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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Jul 18. 2019

서민이면 어떤가. 사는데 아무 지장 없는데.

2012년, SNS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글이 있다. ‘중산층 별곡(別曲)’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각국의 중산층 기준을 나열한 글인데, 다시 봐도 제법 흥미롭다.




• 한국의 중산층 기준  (직장인 대상 설문 조사 결과)
1.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3. 자동차는 2.000cc급 이상 중형차 보유
4.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1회 이상 다닐 것.


•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 (퐁피두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정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할 것.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할 것.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할 것.
4. 손님을 집에 초대했을 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가 있을 것.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 영국의 중산층 기준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중산층 기준)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 미국의 중산층 기준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것.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것.
4.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




세 나라 국민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내용만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 기준은 정말 몹쓸 녀석이다. 물질만능주의의 전형이라고 해도 될 만하니까.

세 나라는 가치관과 행동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만 경제 능력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왠지 서글프다. 아무리 중산층을 구분하는 명문화된 합의가 없다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중산층은 저렇지 않다고 잡아뗄 수 없으니까. 우리 사회의 단면임은 확실하니까.

저 기준에 따르면 나는 서민이다. 중산층과는 먼, 지극히 평범한 서민이다.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지만 부채가 있으니까. 월급이 500만 원은커녕 300만 원도 안 된다. 자동차는 국민차 아반떼를 보유 중이고, 예금 잔고? 매달 1천 원이라도 예금해 보고 싶다. 은행 빚 갚기도 벅차다. 해외여행은 결혼 4년 동안 한 번 갔다. 그러니 나는 중산층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해 보면 사는데 중산층이냐 아니냐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삶에 만족하며 사는지가 중요하지. 행복은 경제력 순이 아니니까. 중산층은 아니지만 내 마음은 부요하니, 됐다. 집이 있든 없든, 차가 있든 없든, 얼마를 벌든지 간에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아무 문제없다.

아무리 중산층에 속해도 마음이 부요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보다 상위 계층과 비교하며 가난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난한 거다. 서민과 비교하며 부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래, 부요한 거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해서 뭐하나. 남들이야 어떻게 살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나. 나만 바라보고 살면 되지. 그럼 어떻게 살든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남과 비교한다. 중산층이든 서민이든 위만 바라본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 계속 비교하고,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고 느낀다. 남들보다 못해 보이니 삶이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가진 게 별로 없다. 가진 거라고는 사지 멀쩡한 몸뚱이뿐이다. 아, 세 식구가 살기에 운동장 같은 30평 대 아파트가 하나 있긴 하다. 그래 봐야 우리 집이 아니다. 명의만 내 이름으로 되어 있고, 실소유주는 은행이나 다름없다. 월급? 적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남들보다 못살지만, 삶의 만족도만 따지면 우리는 누구보다 잘 산다고 자부한다. 돈 없어도 행복하고, 알콩달콩하니까. 집이 은행 소유면 어떠랴. 비록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못 사 먹고, 해외여행도 몇 년에 한 번 가지면 어떠랴.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럼 됐지.




2017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31,734달러, 출처 : 한국은행, ‘한눈에 보는 우리나라 100대 통계지표’)를 넘어섰다. 통상 3만 달러를 경제적 선진국 기준으로 본다고 한다. 국민소득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그런데 의외로 행복지수는 그리 높지 않다.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전 세계 157개국 중 57위다(출처 : KOSTAT 통계 플러스 2018년 가을호 4쪽, 인터넷 주소). 사실 행복지수 자체만 놓고 보면 “높지 않다”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가 100개국이나 있으니까. 우리나라는 무려 중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나. 전체 순위에서 보면 우리의 행복지수는 의외로 높다. 다만 경제력이 워낙 높아서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질 뿐이다. 실제적으로는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느라 행복을 못 느낀다.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마치 네 잎 클로버를 찾느라 주변에 널린 세 잎 클로버를 죄다 짓밟는 격이다.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인 것은 잘 알지만,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인 것은 잘 모른다.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국민 총생산액(GDP)은 무려 세계 12위 규모라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그뿐이랴. 그렇게 염원하던 국민 총 소득액 3만 달러를 드디어 달성했다. 3만 달러를 선진국 진입 기준으로 보는 까닭은 그 정도 소득 수준이면 사회 전반, 즉 경제, 문화, 교육 등 삶의 질 또한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아니,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우리가 행복을 못 느끼는 이유는 가난해서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행복을 못 느끼는 사람들도 많지만 대다수는 소득 불균형, 사회 불평등, 무한 경쟁, 비정규직 등과 같은 사회 문제들 때문에 행복을 못 느낀다. 우리는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가들의 게으름과 이기심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으로 개선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의 행복을 정부, 사회에만 맡길 수 없는 상황이다.

행복이 우리 눈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행운만 찾아다닌다면, 결코 행복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네 잎 클로버만 눈 빠지게 찾는다면 시간 낭비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행복을 손에 쥐고 있다. 그 행복을 누리느냐 마느냐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어쩌랴. 이렇게라도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삶에 희망이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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