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무리하게 사는 게 아니야.
신혼집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아내에게 프로포즈한 후 집 문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집 문제는 결혼 최대의 고비이자,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결혼식이야 어떻게든 하면 된다. 하지만 결혼하면 어디서 살 것인가? 집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집값이 워낙 비싸서 신혼부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더라도 부모님이 부유하지 않다면 기껏해야 전셋집만 마련할 수 있다. 그것도 감지덕지다.
우리는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양가 부모님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 도움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오로지 우리 둘만의 힘으로 집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어떻게 집을 마련한다는 말인가! 그러니 집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일 수밖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한 게 시월드행이었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시집살이를 택했고, 시댁에서 3-4년 정도 살며 전셋집을 마련할 돈을 모으자고 했다. 아내의 큰 결심과 그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렇게 우리는 알콩달콩한 둘만의 신혼을 포기해야 했다.
결혼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는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 덜컥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다. 돈이 어디서 나서? 돈은 없었다. 가진 거라고는 가계약금 1천만 원이 전부였다. 세 달 안에 나머지 계약금을 입금해야 했다. 나머지 계약금은 가계약금보다 액수가 더 컸다. 그건 또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불과 몇 달 사이에 몇 천만 원을 어떻게 마련할까? 너무 무모한 짓을 저지른 건 아닐까?
아파트 구입은 미래 계획에 없었다. 분가하면 전셋집을 얻으려고 했다. 아파트 구입은 순전히 충동구매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아내 친구 때문에 아니, 아내 친구 덕에 집을 샀다. 모델 하우스 구경하러 오라는 유혹이 발단이 되었다.
어느 주말, 아내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나들이할 겸 모델 하우스에 구경 오라고 했다.
‘그래, 구경하러 가자. 구경한다고 돈 들어가는 거 아니니까. 그리고 아내 친구 내외도 만나고, 나들이도 할 겸 가보자.’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우리도 계약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모델 하우스에 도착하여 아내 친구 내외와 함께 구석구석 구경했다. - 모델 하우스 구경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 한창 구경하던 중, 친구가 우리도 구입하라고 권했다. 같은 아파트에서, 위아래 살면 좋겠다며 우리도 구입하라고 계속 설득했다. 우리는 처음엔 돈이 없다며 손사래 쳤다. 하지만 계속된 설득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아내 친구도 돈이 없는데 그냥 계약한 거라고, 물량이 얼마 없으니 일단 가계약금만 걸어서 물량을 잡아놓고 안 되겠다 싶으면 계약 취소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입주 시점인 2년 후에 가서 생각하자고 했다. 2년 후가 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아내 친구도 대단하다... 우리 수입을 보면 구입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델하우스를 계속 둘러보니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우리가 망설이자 아내 친구가 같은 아파트에서, 그것도 같은 동 같은 라인, 위아래에서 살면 자주 왕래할 수 있고 심심하지 않겠다며 구입을 종용했다. 생각해 보니 아는 사람과 위아래 살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구입할 여력이 전혀 안 됐는데도 계약서에 덜컥 사인하고, 우리가 가진 전부인 1천만 원을 가계약금으로 입금했다.
장모님께 아파트 계약 소식을 말씀드리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집을 왜 그렇게 무리하게 사냐고, 잔금을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셨다. 걱정하실만했다. 아직 계약금도 다 해결하지 못했는데, 솔직히 잔금 마련은 불가능했다. 그저 은행만 믿고 있었다. 은행이 도와주겠지... 아내는 장모님께 그렇게라도 사지 않으면 평생 집을 못 사고 전셋집으로만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는 나보다 배포가 크다. 몇 억 짜리 집을 계약하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다니. 돈도 없는데 저렇게 태평하다니. 참으로 당찬 여자다.
나는 안전지향형 인간이다. 위험하거나 무모한 일은 절대 저지르지 않는다. 실현 가능성이 낮거나 조금이라도 손해 보겠다 싶으면 절대 시도 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성향 덕분에 지금껏 평탄하게 살아왔다. 아내는 나와 정반대다. 모험형이다. 도전형이다. 위험하거나 무모해 보여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몸을 움직인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손해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을만하면 일단 뛰어든다. 덕분에 아내는 이런저런 경험이 많다. 성향이 정반대인 우리가 결혼한 게 참 신기하다.
내 성향대로 하면 아파트를 절대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형편에는 전셋집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아내만 믿고 덜컥, 내 성향에 반하는 행동을 저질렀다.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입주 전에 팔자고 했는데, 그러다 잘못하면 계약금을 날릴 수 있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건지... 뒷일은? 나도 모르겠다. 아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돈은 자기만 믿으라고 했으니까.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으니 믿는 수밖에.
그렇게 우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 집’을 갖게 되었다. 결혼 8개월 만에 우리 집이 생겼다! 아직 건설 중이라 입주까지는 2년이 남았지만, 어쨌든 우리 집이 생기니, 어떤 말로도 그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다. 잔금이 많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2년 동안 죽어라 모으면 되지...! 다는 못 모으겠지만 어느 정도, 대출을 많이 안 내도 될 정도는 모을 수 있겠지? 에라, 걱정은 뒤로 미루자.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지금은 기쁨을 만끽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