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5
“아기 보면 예쁘죠?”
며칠 전 만난 지인이 내게 물었다. 아들을 낳기 전에 남에 자식도 예뻐했는데 내 자식은 오죽할까. 지인의 물음에 “네. 예뻐요!”라고 대답하는 게 맞겠지만,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예뻐 보이기는 한데요. 막 예쁘지는 않아요.”
너무 무심한 말이지만, 자식을 외면하는 말은 아니었다. 무언의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예쁘긴 하지만 먹고사는데 신경 쓰느라 예쁜 걸 즐기지 못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외벌이 할지 고민하고 있거든요. 아내를 육아에 전념하게 하고, 저 혼자 돈을 벌었으면 해요. 그러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돈을 더 벌어야 하니는데요.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벌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신경 쓰느라 예쁜 걸 즐길새가 없네요.”
사실이다. 외벌이로는 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사회 구조와 환경 탓도 있지만, 그걸 탓하기 전에 내 능력 부족에 한숨이 나온다. 능력 부족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 하기에 요즘 잘 살 방법을 궁리 중이다. 그러다 보니 아들 커가는 모습을 눈에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퇴근하면 아들을 잠시 보고, 재운 후에는 으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궁리한다. 이렇게 내 신경이 온통 다른데 가 있으니 아들을 보아도 보는 것 같지 않을 수밖에. 내가 한 말인 대도 못내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그래도, 지금 시기는 순식간에 지나가니 최대한 누려야죠. 안 그럼 나중에 후회할 테니까요.”
정말 그럴 것 같다. 가족을 위해 살다 보니 정신없이 사는 거지만 자식 커가는 것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니... 그러면 정말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자식이 크고 나서 어릴 적 모습이 기억나지 않으면 얼마나 한스러울까. 나는 가족을 위해 다른데 정신을 쏟는 거지만, 그렇다고 가족에게 소홀하면 안 되지. 가족에게 소홀한 건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건 무조건 가족에게 잘못하는 거다.
부모님이 손주를 볼 때마다 엄청 예뻐라 하신다. 뭐가 그리 예쁜지 정말 난리다. 정말 그렇게 예쁜지 하도 궁금해서 여쭤 보았다.
“아버지, 그렇게 예쁘세요?”
“당연하지.”
“아기 때 저를 본 것보다 더 예뻐 보여요?”
“너 예쁜 거랑 손주 예쁜 거랑은 달라.”
“뭐가 그렇게 달라요?”
“너는 너대로 예뻤고, 손주는 손주대로 예쁘지.”
“근데 손주가 어디가 예쁘길래 그리 예뻐하세요?”
“자식은 먹고살기 바빠서 예뻐도 예쁜 줄 모르고 길렀지. 하지만 손주는 자식 다 키우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보니까 예쁜 걸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더 예쁘게 느껴진단다.”
나도 아버지처럼 자식은 예뻐 해주지 못하고, 손주를 보고 나서야 예뻐하면 어떡하지? 왠지 슬퍼진다. 내 자식은 내가 가장 예뻐해 주어야 하는데... 먹고 사는데 신경 쓰느라 그렇게 된 것이긴 해도 나도 내 자식의 예쁜 시절을 그냥 흘려 보내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가슴 아프다.
지인에게 대답하자마자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지금 모습을 다 놓치고 나면, 아내가 육아에 전념한들 뭔 소용이 있을까. 나중에 자식이 다 크고 나서 이런 말을 하면 어떡하나.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예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내 몸 돌보지 않고 죽어라 일했는데, 자식이 이렇게 따지면 마음이 정말 속상할 것 같다.
“너를 먹이고 입히려고 죽어라 일했는데 그게 아빠한테 할 말이야?”
그때 가서 자식에게 이렇게 항변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식이 원한 건 그런 희생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물론 그런 희생이 필요하긴 하다. 온 가족이 먹고살려면 말이다. 부모의 그런 희생은 참으로 숭고하다.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핑계로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숭고함은 챙기겠지만, 가족 간에 끈끈한 정과 애틋함은 결코 챙길 수 없다.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들다는 핑계로 생후 한 달 동안, 작고 연약해서 만질 수조차 없던 자식의 모습을 내 기억 속에 가득 담지 못했다. 불과 두 달 전이지만, 그때 아들 녀석의 모습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도 그런데 몇 년이 지난 뒤에는 어떻겠는가. 지금 아들 녀석의 모습을 내 기억 속에 차곡차곡 담아두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다.
가족을 배불리 먹이고, 더 편히 살게 해주고 싶다는 숭고한 욕심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 있었지만, 정신이 다시 머나먼 여행을 떠나지 않게 단단히 붙들어 매야 겠다. 뭘 안다고,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사랑스러운 웃음을 발사해주는 아들 녀석을 마음껏 예뻐해 주자. 아기들은 순식간에 큰다. 지금 그 모습을 기억 속에 가득 담아두지 않으면 다시는 볼 수도 없고, 추억할 수도 없다. 가득 담아 두어도 희미해지는 기 기억인데... 아들의 모습을 기억에 담아 두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난 후에 자책할지도 모른다. 아버지 도리 한답시고, 아들 녀석을 예뻐해주지 못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