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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Oct 18. 2019

나댄다고 미움받을까 봐 말을 아낍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5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 이런 사람이 한 명쯤은 꼭 있다. 말을 많이 하고,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 말이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사회자 노릇을 하며 분위기와 대화를 주도한다. 사실 좋게 봐서 사회자지, 나쁘게 보면 나대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분위기가 어색해지거나 대화가 끊기면 화두를 던져 분위기를 전환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커지기 마련. 이런 사람은 대개 외향인이다. 그렇다고 외향인만 그런 역할을 맡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외향인이 그 역할을 즐겨 맡는다.

사회자 역할을 하는 외향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아예 못 느끼거나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시선을 느끼기는 하지만, 단지 개의치 않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성향대로, 대화를 이끄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하려는 일에만 집중한다.

반면 내향인은 사회자 역할을 맡을 수 없다. 사람들의 반응을 일일이 신경 쓰기 때문이다. 내향인은 대화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말투는 물론이고,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습도와 밀도까지 세세하게 감지한다. 말을 한마디 한 후 은근슬쩍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하면 온갖 추측을 한다.

‘내 말에 기분이 나빴나?’
‘내 말이 거슬렸나?’
‘내가 틀린 말을 했나?’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쓰고, 결국 자기 탓을 한다. 자기 말에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으면 괜히 말해서 분위기를 망친 건 아닌지,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혼자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러니 대화를 주도하기 힘들다. 괜히 그런 역할을 맡았다가는 스트레스만 받으니 조용히 무리에 묻혀 있는다. 사회자 역할은 내향인 취향이 아니다.




사실 사회자 역할을 하고 안 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향인은 사람들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내향인은 대화할 때 사람들 반응을 신경 쓴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핀다. 그만큼 주변에 민감하다는 말이다.

내향인이 주변에 민감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각인되는 것을 경계해서다. 그러니 사람들 반응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외향인은 감정 발산형이기에 자기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각인이 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이미지에 말과 행동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행동 또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반면 내향인은 수렴형이기에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상당히 신경 쓴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따라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될 테니 가능한 한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었으면 한다. 그러니 말과 행동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내향인의 이러한 특징은 앞서 말한 대로 사람들과의 대화 시에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나도 내향인이기에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나도 이런저런 말을 하고 싶지만 일부러 참는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면 사람들이 나댄다고 생각할까 봐서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더라도 대화를 독점하지만 않으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한 여름 산들바람의 방향보다 더 빠르게 바뀌는 대화 주제를 재빨리 파악하고, 얘깃거리를 떠올려서 적당한 시점에 투척하면 된다. 하지만 그건 내향인에게 어려운 일이다.

내향인은 머리와 입이 느리게 움직인다. 그래서 대화 중에 언제 치고 들어가야 할지 전전긍긍한다. 그러다 치고 들어갈 시점을 놓치고, 그 사이 대화 주제는 바뀌어 버린다. 결국 할 말을 못 하게 된다.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생각나는 건 그때그때 배설해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을 못 하게 된다. 하지만 나오는 대로 쏟아내는 건 내향인의 스타일이 아니다. 마구잡이로 쏟아냈다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고, 만에 하나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반응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 내향인은 할 말을 꾹꾹 눌러 담게 된다. 말을 최대한 아낀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낸다고 해도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너 너무 나대는 거 아냐.”

혹시나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사람이 있더라도 더로 삼키며 속으로만 말겠지. 아니면 나중에 다른 사람과 내 험담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 대화 자리에게 은근슬쩍 따돌릴 수도 있다. 내향인, 나는 어쩌면 발생할지도 모르는 그 일들을 겪기 싫어서 과묵하게 있는 쪽을 택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나, 내향인의 특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굳이 과묵하기로 한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 과묵은 한국인의 미덕이 아니던가.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침묵하면 싫은 소리를 피할 수 있는데, 그게 뭐 그리 잘못인가.


별 걸 다 신경 쓴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편하게 말하라고? 그럴 수 없다. 나는 내향인이니까. 각자 문제는 저마다 해결 방식이 있다. 남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면 용변을 보고 뒤를 제대로 안 닦아서 찝찝한 것처럼 개운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니 남의 방식대로 해결해서 괜히 계속 찝찝한 것보다 내 방식대로 개운하게 해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운 법이다.




내향인은 수렴형이기에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상당히 신경 쓴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따라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될 테니 가능한 한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었으면 한다. 그러니 말과 행동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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