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16
지난주 금요일에 지인을 만났다. 전 직장 동료인데, 직장 동료에서 이제는 지인이 되어 가끔 안부를 묻고,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난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무려 반차를 썼다. 퇴근하고 만나면 대화를 충분히 못하니까. 여유 있게 대화하기 위해 황금 같은 반차를 썼다. 반차를 써도 아깝지 않은 지인이니까.
12시 30분에 만나서 5시 30분까지, 둘이서 무려 다섯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나에겐 어마어마한 일이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나에게는 정신노동이니까. 누군가와 한 시간만 대화해도 지치는 나인데 다섯 시간 동안 대화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화한 지 세 시간쯤 되었을까?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인이 앞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대로 눈을 감을 수는 없어서 입고 있던 재킷을 벗고, 앉은 자세를 고쳤다. 다행히 그걸로 위기를 극복했다.
내향인인 나에게 대화는 곤욕스럽다. 피곤한 일이다. 정신을 계속 집중해야 하니까. 생각하고 말하기를 반복해야 하니까. 나는 글을 쓸 때 말고는 뇌를 가동하지 않는다. 뇌를 움직이면 에너지가 소모되고, 에너지가 소모되면 몸이 피곤하니까. 그래서 아무 때나 뇌를 움직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화에 참여할 때는 억지로 뇌를 활성화해야 한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귀로 입력되는 정보를 처리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피곤이 쌓인다. 그러니 대화가 곤욕스러울 수밖에.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상대가 누군지가 중요하다. 상대에 따라 피로가 덜 쌓이거나 많이 쌓이니까. 편한 사람은 파로가 덜 쌓이고, 편하지 않은 사람은 많이 쌓인다.
편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하면 매우 불편하다.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공통분모도 없거니와 상대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에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다. 억지로 할 말을 만들어 내야 한다. 편하지 않은 사이라서 마주 앉아 있는 것도 힘든데 할 말까지 만들어 내야 하니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지치고, 말까지 하면 더욱 지친다. 그래서 가능하면 편하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만난다. 다른 사람과 만나면 굳이 내가 말을 안 해도 되니까. 말을 하지 않으면 덜 피곤하니까.
편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피곤하지 않다. 편한 사람, 친한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다. 지루할 틈이 없다. 지루하지 않으니 내 입에서는 말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신경 쓸 것도 없으니 신나게 떠든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친한 사람을 만나도 나를 포함해서 여러 명이 모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러 명, 네 명 이상이 모이면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듣고만 있는다.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니까.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아도 사람들이 대화하는데 지장이 전혀 없으니까. 그래도 아예 말을 안 하면 사람들이 나를 자꾸 신경 쓰고, 그것 때문에 나도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그러면 서로 마음이 불편해지니까 배려 차원에서 두세 마디 정도 보탠다. 말을 전혀 안 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지만.
나는 일대일로 대화하는 걸 가장 선호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세 명까지는 괜찮다. 일대일은 줄줄줄 말하고 이대일, 세 명까지도 어느 정도 말을 한다. 네 명 이상은 말을 안 해도 사람들이 나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지만, 셋이 모리면 다르다. 나 빼고 둘이서만 얘기할 수는 없으니, 내가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내 존재가 두드러지게 된다. 두 사람은 나를 계속 신경 쓰게 된다. 그래서 세 명이 모이면 두세 마디로 그치지 않고 수시로 말을 한다.
그게 아니라도, 세 명 정도 모이면 부담이 덜하다. 신경이 덜 쓰인다. 인원이 적어서 말실수하지는 않았는지, 두 사람이 내 말에 거북해하지는 않는지 같은 쓸데없는 걱정을 덜 한다. 애초에 거북해지지 않기 위해 세 명이 모일 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친한 사람으로 인원을 구성한다. 엄절 수 없이 나도 계속 말을 해야 하니까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내향인은 일대일이 편하다. 일대일도 누굴 만나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편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대화 시간이 길지 않다면 대화할 만하다. 친한 사람이라면 금상첨화다. 대화가 즐겁다. 신경 쓸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내 말에 상처 받지는 않았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무슨 말을 하든 이해해 줄 테니까. 그러니 몇 시간을 대화해도 피곤하지가 않다.
일대일에 한 명 더 추가되는 것까지는 괜찮다. 세 명도 대화하는 데 부담이 적다. 친한 사람이라면 일대일과 마찬가지로 덜 신경 쓰이니 대화가 피곤하지 않다. 말이 비교적 술술 나온다. 입이 하나 더 늘었기 때문에, 늘어난 입에 살짝 의존해서 일대일 때보다 말이 줄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벙어리처럼 있지는 않는다.
네 명 이상 모이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무척 피곤하다. 신경을 써야 하니까. 대화랄 듣고만 있어도 피로가 쌓인다. 입이 많으니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오니까. 쏟아지는 말들을 다 흘려 들을 수는 없으니,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집중하는 순간 에너지가 소모되고, 점점 체력이 고갈 된다. 게다가 한 마디라도 할라 치면 잠시 말이 끊긴 틈을 노려야 한다. 틈을 보려면 계속 신경 쓰고 있어야 하니 피곤하다. 그뿐이랴. 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신경 쓰게 되고, 신경 쓰다 보니 예민해지고 피곤해진다. 친한 사람이라도 다르지 않다. 세 명이 모였을 때는 에너지 소모가 덜하지만, 네 명이 모이면 마찬가지로 신경이 쓰인다. 사람들을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내향인은 피곤한 일이 생기지 않게 가능한 한 일대일 아니면 세 명이 모이는 걸 선호한다.
이번 주 금요일에 우리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한다. 부부다. 그럼 네 명이 되는 건데, 게다가 아내는 친하지만 나는 두 사람과 그리 친하지 않다. 아마 혼자 어색해하며 말을 별로 안 알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아내 친구 집에서 집들이 겸 부부 동반 모임이 있다. 무려 8명이 모인다. 네 명이서도 말을 안 하는데, 8명이니 나는 말을 아예 안 할지도 모른다. 가서 우리 아들만 돌보다 올지도 모른다. 갑자기 지난주 금요일이 그리워진다.
네 명 이상 모이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피곤하다. 산경을 써야 하니까. 입이 많으니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온다. 한 마디라도 할라 치면 잠시 말이 끊긴 틈을 노려야 한다. 틈을 보려면 계속 신경 쓰고 있어야 하니 피곤하다. 게다가 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신경 쓰게 되고, 신경 쓰다 보니 예민해지고 피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