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6
세월호 사건.
지인이 이 사건을 바라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모른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였는데,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그도 느끼는 듯 몹시 안타까워했다. 옆에서 그를 바라보며 왜 그토록 가슴 아파하는지,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고, 분노하기까지 했지만 내 일처럼 아파할 수는 없었다. 냉정히 말해서 내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의 반응이 다소 의아해서 왜 그리 안타까워하냐고 물었다. 그가 딱한 마디만 했다.
“너도 자식을 낳아 보면 알게 될 거야.”
나도 이제 아빠가 되었다. 그때는 지인의 말이 이해가 안 됐지만, 이제는 이해가 된다. 아빠가 되니 지인의 말이 뼛속 깊이 와 닿는다. 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이제야 그 사건에 감정이입이 된다.
백일이 조금 지난 아들을 가슴에 안고 내려볼 때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에 하나, 아니 백만 천만에 하나 이 녀석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해서는 안 될 생각이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기에 매번 생각을 마무리짓지 못한 채 급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만약 아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나라를 잃은 것보다 더 큰 상실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울긋불긋 얼굴에 뭐가 나서 가슴이 쓰리다. 작은 상처에도 마음이 그런데 더 큰일이 생기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플 것이다. 내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느낄 게 분명하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그렇다는 걸 이제야 경험한다. 그래서 이런 말도 이제야 공감이 된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
정말 그렇다. 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만으로는 자식을 향한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자식이 불치병에 걸리면, 가능하다면 내 몸을 당장 내어줄 수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장기를 내어줄 수 있을 각오도 되어 있다. 부모에게 자식은 그런 존재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 마음은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너도 자식 낳아봐라.”
이 말대로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속 깊은 자식이라도 부모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자식이 투정 부리고, 온갖 짜증과 화를 내도 아무 말 않고 참는 게 부모다. 똑같이 맞받아 치며 화낼 수 있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르고, 화나게 해도 말이다. 왜 그럴까?
자식이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의 입을 닫게 만들고, 마음이 열리게 하는 존재다. 또한 자식은 부모가 늘 가슴앓이 하게 만드는 존재다. 자식이 부모를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있다. 단지 내가 낳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힘없고 연약한 시절, 부모에게 절대 의존하던 그 시절부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길러냈기 때문이다. 응애응애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핏덩이를, 조금 컸다고 목도 조금씩 가누고 간간이 웃기도 하는 그 모습을, 안아서 젖을 먹이고 재우며 꾸벅꾸벅 졸기도 하던 그 시절, 이제 뒤집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 기어 다니며 앉고 일어서던 모습, 뛰어다니고 조금씩 말을 시작하던 그 모습, 제법 말할 줄 안다고 생떼 부리고 말대꾸하던 순간, 어디가 조금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밤을 지새우던 순간.
이런 순간들이 부모의 머릿속에, 아니 심장에 차곡차곡 박혀 있다. 부모의 가슴에는 그 모든 순간과 기억이 세포와도 같이 박혀 있다. 그 기억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목숨을 잃는 듯하다. 자식에 대한 기억은 부모의 일부가 되고, 그 기억과 함께 자식은 부모의 전부가 된다. 그러니 부모는 대드는 자식에게 아무 말 않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렇게 구구절절 적은들 부모의 마음은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아무리 길게 적고 다양한 표현을 사용해도 부모의 마음을 약간만 드러낼 뿐이다. 부모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어른들 말씀처럼 부모가 되는 수밖에 없다.
이제 뒤집고 기려고 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괜히 눈물이 글썽거린다. 나를 바라보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해서다. 지금껏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시고 아껴 주신 것처럼 나도 아들 녀석을 부모님의 그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아끼게 될 것이다. “내 아들”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 아들이 나이 들어 60이나 먹어도 아들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 새끼~ 우리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