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11
“우리 카톡으로 대화할까?”
말수가 적은 나를 놀려먹으려고 지인이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주로 나를 포함해서 서너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다. 마주 앉아 있으면서 카톡으로 대화하자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 대신 주특기를 발휘한다. 리액션 말이다.
“하하”, “맞아 맞아”, “흠...”, “그래?”, “그렇군”, ‘(고개를) 끄덕끄덕’
말은 거의 하지 않고 연신 리액션만 시전 한다. 그렇다고 말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하긴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할 뿐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조용한 나이지만, 메신저에서는 요란하다. 말이 꽤 많다. “하하, 호호”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가까운 지인이라면 이런 나를 꿰뚫고 있으니 여럿이 대화를 나눌 때 나를 골리려고 저런 농담을 던진다.
나는 입이 느린 대신 손가락은 빠르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침묵이 금인 듯 말을 아끼지만, 온라인에서는 아끼지 않는다. 아니 덜 신경 쓴다고 하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똑같은 대화인데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의 모습이 차이 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오프라인에서는 생각의 속도가 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느리다. 생각을 넓고 깊게 한다는 말이다. 어떤 주제가 화두로 떠오르면 그것과 관련해서 여러 생각을 한다. 외향인이라면 무언가 생각나는 대로 모조리 입 밖으로 내던지겠만, 내향인은 다르다. 계속 생각하고 분석한다. 이리 살피고 저리 살핀다. 그 사이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니 대화에 참여할 세가 없다.
내향인은 상황에 예민하다. 대화 상대를 끊임없이 살핀다. 말을 두어 마디 할라치면 너무 많이 말한 건 아닌지, 대화를 독점하는 건 아닌지 자기반성을 한다. 한두 마디 말을 한 후에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하면 말실수를 한 건 아닌지,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지레짐작하고 미안해한다. 그래서 내향인인 나는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늘 고민한다. 이 말을 해도 될지 말지를.
이러니 오프라인에서는 말수가 적어질 수밖에. 온라인에서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온라인에는 말을 막는 제동 장치가 없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으니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을 감지할 수 없다. 내가 쓴 글에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을 살필 수 없으니 머뭇거리지 않고 글을 투척하게 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대화하는 방식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 생각을 말로 옮기는 것보다 글로 옮기는 게 더 익숙하고 빠르다. 말하자면 나에게는 글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말을 하려면 우선 생각이 정리되어야 한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입으로 한 마디 하면, 그 말은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을 한 후에 나온 것이다. 생각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한 후에 내뱉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정리 과정이 길다. 그 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침묵도 길어진다. 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하면 두서없다. 우왕좌왕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출력이 느리다.
글을 쓸 때는 생각이 빠르다. 머릿속 정리가 금방 된다. 일부러 한 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연습을 한 탓이다. 블로그에 오랜 시간 글을 써왔기 때문에 생각하며 글을 쓰고, 글을 쓰며 생각하는 과정이 익숙해졌고, 능수능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신저로 대화할 때도 말이 많아지게 된다. 어쨌든 메신저도 글로 대화하는 것이니까.
내게 글이 익숙한 건 연습이나 습관 때문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는 내향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내향인에게 글은 가장 편한 친구와 같다. 어떤 말이든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그래서 내향인은 생각을 머릿속에 가둬놓기보다 글로 남기는 걸 좋아한다. 나 말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일기로 남기든, 누구나 볼 수 있는 블로그에 남기든 생각을 글로 남기는 걸 선호한다. 글은 내향인과 호흡이 척척 맞으니까.
생각을 글로 쓰는 건 내향인에게 일종의 대화이다. 자신과 종이 혹은 키보드와 나누는 대화 말이다. 내향인은 글을 쓰며 여백과 대화를 나눈다. 여백에 한 자 한 자 새기는 과정은 말하는 행위이고, 남겨진 글을 읽는 과정은 듣는 행위이다. 내향인은 쓰고 읽으면서 여백 그리고 글과 대화하는 셈이다.
글을 쓸 때는 어느 누구와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글을 쓸 때는 오로지 흰 여백만 마주할 뿐이다. 여백을 마주하면 다른 사람을 마주하며 겪게 되는 피곤한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된다. 글쓰기는 이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여백은 내가 무슨 글을 쓰든 이러쿵저러쿵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나, 두서없이 막 쏟아 놓아도 그저 다 받아 줄 뿐이다. 또한 여백은 하얀, 늘 환한 모습만 보여준다. 기분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여백은 인내심이 좋다. “빨리 말해!”라고 채근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다른 주제로 말을 걸어오지도 않는다. 내가 아무리 오래 생각을 해도 잠자코 있는다. 생각을 정리하고 마침내 글을 쓸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준다. 이러니 말보다 글쓰기를 선호하고 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카톡방 만들까?”
이번에는 내가 지인들한테 던진 말이다. 지인들은 가끔 “00야, 왜 이렇게 조용해? 너도 말 좀 해”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저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카톡으로 대화하면 나도 말 많이 할 텐데.”
웃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진심도 어느 정도 섞여 있다. 하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어떻게 메신저로 대화하겠는가. 근데 솔직히 한 번쯤은 그렇게 대화해보고 싶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서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킥킥대면 정말 볼만 하겠다.
생각을 글로 쓰는 건 내향인에게 일종의 대화이다. 자신과 종이 혹은 키보드와 나누는 대화 말이다. 내향인은 글을 쓰며 여백과 대화를 나눈다. 여백에 한 자 한 자 새기는 과정은 말하는 행위이고, 남겨진 글을 읽는 과정은 듣는 행위이다. 내향인은 쓰고 읽으면서 여백 그리고 글과 대화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