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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Oct 14. 2019

내향인은 타고난 배려쟁이입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3

‘오늘은 몇 정거장을 지나야 앉게 될까?’

퇴근길 전철에 오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전철에 타서 자리에 앉는 건 중요하다. 내가 찌그러지냐 네가 찌그러지냐에 사활을 거는 지옥철 안에서 안락한 일등석을 맛볼 수 있는, 결코 양보하면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옥철 안에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 정말 피곤하다. 안 그래도 고단한 업무로 몸이 천근만근인데, 사람들에게 치이기까지 하면 스트레스가 머리를 뚫고 나온다. 그렇다고 왜 자꾸 미냐고 싸울 수도 없고. 그러니 자리가 생기면 무조건 앉아야 한다.

겉으로는 자리에 관심 없다는 듯 시크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자리를 애원하고 있던 순간, 몇 정거장이 지난 후 드디어 자리가 났다! 나는 곧바로 앉지 않고 옆에 서 있던 사람 눈치를 봤다. 서로 좌석 앞에 반반씩 몸을 걸치고 서 있었기에 먼저 앉는 사람이 자리 주인이 된다. 그도 내 눈치를 보는지 앉지 않고 서 있었다.

몇 초간 나와 그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깟 자리가 뭐라고, 이렇게 둘이 밀땅을 할까. 둘 다 계속 서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앉을 테니 내가 먼저 슬며시 움직였다. 앗, 그때! 옆사람도 고민을 끝내고 마음을 정했는지 슬쩍 움직였다. 어쩜 타이밍이 이리 절묘할까. 나는 그가 움직여서 멈칫했다. 옆사람도 멈칫한 걸 보니 내 움직임에 반응한 모양이다. 이제는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자리 임자다!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자리에 앉았다. 앉으며 속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도 아니지만 괜히 감사했다. 나도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 사람도 머뭇거린 덕에 내가 앉았으니 감사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생각했다.

‘저 사람도 내향인인가 보구나.’

좌석 앞에 나 혼자 서 있었으면 옆사람 눈치를 보거나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반반씩 몸을 걸치고 있어서 이 사달이 났다. 아마 외향인 같으면 반반씩 걸쳐 있든 말든 자리가 나자마자 뺏길세라 1초의 망설임 없이 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뼛속까지 내향인이다. 망설임은 나의 주특기다.




내향인은 상황을 많이 신경 쓴다. 주변 사람의 감정과 반응을 본능적으로 살핀다. 소심해서가 아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상대는 그 배려를 알지 못한다. 상대가 알게 되는 것조차 부담스러우니까, 상대가 모르게 배려한 탓이다. 상대가 모르는 배려를 어찌 배려라 할 수 있냐고 누군가 물을지 모르겠지만, 내향인 입장에서는 분명히 배려다.

내향인이 내심 배려했다는 사실을 상대가 인지한다면, 어쩌면 내향인에게 고맙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향인은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배려를 상대가 인지한다면, 상대가 신경 쓰게 한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괜스레 미안하다. 미안할 일도 아닌데 미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최대한 상대가 모르게 배려한다. 상대 모르게 배려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 결국 그 배려는 자기만족이 되고 만다.

상대 모르게 배려 아닌 배려를 하다 보니 상대가 예상 밖의 행동을 하거나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면 괜히 서운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상대를 배려할 생각이었는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내가 정한 선을 넘어서니 화도 난다. 하지만 그 감정을 내색할 수는 없다. 내 기준과 행동은 상대와 전혀 무관하니까. 나의 일방적인 기준과 감정이기에 상대가 그 기준을 넘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서운함과 화는 속으로 삼킨다.


만약 앞선 상황에서 옆에 서 있던 승객이 선방을 날려 재빠르게 앉았다면, 내 마음속에는 이런 고요한 외침이 가득 울려 퍼졌을 것이다.

‘어라, 거기 내 자리인데, 내 자리에 왜 앉아요!?’

내 전용 좌석도 아닌데 자리를 강탈당했다며 속으로 화냈을 것이다. 입으로는 한 마디도 뻥끗 못하고. 내로남불에 가깝지만, 어쨌든 내향인은 겉으로는 타고난 배려쟁이다. 은근히 자기만족을 즐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자기만족이면 어떠랴. 상대는 알 턱이 없지만, 어쨌든 자신은 할 만큼 했고, 할 만큼 했으니 만족스럽다. 약간 유별나긴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마음이 편한 게 중요하니까. 내 마음이 편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향인을 무슨 변태, 정신 이상자처럼 묘사한 것 같은데 절대 그런 존재는 아니다.




모든 내향인이 자기만 아는 배려를 하지는 않겠지만, 내향인은 대체로 배려가 몸에 배었다. 그건 내향인이 외향인보다 예절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타고난 성향이다. 외향인이 보기에 참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피곤하게 왜 그리 신경 쓰냐고 말이다. 그런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일부러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그리 되는 걸 말이다.

누군 그러고 싶겠는가. 그런 자신의 성향으로 피곤할 때가 있는 데도,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도 또 그러는 게 내향인이다. 신경 쓰기 메커니즘, 배려 본능을 기본 탑재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일종의 숙명이다. 그러니 계속 그리 살 수밖에.




내향인은 대체로 배려가 몸에 배었다. 그건 내향인이 외향인보다 예절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타고난 성향이다. 외향인이 보기에 참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피곤하게 왜 그리 신경 쓰냐고 말이다. 그런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일부러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그리 되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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