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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Aug 14. 2019

인생에는 왜 치트키가 없을까?

나는 뭐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 빨리 끝장을 봐야 하니까. 남들은 밤새며 끝판을 깨는 게임도, 나는 깨본 적이 없다. 끝판을 깨본 게임이 있긴 하지만 손에 꼽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오죽 급했으면 치트키를 남발했을까.

나는 스타크래프트 1을 할 때마다 ‘show me the money’‘black sheep wall’ 이 두 개는 무조건 치고 시작했다. 그런데 참 민망하게도 컴퓨터가 어떤 유닛을 생산하는지, 언제 나를 공격하는 다 알고도 졌다. 자원이 많고 상대를 훤히 들여다보면 뭐하나. 한 단계씩 밟아가며 실력을 쌓지 않았으니 당연히 질 수밖에.




성격이 급한 탓에 인생에도 치트키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때가 있다. 대학교 다닐 때 그랬다. 나는 영문학과를 나왔는 데도 영알못이다. 영어 공부는 안 하고 도서관에 틀어 박혀 읽고 싶은 책만 읽은 결과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십 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학창 시절 다른 책에 빠진 걸 후회한다. 다른 책에 빠지지 말고 영어 책에 빠졌어야 했는데 싶다.

공부는 안 하고 치트키를 찾던 이유가 있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막상 하려니 알파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어 공부가 지루했고, 재미없었다. 구문론이나 통사론, 의미론 등 언어학은 재미있었다. 대학원에 가서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걸 공부하려면 우선 영어를 공부해야 했으니 난감했다. 인생에 치트키가 있다면 바로 이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생에 그런 것은 없으니 쓸 수 없었다.

언어학에 대한 관심보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다. 영어 공부가 하기 싫으니 언어학 공부도 할 수 없었다. 자연히 언어학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인생에 치트키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아쉬웠다.




나만 치트키를 찾는 게 아닐 게다. 누구나 치트키를 찾을 것이다. 특히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말이다. 치트키가 있다면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나 손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을 단번에 빠져나올 수 있다. 치트키가 있으면 인생에서 낙담할 일이 전혀 없다. 실패와 좌절이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 없는 단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치트키가 없기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하고, 실패와 죄절을 끊임없이 맛보아야 한다.

과연 치트키가 있으면 인생에서 무적이 될까? 무적은 되겠지만, 어쩌면 인생이 재미없어질지도 모른다. 내가 스타크래프트를 얼마 하지 않고 금세 접었던 것처럼 말이다. 치트키를 처음 썼을 때는 연속으로 졌다. 하지만 요령도 실력으로 발전하는 법이다. 얼마 안 있어 이기기 시작했다. 치트키를 계속 사용하며 게임을 하니 물량 공세로 이기기 시작했다. 어떤 테크트리도 타지 않고 그저 유닛만 죽어라 뽑으니 게임을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이겼다. 게임이 쉬워지니 성취욕이 사라졌다. 이윽고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질리고 말았다. 결국 실력은 1도 쌓지 못하고 접었다.

인생이라고 다를까. 치트키를 사용해서 계속 성공만 하면 처음에는 으쓱할지 모른다. 인생이 재미있고, 만족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실패와 좌절 없이 모든 일이 계속 뜻대로만 이루어지면 인생무상, 한숨을 쉴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인생이 재미없어지고, 더 이상 어떤 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될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희한하게도 인생이 그렇고, 사람은 그런 존재다.




다시 한번 의문을 가져본다. 정말 인생에 치트키가 없을까? 사실 한 개가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치트키인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하는 거’ 말이다! 무언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되든 안 되든 일단 하는 거다. 안 되는 듯 보여도 계속하는 거다. 지쳐도 하는 거다. 쓰러지면 일어나서 다 하는 거다. 이거야 말로 ‘show me the money’다.

대신 이 치트키를 사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치트키를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꾸준함과 인내가 필요하니까. 그 꾸준함과 인내를 발휘하려면 또 다른 치트키가 필요하니까.




엉뚱한 치트키는 찾지 말고, 이미 주어진 치트키나 잘 활용하자.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은 져도 다시 하면 되지만 인생에 그런 여유와 기회는 없다. 인생은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러니 여유 부리지 말자. 그래도, 인생이 게임은 아니지만 언제나 되돌릴 기회는 오는 법. 그 기회는 오직 꾸준함과 도전으로 잡을 수 있다. 인생의 실패는 다시 ‘그냥 하는 거’로 만회할 수 있다. 단, 그 치트키도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다. 어떤 일과 계획 등에서 그 치트키를 사용할 수 있는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치트키를 적절히 활용하자. 그러면 아마 나도 뭐 하나는 끝까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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