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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Nov 06. 2019

내가 왜 말을 더 많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10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더 먹어.”
“할 말 있으면 해.”

이 두 가지다. 다른 말에는 그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데, 이 두 말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상대가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배려도 정도껏 해야지. 도가 지나치면 오지랖이 되고, 오지랖이 계속되면 강요가 되며, 강요가 계속되면 강제가 된다.

“배불러”, “할 말 없어”라고 대답했으면 그렇구나 하고 끝내야지, 생각해 준 답시고 이렇게 말을 이으면 심히 곤란하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먹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나는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맞받아칠 수밖에 없다.

“배불러서 안 먹겠다는데 왜 자꾸 먹으라고 그래!”
“할 말 없다니까! 할 말 있으면 너나 해!”

물론 속으로만 말이다. 나는 큰 목소리를 내기 싫어하는 내향인이니까. 큰 목소리를 내면 싸움에서 진 것 같고, 교양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속으로는 부글거리지만,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종종 겪는다. 종종 겪는다면 내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배불러서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이고,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는 것이니 딱히 내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 이유가 너무 궁색한가? 별로 타당하지 않은 건가?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왜 자꾸 내게 더 먹으라고 강요하고, 할 말 있으면 하라고 종용하는 건지 모르겠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할 말 있으면 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치가 떨릴 만큼.




‘말 많은 사람’은 사람, 이른바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는 내향인의 적이다. 내향인의 정신을 쏙 빼놓으니까. 내향인의 정신을 피곤하게 만드니까. 그렇다고 투 머치 토커가 무조건 적은 아니다. 아무리 말이 많은 사람이라도 친하면 적대시하지 않는다. 친한 투 머치 토커가 쏟아내는 말은 듣기 좋다. 친하지 않은 투 머치 토커가 문제다. 더욱이 그가 직장 상사라면 노답이다. 직장 상사인 데다 내향인에게 말하기를 강요하기까지 하면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그림자만 봐도 피해야 한다. 이미 말을 섞었다면 어떻게든 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안 그럼 내향인은 심한 내상을 입는다. 정신적 타격을 받게 된다. 하필 전에 다니던 회사 팀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박찬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투 머치 토커였다. 아니, 어쩌면 박찬호를 능가할지도 모르겠다. 많이 얼마나 많은지 그와 대화하는 게 질릴 정도였다. 업무 시간에 팀장실에 들어가면 업무 얘기는 잠깐이다. 업무 얘기를 하다 말고 가십거리를 꺼낸다. 그가 가십거리를 꺼내면 각오해야 한다. 그다음부터 대화는 기본 한 시간, 많으면 두세 시간이나 이어지니까. 차라리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면 그나마 낫다. 혼자 쏟아내는 데도 세 시간이나 걸리니 미칠 노릇이다. 도대체 일은 언제 하라고?


말이 많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듣기만 하는 건 나의 주특기가 아니던가. 그가 세 시간 동안 말을 쏟아내든도 괜찮았다.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견디기 어려웠다. 나에게도 말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말이 많으니 다른 사람도 말을 많이 하길 원했다. 하지만 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 나는 말이 적은 사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서로 피곤했다.

그는 내게 시도 때도 없이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말을 했다. 일대일로 대화할 때는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곧잘 말했으니까. 하지만 팀원들과 있는 자리에서는 내게 수시로 그 말을 했다. 나는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말을 잘하지 않으니까.

어찌나 말을 하라고 강요하는지 어느 날은 짜증까지 냈다. 할 말이 있으면 하지 왜 말을 안 하고 참느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나침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는 데도 할 말 있으면 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없다고 해도 자꾸만 말하라고 하니 찍히기 싫어서 아무 말 잔치를 했다.




내향인은 말이 많지 않다. 할 말만 하는 편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말이다. 내향인은 단 둘이 있을 때는 곧잘 말을 한다. 하지만 여러 명이 있으면 말을 잘하지 않는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여러 명이 있을 때는 듣는 쪽을 택한다. 대화 내용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수많은 내용의 대화가 오고 간다. 내향인은 그 내용들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바쁘다. 그러니 말할 시간이 없다. 듣기도 바쁜데 언제 말을 하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게 부담스럽다. 내향인은 주목받는 걸 싫어한다. 한 마디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로 쏠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속으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할 말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

내향인은 할 말이 있어도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 말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어떻게든 말한다.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내뱉는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사소하니까. 내향인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말만 하는 것을 선호한다.




외향인 여러분, 내향인에게 말하라고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당신이 할 말만 하길 바란다. 내향인이 말하지 않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니 그냥 내버려 두라. 말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내향인에게 폭력이나 다름없다. 당신과 같이 말을 쏟아내는 사람을 원하면 다른 사람을 찾으시라. 그렇게 말하라고 강요하고 싶으면 투 머치 토커를 찾으시라. 그가 당신을 흡족하게 해 줄 테니.




내향인은 할 말이 있어도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 말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어떻게든 말한다.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내뱉는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사소하니까. 내향인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말만 하는 것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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