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된다는 것

아기를 낳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4

by 인생짓는남자

사랑스러운 복덩이가 우리 부부 곁을 찾아온 지 어느새 90일이 되었다. “엄마, 아빠, 저 드디어 세상에 나왔어요!”라고 신고식을 하듯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린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곧 백일잔치를 하게 생겼다.


처음 한 달은 정말 지옥 같았다. 양가 모두 가까웠지만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내와 둘이서만 아기를 돌봤다. 지금은 거의 안 울지만, 한 달 동안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통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디가 아픈 건지, 뭐가 불편한 건지 알 수가 없으니 그저 애만 탔다. 아무리 달래도 우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뿐이랴...


몸에 생체 시계가 달렸는지, 정확히 두 시간 텀으로 젖을 먹었다. 시간이 정확한 것까지는 좋은데... 먹이고 재우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젖 먹이는데 30분, 재우는데 30분. 간신히 먹이고 재우면 겨우 30분 혹은 한 시간 자고 일어나서 다시 빽빽 울었다. 그럼 또다시 30분 먹이고, 30분 동안 재우고... 낮이건 밤이건 이 패턴이 반복됐다. 도무지 숨 쉴 틈조차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몸은 천근만근에 잠까지 부족해서 스트레스 지수가 점점 올라갔다. 아내 바라기, 남편 바라기였던 우리 두 사람은 피곤에 절어 대화 한 마디 없는 남남이 되어갔다. 걸리기만 해 봐라, 말실수 한 마디에 잡아먹을 것처럼 예민해졌다.


아, 불과 두 달 전이긴 하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얼마나 힘들었냐면, 아기가 너무 운다고 얼굴에 베개를 덮어 숨 막혀 죽게 한 어느 엄마의 심정이 이해될 정도였다. 조카와 사촌 동생을 돌봐 봐서 아기 보는 게 힘든 줄은 진작 알았지만, 내 자식 돌보는 건 조카와 사촌 동생을 옆에서 시간 날 때만 돌봐 주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죽했으면 ‘괜히 낳았나’ 후회까지 했다. 동시에 ‘이러니 아기 엄마들이 우울증이 걸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부모 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생후 한 달 동안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얼마나 여유가 없었으면, 아들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녀석의 얼굴을 한 번도 지그시 바라보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 시기의 모습을 한가득 남기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그래도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사진도 많이 찍고, 아들의 모습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이제야 사랑스럽고 예뻐 보인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물었다.


“이제야 자기 자식 같아?”


집에 막 데려왔을 때는 ‘얘가 누구지?’ 싶었고, 아빠가 된 것을 실감하지도 못했다. 그때는 초음파 사진으로만 보던 녀석을 마침내 실물로 보게 돼서 신기하기는 했지만, 사랑스럽거나 예쁘다는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럴 만한 마음에 여유도 없었고.


아들이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볼 따귀가 멍들 정도로 꼬집고 싶어 진다. 너무 예뻐 죽겠다. 그렇게 예쁜 녀석을, 곤히 잠든 모습을 볼 때마다 무언의 압박을 느낀다. 이제야 아빠가 된 걸 실감한다.

아내와 내가 없으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이다. 우리가 먹여 주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된다. 재워 주지 않으면 혼자 자지도 못한다. 씻기지 않으면 피부가 상한다. 정말 스스로 그 무엇도 하지 못한다.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과연 내가 이 녀석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된다.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 ‘이 녀석의 인격 형성을 잘 도와서 어엿한 한 사람으로 잘 양육할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내 인생 하나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데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이 녀석을 감당할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난다.




아빠가 된다는 건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함을 뜻한다. 또한 아빠가 된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함을 의미한다. 생명과 인생을 책임지는 건 무서운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살고 죽고, 어떻게 이끌어 주느냐에 따라 악인이 되느냐 선인이 되느냐가 갈린다. 20년 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범죄자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선생님이 '이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내 아들이 그와 같은 범죄자가 되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하는 건 아니다. 그만큼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내와) 나만 의지하며 살아갈 텐데... 어쩌면 평생을 그럴지도...




그동안 흐물흐물 살아왔다.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았다. 내 멋대로 살아왔다. 내 삶을 스스로 비꼬는 게 아니다. 그만큼 자유롭지만 내 인생에 대해 책임감 없게 살았고, 그렇게 살아온 결과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다. 아들이 커서 “아빠 이거 사줘”, “아빠 저거 사줘”하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는 아들이 사달라는 거 사 줄 능력이 안 되니까. 그런 삶을 살아온 게 한심하고 부끄럽다.

아들이 태어나서 부담만 느끼는 건 아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생겼다. 비록 지금까지는 한심스럽게 살았지만, 이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정거장을 꽤 많이 지나왔지만, 아직 종착역에 다다르지는 않았으니까. 언제 마지막 정거장에 이를지 모르지만, 100세 시대에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으니 더 열심히 살자 싶다. 지난 삶이 후회스럽지만, 아들이 사달라는 거 사주지 못하는 일생일대의 한은 남기지 말자 싶다. 아들이 “이거 사줘”하면 “그래”, “저거 사줘”하면 “그래” 할 수 있게 살아야지. 이제 나도 아빠가 되었으니까. 아빠 노릇은 해야지.




아빠가 되면(엄마가 돼도 마찬가지) 내 인생은 없어진다(자식을 낳고 엄마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다). 내 개인 시간도 없어진다(아빠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다). 내 인생은 자식의 것이 되고, 내 시간도 마찬가지다. 내 모든 시간과 정신과 에너지와 물질이 자식에게 쏠려 나의 모든 것, 내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다. 그런 면에서 아빠가 된다는 건, 부모가 된다는 건 내 존재를 희생하고, 새로운 존재를 이 세상에 각인시키는 숭고한 사명을 떠안는 것이다.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만큼 두려운 건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으니까. 사람은 태생적으로 나는 어디서 왔는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근원과 정체성을 끊임없이 찾고 확인한다. 근원과 정체성을 확인함으로 자신의 존재에 정당성과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헤맨다. 갑자기 웬 철학적 괴변인가. 아기 얘기하다 말고 너무 멀리 나갔나?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아무말 잔치가 되었다.


아무튼 나는 아빠가 되었다. 평생 아빠로 살아야 한다. 누군가의 아빠로 불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렇게 불리지 않을 수 없으니 즐기고 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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