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존책방 Jan 17. 2022

사랑하는 딸에게 자꾸 화가 난다고!

동일시 현상

"어? 여보! 방금 시어머니랑 진짜 똑같았어!"


아내는 내가 신경질 낼 때마다 어머니와 닮았다고 말한다. 웃으며 말하는 아내가 얄밉다. 처음엔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절대 부모처럼 살지 않을 거야!'를 마음에 새겼다. 매일 아침 날 깨우는 소리는 두 분의 싸우는 소리였다. 한 사람만 참으면 될 텐데 어쩜 저렇게 유치하게 매일 싸우는지. 엄마는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아빠는 몇 번 참다가 술을 드시고 와서는 못한 말을 퍼부으며 엄마를 괴롭혔다. 나는 결혼하면 참을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해서 살아보니 나도 부모님처럼 부부 싸움을 하고 있다. 엄마가 나를 대하던 공격적인 말투 그대로 아내와 딸에게 말하고 있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아내에게 상처 주는 남편, 아이에게 화내는 아빠다.    

 

부모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도 없었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어린 나로서 주어진 최선의 선택은 '어머니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동일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닮는 현상, 너무 고통스러워서 가해자와 동일시해 버려서 고통을 줄이려는 시도


엄마가 좋고 싫은 문제가 아니다. 어린 나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엄마처럼 되어버렸다. 엄마를 향해 '나 좀 알아달라고! 나 속상하다고!' 주장하는 마음의 소리를 꺼 버리고 사는 법을 배웠다. 이 감정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나는 부모가 되었고 엄마가 나를 대하던 방식 그대로 자녀에게 똑같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딸 사랑이가 울 때 나는 공감하기 전에 먼저 화가 나있다.


나는 딸이 징징거릴 때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선다.

1. 훈육이랍시고 성질을 낼 것인가?
2. 아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감정을 그래도 부모니까 공감하고 알려줄 것인가?


사랑이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딸인데, 부모로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아이가 불편하다고 표현하면 "그만해! 징징대지 마! 울지 말고 말해!"라며 엄마의 말투와 똑같이 억압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육아 책을 찾아 읽으며 변화를 시도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면>의 저자 최희수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어떤 부분에서 필요 이상으로 분노가 일어나는지 살펴야 한다. 거기에 부모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최희수, 사랑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면-


내가 사랑이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힘든 이유는 사랑이가 원인 제공을 한 것이 아니다. 내가 특별히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도 아니다. 아이가 내 안에 있던 어린아이의 슬픔을 건드린 것이다. 내게 이런 마음이 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참고 살았는데 너는 왜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결하려고 그래? 너도 그래야 맞지!' 어려서 울지 못했던 내면의 슬픔을 감추려고 딸에게 소리친다.


“그만 울어!”

     

이런 상황을 자주 지켜본 아내가 말한다. "왜 아이랑 싸우고 있어요?" 감정은 상대방이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원래 있던 것을 느끼는 것이다. 엄마가 억압한 내 감정과 욕구는 사랑이가 울 때 드러난다. 그동안 슬픈 줄 모르고 살았는데 아이가 내 슬픔을 거울처럼 비춘다. '나는 힘들어도 울지 못했는데 너는 우는구나. 나도 울고 싶었구나.' 감춰진 감정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랑이가 징징거릴 때 여전히 어렵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면에 있는 슬픔을 의식하게 된 점이다. 이젠 부모에게 받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메말랐던 눈물샘이 다시 터졌다. 슬픈 영화를 볼 때 내용이 슬퍼서 우는 것처럼, 내 어린 시절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2017년 결혼 후 가족 덕분에 내면 아이를 발견했다. 결혼한지 한 달만에 사랑이는 우리 가족에게 일찍 찾아와줬다. 내가 빨리 변화될 수 있도록 일찍 찾아와 준걸까? 결혼 후 내면아이 재양육을 시작했으니 사랑이 나이와 내면아이 나이가 비슷하다. 결혼생활 5년 차, 내 내면 아이 나이도 5살쯤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