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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Oct 10. 2019

소심한 것과 내성적인 것은 다릅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1

‘턱’

맞은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였다. 누군가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린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앞쪽을 바라보니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다 말고 황급히 일어서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잠이 덜 깬 모양인지 핸드폰을 떨어뜨린 줄도 모르고 전철에서 내리려고 했다.

‘저기요! 핸드폰 떨어뜨리셨어요.’

그 사람이 놀란 듯 눈을 뜨고 황급히 일어나 후다닥 출입문 앞에 이르기까지 한 3초 정도 걸렸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 사람을 부를지 말지 고민했다. 그 사람 양옆으로 두 자리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아서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전철에서 내리고 나서야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될 상황이었다.

어떡해야 할지 고민하던 사이, 옆문으로 들어온 다른 승객이 나를 괴롭히던 고민을 저 멀리 걷어차 주었다. 그녀가 핸드폰 주인을 불러 세워 상황을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오, 그녀는 나와 핸드폰 주인의 영웅이다!

이런 내 모습에 누군가는 실소를 보내며 이렇게 물을 지 모르겠다. “‘저기요’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라고 말이다. 아니, 그 말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입 한 번 뻥끗하면 되니까. 내가 고민한 이유는 그 한 마디를 해야 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핸드폰 주인을 멈춰 세우려면 그를 불러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을 부르면 다른 승객들이 나를 쳐다보겠지. 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사람들이 나를 쏘아볼 것도 아니고,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볼 것도 아닌데도 부담스러웠다. 왜냐,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든 나는 주목받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니까. 그래서 쓸데없는 고민을 한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을 부르지 않아서 핸드폰만 덩그러니 남는다면, 뒤처리도 내 몫이 될 확률이 높다. 뒤처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까지 가서 몸을 숙여 핸드폰을 줍고, 그걸 그대로 들고 있어도 사람들이 쳐다보겠지. 충분히 예상되는 시나리오이기에 핸드폰 주인이 내린 후 잠깐 동안 핸드폰을 주울지 말지 또다시 고민했을 것이다. 그 순간도 몇 초밖에 되지 않을 테니 슈퍼 컴퓨터보다 더 빠르게 머리를 굴리겠지.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부담스럽다는 결과가 산출되면 안 줍고 내버려 둘 것이다. 내 성격상 후자를 선택할 공산이 크다. 그만큼 나는 타인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다. 내성적인 성격 탓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내게 “그건 내성적인 게 아니라 소심한 거다”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과연 내성적이라서 그리 고민했던 것일까? 단지 그 상황에서 소심했던 것일까?




우리는 흔히 ‘소심한 것’‘내성적인 것’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소심할 거라고 생각하거나 소심한 사람은 내성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전적으로 소심한 것은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음을 뜻한다. 내성적인 것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내향성은 외향성과 대비되는 기질이고, 소심함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 내지 행동이다. 성격은 아니다. 물론 특성상 내향인이 외향인보다 소심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내향인이라고 해서 항상 소심하기만 하지는 않다. 내향인임에도 상황에 따라 대범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소심한 행동은 성격이 좌우하기도 하지만, 상황이 좌우할 때도 있기 때문에 내향인을 무조건 소심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면 안 된다.

나는 내향인이지만, 상황과 필요에 따라 대범하기도 하고 소심해지기도 한다. 군 복무 시절, 훈련병 때 남들은 벌벌 떨며 수류탄을 던질 때 나는 떨지 않고 던졌다. 자대에서 유격 훈련을 받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한 번에 11미터 암벽 하강도 잘했고, 절벽 사이에 걸린 외줄도 잘 탔다. 그리고 군 전역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할 때 식칼을 들고 들이닥쳐 위협하던 손님(?)에게 침착하고 의연하게 맞서기도 했다. 이처럼 위험한 상황들에서 그리 대범하고 침착했던 나이지만, 놀이공원의 바이킹과 롤러코스터 그리고 자이로드롭을 타지 못한다. 무섭기도 하고 안전불감증이 있어서다.

내향성과 소심함은 항상 함께 걷지만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내향성과 소심함이 짝이 되기도 하고, 외향성과 소심함이 짝이 되기도 한다.




만약 맞은편에서 벌어진 일이 내 옆에서 벌어졌다면 나는 핸드폰 주인을 불러서 멈춰 세웠을 것이다. 불러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맞은편과 옆이 무슨 차이가 있냐고? 옆에 있으면 목소리를 더 작게 내도 되니까. 목소리를 작게 내면 사람들의 주목을 덜 받을 테니 내겐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위에 상황에서 내 행동은 내성적이어서 그랬다기보다 소심했다고 보는 게 맞다.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껴 대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조심했으니까. 그 일이 바로 옆에서 벌어졌다면 정말 나는 그 순간 그리 소심하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그 순간 나름의 기준으로 대범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그 상황에서는 소심하게 행동했다.




내향성과 소심함은 항상 함께 걷지만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내향성과 소심함이 짝이 되기도 하고, 외향성과 소심함이 짝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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