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 대작전

아기를 낳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3

by 인생짓는남자

나는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내 이름이 부끄러웠다. 어릴 적에 이름 때문에 끝도 없이 놀림당했기 때문이다. 초중고, 친구들에게 별의별 놀림을 다 당했다. 커서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서른이 되어서야 겨우 스트레스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쯤에는 이미 득도해서 내 이름으로 누가 뭐라든 웃어넘겼지만, 지난 세월 마음고생이 심했다. 오죽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내 이름을 왜 이렇게 지으셨냐며 속으로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심지어 개명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 자식은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을 보니 내 이름보다 더 심했다. 손주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드린 적도 없는데 아내가 임신하자마자 이름을 잔뜩 지으셨다. 뭐, 예쁘기만 하면냐 아버지가 짓든 내가 짓든 아무 상관없었다. 하지만... ‘치덕’, ‘치준’, ‘치광’... 항렬자에 집착하셔서 전부 이상했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을 썼다가는 나보다 더 놀림 당하리라 확신했다.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버지가 서운해하셔도 태클을 걸어야 했다. 안 그럼 꼼짝없이 저 이름 중 하나를 사용해야 할 테니까.

아버지가 이름을 쭉 불러 주시자마자 하나하나 반박했다.

“‘치덕’은 그 자체로 이상하고, ‘치준’은 ‘취준생’으로 놀림당하겠네요. ‘치광’은 ‘미치광이’가 되잖아요. ‘치’자가 이상해요. 우리 세대나 우리 아이 세대에는 아무도 항렬자에 신경 안 써요. 이제 족보는 사라질 거예요. 그리고 내가 이름 때문에 이날 이때까지 얼마나 놀림당했는데, 커서도 놀림당했어요! 그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데요! 우리 애는 이름 때문에 놀림당하게 할 순 없어요!”

아버지의 표정을 흘깃 보니 매우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다. 조카들 이름도 항렬자로 전부 지으셨으니, 우리 애도 그러고 싶으신 게 당연했다. 아버지의 바람이 어떻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내 자식에게 내가 겪은 스트레스를 물려줄 수는 없었다.

이름이 독특한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 이름이 하도 독특하니 사람들이 한 번만 들어도 기억했다. SNS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회가 마련되어 오프라인에서도 만나면 내 이름을 단번에 기억해 주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내 이름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내가 유명인사도 아닌데, 그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니 이름은 무난하거나 듣기 좋은 게 최고다.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을 거부하기만 하고, 대안은 마련하지 않으니 문제가 생겼다. 다른 이름을 계속 지어 주신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역시 전부 이상했다! 태어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왜 그리 열과 성을 다해 손주 이름을 지으시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자식들 이름은 당신이 못 지으셔서 그런 걸까? 항렬자가 별로라고 대놓고 못박았는데도 눈치를 못 채신 걸까? 참으로 갑갑했다.

“자기들이 알아서 지으라고 해요.”

어머니가 면박을 주셨는데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손수 지으신 이름을 무조건 써라, 하시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 이름은 어떠냐고만 하셨을 뿐이다. 싫다는 데도 계속 지어 주시니 답답하면서도 측은하게 느껴졌다.

나도 아버지만큼, 아니 그보다 더 우리 아이 이름을 멋지게 지어주고 싶었다. 귀에 쏙 들어오고, 우리 아이가 돋보일 만한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름을 짓기 쉽지 않았다. 아니 평범한 이름조차 짓기 어려웠다. 이름 짓는 게 그리 어려운 줄 몰랐다. 게다가 거창한 뜻을 담으려니 더욱더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동안 아버지는 계속 새 이름을 쏟아 내셨다.




사람에게 이름은 중요하다. 사주나 성명학에 근거해서? 아니, 나는 그런 건 모른다.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 이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름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가벼우면 왠지 그 사람도 가볍게 느껴진다. 가령 어떤 사람의 이름이 ‘개똥’이라고 하자. 사람들이 그를 우습게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이름이 개똥이니까. 그의 이름이 개똥이라고 해서 그가 하찮은 취급을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똥을 더럽고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개똥에 대한 그런 인식이 무의식 중에 그에게 전이된다. 진짜 개똥만큼은 아니지만, 그 이름 때문에 그는 가볍게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또한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는 중요하다. 다시 개똥이를 소환하자. 개똥이도 자신의 이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개똥이라고 부를 때마다 작아질 것이다. 소심해지고 주눅들 것이다. 마치 자신이 개똥이 된 듯 느낄 것이다. 개똥은 더럽고 하찮은 것이니까.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어쨌든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은 한 사람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니까. 이름은 곧 그 사람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름을 짓밟으면 그 사람을 짓밟는 것이다. 이름으로 장난치면 그 사람에게 장난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 이름을 애칭으로 바꿔서 친근하게 부르긴 해도 - 말이다. 우리에게 이름은 그만큼 중요하다.




한번 지은 이름은 평생 간다. 법적으로 개명이 쉬워졌음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무리 이상해도 웬만하면 그냥 사용한다. 그만큼 이름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심리적으로 말이다. 이러니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아내가 먼저 여러 개를 지어 보여 주었다. 그중 한 가지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중성적인 이름이었다. 중성적인 이름이 예쁘다며 그 이름을 사용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다 별로라고 말했다. 중성적인 그 이름은 더욱 안 된다고 말했다. 이름은 정체성을 형성하니 성별에 맞게 지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말이다.

결국 이름을 짓지 못한 채 산달을 맞이했다. 아버지는 그새 또 다른 이름을 다발로 지어 놓으셨고, 나는 들어보지도 않고 싫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는 이름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났다. 우리 부부는 며칠 동안 태명으로 불렀다. 태명으로 부르면 어떠랴. 태명도 이름인데. 아직 이름을 못 지었으면 어떠랴. 출생 신고하기 전까지만 지으면 되는데.

고민고민하다가 마침내 출산 후 사흘 만에 이름을 확정했다! 출생 신고하러 가기 위해 부랴부랴 지었다. 내가 지은 이름은 아내가 다 싫다고 해서 아내가 지은 이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내가 선택했다. 이름은 지었으니 한자도 붙여야지. 항렬자로 이름을 지으려던 뜻을 꺾어서 서운하실 테니, 한자는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아버지가 몇 개 골라 주셨고, 그중 괜찮은 걸로 내가 선택했다. 한글 이름을 먼저 짓고, 한자 뜻을 좋은 걸로 갖다 붙였다. 아무렴 어떠랴. 뜻이 좋기만 하면 되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그 녀석의 정체성이 되어줄 그 이름을. 평생 그 녀석과 함께할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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