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아기를 낳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1

by 인생짓는남자

나는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았다. 아기가 필요 없었다. 결혼하고 몇 년간 신혼 기간을 충분히 누린 후에 아내가 아기를 갖자고 했을 때 거부했다. 나는 둘이서만 행복하게 살자고 말했다. 육아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육아는 힘들고 돈도 많이 드니 우리 둘이서만 삶을 즐기자고 말했다. 신혼 초에는 아내도 내 말에 동의했다. 노력해도 아기를 갖지 못하면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던 그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내의 생각이 변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아기를 낳는 모습을 보더니, 아내도 아기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 거부했지만, 아내가 너무도 간절하고 애절하게 원해서 결국 그러자 했다. 그렇게 나는 아빠가 되기로 했다.

육아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내가 잘 아는 이유가 있다. 육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육아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부터 말이다. 결혼 전부터 육아를 충분히 해봤으니까. 그렇다고 돌싱이라거나 어린이집 교사는 아니다. 그저 아기를 돌볼 일이 있어서 오랜 기간 돌봐봤을 뿐이다. 지난 시간, 10년 동안 아기를 돌봐봤다. 외사촌 동생들, 막내 외삼촌 아이들 둘과 첫 조카까지, 세 아이를 낳자마자 각각 다섯 살, 세 살, 다섯 살 때까지 돌봤다. 낮이나 밤이나, 내가 세 아이를 24시간 돌본 건 아니지만,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놀아주는 건 10년 동안 원 없이 했다.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놀아주는 건 숨 쉬는 것만큼 익숙했고 쉬웠다. 그러니 육아라면 전혀 두렵지 않다. 그 어떤 예비 맘, 예비 아빠보다 아기를 잘 볼 자신이 있었다.

외사촌과 조카를 통해 아기 보는 법을 익히긴 했지만, 부작용도 얻었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육아를 직접 경험하다 보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생히 알게 되었다. 육아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아니 나는 그 굴레에 메이기 싫었다. 그 힘든 과정을 절대 겪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아기를 참 좋아하고, 잘 돌볼 수는 있지만, 굳이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아내의 간청에 동의했으니 정말 큰 결심을 한 셈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빠, 엄마가 되기로 했다.




막상 아기를 갖기로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결심만 하면 바로 아기가 들어설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임신은 한도 끝도 없어 보였다. 과연 가능하긴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지 않았다. 남들은 잘만 임신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아기가 잘 들어서는 부부도 있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왜 받는 그제야 알았다.

아내가 매달 기대하며 임신 테스트를 했다. 처음에는 두 줄이 나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아내는 다음 달에 가지면 된다며 쿨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시간이 계속 지나가고, 테스트기가 수북이 쌓이자 아내는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아기를 못 갖는 게 아닌가 불안해했다. 처음에는 아내를 다독여 주었다. 괜찮다고, 또 시도하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내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불안해하고, 짜증 내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나도 스트레스를 받고 너무 답답해서 아내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아기를 갖지 말자고. 하지만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꼭 갖고 싶다며 울먹였다. 너무 애타게 말하는 아내의 모습에 다시 알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노력하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아내가 임신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화유, 태아를 잃고 말았다. 아니, 착상하지도 못했으니 정확히 말하면 임신한 것도 아니고 태아를 잃은 것도 아니다. 아기가 들어서려고 했던 것을 알았다면 아내가 무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그 사실을 몰라서 무리하게 일을 했더니 참 슬픈 일이 닥쳤다. 들어서지 않은 아이를 잃어도 이렇게 슬픈데 태중에 있던 아기를 잃었으면 얼마나 슬펐을까 싶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이렇겠구나,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그제야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무거운 마음도 잠시, 다행히 그다음 달에 마침내 임신을 했다! 전 달에 있던 사건이 거울이 되어 이번에는 아내가 조심했다. 몸의 변화를 면밀하게 살폈다. 병원에서 결과를 확실히 확인할 때까지는 기쁨을 누리는 시간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몇 주를 초조해하며 기다렸다.

몇 주가 어찌나 느리게 흘러가던지, 천년만년처럼 느껴졌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병원에 갈 시간이 됐다. 기대와 걱정을 한 아름 품고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임신이 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이 이번에는 확실했다. 임신이 이렇게 힘든 줄 진작 알았으면 시간을 끌지 않고 결혼하자마자 아기를 가졌을 것이다. 임신이 이렇게 어렵다니... 그래도, 이제라도 임신이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노력해도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들의 고통이 피부로 와 닿았다. 과장 조금 보태면 임신이 육아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임신이 실로 위대해 보였다. 생명이 참으로 경이롭게 느껴졌다.




열 달이 지나면 나도 아빠가 된다. 아빠, 그 무거운 짐을 나도 지어야 한다... 그렇다고 엄마가 지어야 할 짐이 아빠보다는 가볍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아빠에 대해서만 말하는 거다. 어쨌든 아빠가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어른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른들 말씀에 아이를 날아야 어른이 된다고들 하니까(다른 글 - 어른이 되려면​). 아빠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짐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책임져야 할 입이 하나 혹은 둘 이상이 더 생기고, 그만큼 인생의 무게가 더해진다는 말이다. 책임감이 늘어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과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육아가 그토록 자신 있다고 한 나이지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피하려고 했던 건 육아가 아니라, 양육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단지 돌보는 것과 양육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아이는 누구나 돌볼 수 있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것이야 처음에는 누구나 서툴지만, 하다 보면 실력이 생긴다. 하지만 아이를 번듯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나 자신 조차 바르게 세우지 못하는데 어떻게 또 다른 사람을 바르게 세울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의 인격을 기초부터 차근히 쌓아 올려 주는 그 크나큰 책임과 대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짐을 지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