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직원들과 대화하던 중에 인사에 관한 말이 나왔다. 한 직원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 중 한 분이 늘 무표정하게 인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다른 아저씨는 안 그러는데 그 아저씨만 그런다고.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서로 매일 보는데 왜 그렇게 인사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왕이면 웃으며 인사하는 게 좋지 않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꼭 그런 사람이 있다며 이해가 안 된단다. 맞는 말이다. 격하게 공감이 갔다. 하지만, “너나 잘하세요” 그 직원을 향하여 이 말을 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건 다른 사람 일이 아니라, 바로 그 직원에게 해당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겠지만.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서로 인사한다. 대개 “안녕하세요”라는 말만 하고, 가끔 묵례를 곁들인다. 활기차게 인사하지는 않지만, 다들 인사를 잘 주고받는다. 위에서 말한 직원만 빼고. 그는 인사를 안 할 때가 많다. 한 달 동안 먼저 인사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다른 직원들이 먼저 인사를 해도 제대로 화답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모기 소리 만하게 ‘에’라고 웅얼거리거나 살짝 목례만 한다. 제대로 된 그의 인사를 받기 참 힘들다. 그가 소리내어 인사해 주면 황송할 정도다. 이 정도면 그의 모습은 정확히 그가 말한 아저씨와 같지 않은가? 그러니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우리는 남의 흠은 잘 본다. 반면 자신의 흠은 잘 보지 못한다. 일부러 외면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잘 보지 못할 뿐이겠지. 자신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남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평가하고 반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기 힘들뿐더러 귀찮으니까. 남의 티는 집중해서 관찰하지 않아도 쉽게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티를 보려면 신경을 꽤 써야 한다. 조목조목 따져야 겨우 보인다. 그러니 자신의 티를 보기 힘들 수밖에.
우리 사회가 그리 밝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반성을 하기보다 남을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 사람 왜 저래’라고만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에 각종 문제가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역지사지’라는 말대로 모두가 자신의 입장보다 상대의 관점에서 먼저 생각한다면 사회가 좀 더 밝아질지도 모른다. 모두가 역지사지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거나 기분 나쁠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면, 서로 기분 좋을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점점 더 개인주의화, 차라리 개인주의화가 된다면 낫겠지만 이기주의가 진행되기에 그런 바람은 꿈에서나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내일은 그 직원이 제대로 인사할까? 아니, 몇 년을 봐도 변하지 않았던 그의 아파트 경비 아저씨처럼 그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갑자기 변할 수도. 아니, 그럼 안 된다! 왜, 그런 말 있잖은가.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는 말. 그가 변한다고 해서 곧 죽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의 모습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의 변화가 몹시 어색하게 느껴질거라는 말이다. 그래, 차라리 지금 모습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