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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Jul 24. 2019

우리는 어쩌다 욕심쟁이가 됐을까?

사람만큼 욕심 많은 동물은 없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먹고 또 먹는다. 배가 터질 지경이 돼도 더 먹는다. 이것을 욕심이라고 볼지, 대식가로 볼지는 보기 나름이지만, 어쨌든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확실히 다르다. 한 개를 가지면 하나 더 가지려 하고, 이것을 누리는 데도 저것도 누리려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좋게 말하면 욕심쟁이고 나쁘게 말하면 탐욕이 가득한 존재다.

왜 유독 사람만 욕심을 부릴까? 우리는 어쩌다 욕심쟁이가 되었을까? 진화론적으로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야생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다 보니 욕심이라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기독교적으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유가 너무 거창한가? 그냥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이타심이라는, 동물에게는 없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 상태, 어렵고 주린 상황에서는 대개 그 미덕을 서랍 깊은 곳에 박아 둔다. 그 미덕이라는 카드는 경제적이든 심리적이든 여유 있는 상태에서만 꺼내 쓸 수 있다. 대부분은 욕심이라는 카드를 주로 사용한다. 당장 내가 살아야 하니까.


사회는 야생이나 다름없다. 하나라도 더 움켜쥐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남에게 하나를 양보하면? 내게 남는 건 없다. 살아남으려면 욕심을 부려야 한다. 다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는 없다. 다 같이 살아남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냉정한 현실이다. 나라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좀 더 움켜쥐어야 한다. 나라도 살아남아야 하니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다.




사람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 인터넷에서 본 내용이다.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다. - 빚을 내서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치자. 얼마 후 아파트 가격이 두배로 껑충 뛰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배의 돈을 거저 번 셈이다. 그러면 이렇게 기뻐할까?

“와, 아파트 가격이 두배로 올랐네! 웬 횡재야!”

아니다. 기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이렇게 아쉬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빚을 더 내서 한 채 더 사둘 걸...’

투기한 게 아닌 이상 기뻐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투기라 해도 그 정도 상승했우면 당연히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가진 것과 얻은 것에 도무지 만족하지 않는다. 저 예가 실제 상황이었으면 분명히 누구나 저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대부분 더 욕심부리지 않고, 정보와 혜안이 없었으며, 과감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예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욕심부리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욕심이 선순환을 일으키기도 하니까. 과학기술 발전을 예로 들 수 있다. 삶을 좀 더 윤택하게 하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욕심이 과학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 현재 과학기술 발달 수준은 유사 이래 최고다.


인류는, 당대 기술 수준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기술문명을 시대마다 이룩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결과물을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불가사의가 아무리 놀랍고, 고도의 기술로 건설된 결과물이라 해도, 그 밑바탕이 된 기술은 오늘의 기술에 비하면 어린아이 소꿉장난 수준에 불과하다. 발전에 대한 열망,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세대는 이전 모든 세대와 비교해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발전에 대한 욕심을 계속 내고 있다. 그 욕심 덕에 어느 시대보다 우리는 편히 살고 있다. 우리는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우리는 욕심쟁이다. 우리의 욕심이 선순환을 일으키든 악순환을 일으키든 우리가 욕심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그 욕심으로 인해 나는 어제 퇴근길 전철에서 자리를 빼앗겼다. 자기만 편하려는 욕심 - 이기심이 더 적합한 표현이겠자만 - 으로 인해 어떤 사람이 내 앞에 난 자리를 새치기해서 앉았고, 나는 피해를 입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그 사람 때문에 피곤에 더 찌들고 말았다.

나는 20년 가까이 전철을 이용하면서 자리 욕심 한 번 부리지 않았다. 자리 새치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어제처럼 빼앗기면 빼앗겼지. 나도 이제부터 욕심을 부릴까 보다. 저 옆쪽에 자리가 나면 얼른 엉덩이를 들이밀까 보다.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인데 욕심 좀 부리면 어떠랴. 따가운 눈총이야 눈 감고 외면하면 그만이다. 다들 그렇게 욕심부리는데 나라고 당하기만 해야 할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괜한 생각을 해본다. 새치기당해서 쓴 글은 아닌데, 새치기 얘기까지 나왔다. 어쨌든 사람들은 정말 욕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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