것이다. 불행에 휩싸여서 불행을 묵상하고, 불행에 익숙해져서 살아가려는 것은 나의 고질적인 습성이다. 마치 불행이라는 옷을 입고 살아왔던 사람처럼 불행한 이유를 찾으며 왜곡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다.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친밀함'은 '불편함'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세상은 불행한 곳이었다. 어머니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겼고 항상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 내 감정과 욕구보다 어머니에게 맞추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머니에게 맞춰야 사랑 받는다고 느꼈다. 한 사람의 자아상은 생후 처음 양육자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형성된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존감이 낮았고 그 눈빛에 비친 나 자신도 그러했다. 이런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불편했고, 때마다 수반되는 감정은 나를 아프게 했다.
어머니가 습관적으로 표출하던 화는 내 몸에 스며들었다. 일상에서 분노는 기회만 주어지면 습관처럼 튀어나왔다. 찌를 수 있는 기회만 오면 상대방을 찔렀다. 아내가 요청했다. “먼저 잠들지 말고 대화 좀 하자. 집안일은 이제 그만 해.”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정당한 요구였지만 들어주기 싫었다. 아내와 대화는 그만하면 충분했다. 집안일은 불안한 마음의 긴장을 낮추는 방법이었다. 아내의 감정보다 언제나 내 감정이 우선이었다. 아내가 속상함을 토로하면 공감보다 내 마음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어린아이와 다를 것이 없다. 아내 입장에서 나는 공감 능력도 화해 능력도 없는 남편이다.
결혼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행복하기만 한 결혼생활은 펼쳐지지 않았다. 행복을 얻기가 참 쉽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와 관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감정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배웠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몰랐다. 배우자의 감정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아내는 본인도 힘들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대신 알아 차렸고, 원하는 것을 찾도록 도와줬다. 무엇보다 내 존재의 변화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다려줬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낯설지만 따뜻했다. 어쩌면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 싶었던 수용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화내지 말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한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긴장의 끈을 놓기만 하면 금세 고슴도치가 되어 주변 사람을 찌르고 있었다. 내겐 고슴도치 가시를 누그러뜨릴 ‘사랑’이 필요했다. 가시를 세우지 않아도 안전하다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아직도 감정에 지배될 때가 많지만 이전처럼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와도 붙잡지는 않는다. 가시를 누그러뜨려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
아내와 감사한 것 10가지를 억지로 고백하자 내 안에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불행 가운데서 의식적으로 애써 행복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난 점점 행복해지고 있다. 결혼 이후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도 의식해서 행복을 모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