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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Nov 13. 2019

이제 외향인인 척하지 않겠습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13

‘나는 외향인이 될 수 없다. 아니, 나는 외향인이 될 필요가 없다.’

최근에 든 생각이다.

몇 개월 전까지 외향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외향인을 닮으려고 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일부러 한 마디라도 더 했고, 회사에서는 활달하고 유쾌한 사람인 척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렇게 하기를 강요받아서다.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인 전 직장의 팀장은 부하직원들이 자신처럼 말을 많이 하길 원했다. 회의 때 있는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없는 아이디어도 만들어 내서 쏟아내길 강요했다. 아무 말이든 내뱉길 원했다(하지만 정말 아무 말이나 쏟아내면 큰일 난다. 실상은 쓸모 있는 말만 뱉어내야 했다). 점심은 팀장과 팀원들이 항상 함께 먹었는데, 전날 겪었던 소소한 일상이나 들었던 생각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쏟아내야 했다. 쏟아내지 않으면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나는 찍히기 싫어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끄집어내서 억지로 말했다. 회의 때는 한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애썼다. 혹여나 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라도 하면 실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점차 지치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라면 지치지 않고 계속 말을 쏟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천성적으로 내향인이 아니던가. 말이 많지도 않은데 억지로 말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팀장이 잘 받아 주었으면 덜 지쳤을 것이다. 신나서 계속 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하지만 팀장의 부정적인 반응에 빠르게 지쳤다.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말수가 줄기 시작했다. 회의 때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점심 때는 리액션만 했다. 팀장은 그런 나를 못마땅해했다. 결국 찍히고 말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진에 따르면 내향인이 외향적인 흉내를 내기만 해도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060278&memberNo=39007078).

연구진은 123명의 참가자에게 1주일 동안 외향적 행동을 유지하게 했고, 그다음 1주일 동안은 본연의 모습인 내향성을 유지하게 했다. 이 실험 결과 외향적인 척한 내향인은 실험 기간 동안 부작용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내향적으로 돌아간 1주일 동안 행복도가 줄었다고 한다.

글쎄, 기사만으로는 연구진의 소속이 불명확하고, 123명 중 몇 %가 행복감을 느꼈는지 알 수 없으며, 연구 환경 또한 불명확해서 나는 연구 결과에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다. 특히 적어도 나는 외향인인 척했을 때 행복감이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곤두박질쳤기에 연구 결과에 회의적이다. 물론 내가 처한 상황은 극단에 치우쳐 있었고, 나만의 경험으로는 일반화할 수 없기에 다른 내향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 내향인은 내향인 다울 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거나 소수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향인은 내향인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장 몸에 맞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향인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전부 다 사교성이 부족하거나 말수가 적고 원하는 바를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내향인이 소심하고 민감하며 사교적이지 않지만, 모든 내향인이 그런 건 아니다. 과감하며 말을 잘하고 활달한 내향인도 있다. 혹은 평소에는 과묵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인일지라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그 반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굳이 몸에 맞지 않게 외향인인 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어떤 부분은 외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겠지만, 그러다 잘못하면 탈이 날 수도 있다. 최소한 나의 경우에는 탈이 났다. 달라지기 위해 애쓰고 애썼지만, 오히려 나는 뼛속까지 내향인이라는 사실만 새삼 깨달았다. 나의 내향적인 기질은 결코 바꿀 수 없음을 여실히 느꼈고,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음을 깨우쳤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내향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타인에게 무관심하며,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2%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향인 고유의 특질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보다 잘못된 것, 잘못되었기에 고쳐야 할 것으로 생각하여 고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외향적일 것을 요구하곤 한다. 사람들이 내향인의 특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좋으련만.

내향인은 어디가 모자라거나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버렸으면 좋겠다. 내향인의 특질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고쳤으면 좋겠다. 나는 내향인이지만, 내 특질을 그대로 가지고도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잘했다. 전 직장에서 극단적인 외향인 팀장 때문에 곤란을 겪었지만, 살아오면서 내향인의 특질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지금 직장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살았을 때 별문제 없이 잘 살았다. 도리어 외향적이려고 노력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했고, 불편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나는 내향인인데, 내가 왜 억지로 변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회의에 빠졌다. 외부 상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 동기로 변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상황이 나았을까? 글쎄... 어쨌든, 자고로 몸에 맞지 않는 옷이나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은 입지 않는 게 좋은 법이다. 그런 옷을 입으면 불편하거나 보기에 안 좋으니까. 모름지기 사람은 자신에게 딱 맞고, 편한 옷을 입어야 한다.




많은 내향인이 소심하고 민감하며 사교적이지 않지만, 모든 내향인이 그런 건 아니다. 과감하며 말을 잘하고 활달한 내향인도 있다. 혹은 평소에는 과묵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인일지라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그 반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굳이 몸에 맞지 않게 외향인인 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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