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짓는남자 Jul 30. 2019

연차휴가는 내 권리입니다.

연차휴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없다. 반대로 이 말은, 연차휴가는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에게 당연한 권리라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권리임에도 제대로 누리지도 사용하지도 못하는 근로자가 허다하다. 주로 10인 전후의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 - 만 그런 건 아니다. - 가 그렇다. 그들에게 연차휴가는 권리 아닌 권리다. 명목상 권리일 뿐이다. 연차휴가를 사용하려면 눈치를 봐야 하니까.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던 회사들은 업종의 특성상 소규모였다. 그 때문에 연차휴가를 사용하는데 제약이 있었다. 슬프게도 첫 직장은 아예 연차휴가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5인 미만 사업장이었으니까.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연차휴가는 사용자 재량이니 할 말이 없었다. 작은 회사에 들어간 내 잘못이지. 근로자는 사장님을 제외하고 4명. 정확히 기준 이하였다.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연차휴가를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그나마 휴가는 있었는데, 고작 1년에 이틀뿐이었다. 그것도 휴가 시즌에만 사용 가능했다. 게다가 내가 날짜를 정할 수도 없었다. 무조건 회사에서 정해준 날짜에 쉬어야 했다. 맙소사...


그런데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입사 2년 후에 연차휴가가 생겼다. 감사하게도 사장님의 배려로 말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연차휴가가 생긴 건 좋았는데, 이왕 주는 거 시원하게 주면 안 되나? 연차휴가 신청서를 낼 때마다 왜 쉬냐고 꼭 물어봤다. 연차휴가가 생긴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나? 배부른 소린가? 단지 궁금해서 물어본 건지 사용 제한하려고 물어본 건지 모르겠지만, 의도가 어쨌든 연차휴가를 신청할 때마다 거짓 사유를 대야 했다. 연차휴가를 사용하는데 눈치를 봐야 해서, 매년 연차휴가를 다 사용하지 못했다. 아예 없던 시절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참 아쉬웠다.




연차휴가를 사용할 때 나만 거짓말을 했던 게 아닌가 보다. 2015년, 다국적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20~40대 직장인 1,000명에게 연차휴가를 신청할 때 거짓말을 하는지 물었다. 조사 결과 남자 직장인은 26.8%가, 여자 직장인은 33.2%가 거짓말을 한다고 답했다. 10명 중 3명에 해당한다.

연차휴가를 사용할 때 눈치를 보는 건 회사 규모와 상관이 없다. 물론 작은 회사일 경우 더 눈치 보이는 게 사실이다. 중간 규모의 회사나 대기업 근로자라고 해서 눈치를 아예 안 보는 건 아니다. 부서 분위기나 상사 성향에 따라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연차휴가를 사용하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상사들은 부하 직원이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이유를 왜 궁금해하는지 모르겠다. 부하 직원에게 관심이 그리 많나? 평소에 부하 직원을 살뜰히 챙기던 것도 아니면서 꼭 그럴 때만 오지랖이다. 자기들은 눈치 안 보고 연차휴가를 사용하면서 부하 직원이 연차휴가를 사용할 때는 왜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건가. 이것도 갑질이고, 일종의 폭력이다.




5인 이상 사업장에서 1년 미만 근무한 근로자에게는 11일,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는 15일의 연차휴가가 주어진다. 연차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사유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근로자가 사용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게 연차휴가다. 아파서 사용하든 그냥 쉬려고 사용하든 이유는 상관없다. 연차휴가 사용 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하루를 사용하든 이틀을 붙여 사용하든 15일 전부 한 번에 사용하든 근로자 마음이다. 다만 맡은 업무 책임상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거나 담당 업무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며칠을 붙여 사용하든 눈치 주지 말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법리와 다르게 흘러간다.

연차휴가를 사용할 때마다 사유를 말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휴가 시즌을 제외하고 평달에 이틀 이상 붙여 쓰려면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봐야 하는 회사도 있다. 혹자는 그런 회사에 왜 다니냐고 말한다. 더 좋은 회사를 다니면 되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철부지다. 등록금이 비싸다는 대학생들의 아우성에 장학금 타면 된다고 말한, 명박스러운 말이다. 현실 파악을 못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실 파악 먼저 하라고 권하고 싶다. 현저히 떨어지는 공감 능력을 키우라고 충고하고 싶다.

내가 현재 다니는 회사도 연차휴가 사용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평소에 연차휴가를 길게 붙여 쓰지 못한다. 휴가 시즌에만 길게 붙여 쓸 수 있다. 그마저도 5일이라는 제약이 있어 아쉽다. 대신 평소에 연차휴가를 사용하는데 눈치를 보지 않는다.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만 않으면 아무 때나 쉴 수 있다. 왜 쉬는지 말할 필요도 없다. 길게 못 쓴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게 어딘가.




연차휴가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연차휴가는 회사가 챙겨 주는 게 아니라, 수고한 근로자에게 국가가 주는 보너스니까. 누구도 상여금을 회사 눈치 보며 쓰지 않는다. 상여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든 회사에서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연차휴가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연차휴가가 주어진 이유니까. 안 그래도 이것저것 눈치 보고 신경 써야 하는 게 직장생활이다. 그것만으로도 피곤하고 스트레스인데, 연차휴가까지 눈치 봐야 하다니. 현실이 참 서글프다. 당연한 권리를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는 이 현실이 못내 아쉽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누리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누리는 연차휴가의 자유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아니, 약간의 책임이 따르긴 한다. 업무 공백을 최소화할 책임 말이다. 업무 공백만 없다면 얼마든지 연차휴가 사용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연차휴가 사용에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이라도 해야 하나?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하나? 그래 봐야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연차휴가 사용은 많은 직장인이 공감할 만한 문제이지만, 따로 목소리를 낼 만한 사안은 아니니까. 공감하지 못하는 직장인도 있는 문제니까. 그래서 누구에게나 연차휴가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월급이 밀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