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은 비교가 안 되게 예뻐 보인다

아기를 낳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7

by 인생짓는남자

9년 전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 느꼈던 감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조카’라니. 갓 태어난 조카를 보며 느꼈던 그 감정은 여느 연약한 핏덩이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그 감정과는 전혀 달랐다. 아기를 보면 정말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잖은가. 조카를 바라봤을 때도 그런 감정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감정도 느껴졌다. 말하자면 ‘혈육에 대한 끈끈한 애착’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아기를 바라볼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아기를 좋아한다. 아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기를 안으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물고 빨고 막 흔들고 싶다. 아기가 짜부 되든지 말든지 꽉 안아 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 표현을 하는 걸 부끄러워 하기에 앞에 아기가 있어도 츤데레, 관심 없는 척한다. 안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기를 끔찍이도 좋아하기에 네 살 터울인 외사촌 동생들을, 우리 집에서 둘 다 다섯 살까지 길러주었을 때 정말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돌봐주었다. 조카가 태어나도 더 이상 나누어 줄 사랑이 없겠다 싶을 만큼 마음을 다해 예뻐해 주었다. 첫 정이 무섭다고, 태어나서 처음 안아 본 아기였으니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카가 태어나니 예상 못한 결과가 벌어졌다. 생각도 못한 감정이 몰려왔다. 동생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조카를 보며 느꼈다. 신기했다. 동생들에게 전부 쏟아서 더 이상 조카에게 쏟을 애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없던 애정이 솟아났다. 아기를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는 감정 이상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 감정을 이렇게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조카가 동생들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고 말이다.

똑같은 아기인데 왜 다른 감정이 느껴질까, 왜 조카가 더 예쁘고 사랑스러울까 싶어 곰곰이 생각해 봤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혈육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조카 몸에도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동생들에게서도 내 몸에 흐르는 피가 흐르긴 한다. 외사촌 동생들도 내 핏줄이다. 하지만 동생들과 조카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친 형의 자식이라 더 끈끈한 핏줄에 대한 정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어느 날, 아기를 지그시 바라보는 내 모습을 본 지인이 내게 물었다.

“아기 낳고 싶지?”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아기는 예쁘지만 자식은 잘 모르겠어.”

아기를 옆에서 바라보고 잠깐 안는 것과 직접 기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선뜻 “당연하지!”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머뭇머뭇 대답하자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아기 기르는 게 힘들긴 하지만, 낳아 봐. 낳으면 달라. 남에 아기를 보는 거랑 내 아를 보는 거랑은 완전히 달라. 힘든 걸 다 잊을 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워.”

그는 자식이 있었다. 그때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예쁘다는 건지 그때는 몰랐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야 지인의 말이 이해된다. 내 자식을 낳고 보니 지인의 말대로 정말 다르다. 내 애는 확실히 다르다. 모두 똑같은 아기지만, 남의 아기를 바라볼 때와 외사촌 동생들을 바라볼 때 느꼈던 감정이 달랐고, 외사촌 동생들을 바라볼 때와 조카를 바라볼 때 느꼈던 달랐다. 그리고 이제는 내 자식을 바라보니 조카를 바라볼 때와 또 다르다. 조카도 혈육의 끈끈한 정이 느껴졌는데, 내 자식은 더 그렇다!




지지난 주에 아내 지인 부부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결혼한 지 2년 된 커플인데 아직 아기가 없다. 그들이 내게 물었다.

“아기 낳으니까 다른 아기 볼 때랑 정말 달라요?”
“네. 달라요.”
“뭐가 그렇게 달라요?”

나는 이 물음에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내 자식은 애착이 느껴져요. 어떤 걸로도 끊을 수 없는 애착 말이죠. 그 애착 때문에 더 정이 가고, 더 예뻐 보여요. 그리고 이 녀석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져서 더 마음이 가고, 더 사랑스러워요.”

정말 그렇다. 내 피가 섞였다는 사실에서 오는 애착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이 두 가지 때문에 내 자식은 달라 보인다. 특히 애착 때문에 그렇다. 남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 애착, 심지어 외사촌 동생에게서도 느끼지 못했고, 조카에게서는 미약하게나마 느낀 그 애착을 내 자식에게서는 강하게 느낀다. 부부라는 그 교집합으로 아내와 나의 몸과 마음은 결코 갈라질 수 없는, 하나라는 애착과 결속력이 느껴지듯이, 내 피를 받았다는 사실로 생긴 (아내 입장에서는 열 달 동안 배 속에 품어서 생긴) 애착 때문에 내 자식과 나 사이에 어떤 걸로도 끊을 수 없는 연결 고리가 만들어졌다.

아들 녀석을 바라볼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또 한 명의 내가 앞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 피를 이어받은 데다가 날 닮기까지 했으니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애착이 생기니 아들 녀석을 바라볼 때마다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사랑스럽게 느껴지니 아들을 볼 때마다 내 심장이 빨리 뛴다. 심박수가 올라가는 게 느껴지면 마치 그 녀석이 내 가슴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펄떡펄떡 뛰는 내 심장이 있는 그 자리에 아들 녀석이 들어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심장을 떼어내고 아들 녀석을 그 자리에 넣어도 나는 멀쩡히 살아 숨 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내 자식에게 애착이 간다. 이런 애착 때문에 내 자식이 더 예뻐 보이는 것일 테다.




이제 막 아들을 낳았을 때는 내 자식이 생겼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지인들이 내게

“자식 낳아보니 기분이 어때?”


라고 물었을 때

“아직 실감이 안 나. 더 커서 ‘아빠, 아빠’ 말해야 실감이 날 것 같아”


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자식을 낳았는데도 전혀 실감 나지 않았고, 그 어떤 애착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크니, 제법 옹알이도 하고 내가 아빠라는 걸 알아보기 시작하니 갑자기 애착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식 낳은 게 실감이 났다. 아직 아빠라는 말도 못 하는데도 말이다.

지금도 이런데 아빠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도 아들 녀석이 혼자 웅얼거리면 “엄마”, “아빠”라고 말할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 넉 달밖에 안 된 아기가 무슨 말을 하겠냐만은, “아빠”라는 말을 그만큼 듣고 싶은가 보다. 아들이 나를 바라보며 “아빠~”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 더욱더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겠지? 지금보다 더욱더 애착이 가겠지? 그날이 몹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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