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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Nov 22. 2019

혼자 일할 때 능률이 오릅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17

전에 다니던 회사는 팀 단위로 업무를 진행했다. 팀이라고 해봐야 하나 뿐이라 팀이라고 부르기도 뭣하지만, 어쨌든 업종 특성상 팀원 간 협업으로 업무 결과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때론 경쟁이 치열했고, 경쟁 구도 속에서 화합을 이루었다.

나도 맡은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퇴사할 때까지 팀원들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전부터 해보고 싶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를 맡았고, 생소한 분야였기에 남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하던 일은 해당 분야에 관한 지식과 정보가 축적되어야 일을 수월히 그리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지만, 나는 아직 지식과 정보가 백지 상태라 이미 상당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던 팀원들을 따라잡는 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팀 단위 업무 진행은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게 좋다. 다른 사람의 지시와 확인을 받는 것보다 혼자 계획하고 처리해야 능률이 오른다. 그렇게 일을 해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업무가 아무리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아도 혼자 하면 어떻게든 감당한다. 능히 처리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다거나 협업하거나 경쟁이 붙으면 능률이 떨어진다. 일 처리가 늦어진다. 압박을 받으면 머리가 굳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압박받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상황에 놓였을 때 집중도가 높아지고, 창의성이 발휘되며 능률이 오른다. 하지만 어떤 일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그렇게 일하기는 힘들다. 아니 프리랜서라도 그렇게 일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흔히 프리랜서라면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프리랜서도 프리랜서 나름이긴 하지만, 대개 클라이언트의 변화무쌍한 요구에 스트레스받고, 마감 시한으로 인해 압박받는다.




일이든 공부든 다른 무엇이든, 자유로운 환경에서 능률이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압박을 받고 경쟁해야 능률이 오르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내향인이고, 후자는 외향인이다. 물론 모든 내향인이 자유로운 환경을 지향하고, 모든 외향인이 압박받는 환경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내향인도 내향인 나름이고, 외향인도 외향인 나름이긴 하지만 보통 내향인은 혼자 일하는 걸 편하게 느낀다.

그렇다고 외향인은 혼자 일하는 걸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향인이든 외향인이든 다른 사람의 지시나 감시 혹은 압박을 피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혼자서 편하게 일하고 싶어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혼자’는 그런 의미에서 혼자가 아니라 업무를 진행하는 동안 끊임없이 회의하고, 경쟁하는 것과 대비하여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경쟁하지도 않은 채 홀로 계획하고 진행하며 결과를 내는 방식을 말한다. 알아서 하는 걸 말한다.

왜 내향인은 무언가를 혼자 처리하고 싶어 할까? 왜 혼자 처리해야 능률이 오를까? 경쟁 구도 속에서는 머리가 굳어지기 때문이다. 내향인은 심한 압박을 받으면 머리가 굳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거나 생각이 느려진다. 일처리를 제대로 못한다. 피 말리는 상황에서 머리가 하얘지는 건 비단 내향인 뿐만 아닐 것이다. 내향인은 머리가 마비되는 증상이 더 오래간다. 그러니 할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 혼자 하는 걸 선호한다.

또한 내향인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에 피곤을 느낀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비되는데 다른 사람과 소통하거나 경쟁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신경 써야 한다면, 피로가 두 배 이상 쌓인다. 일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으니, 일하는 데 당연히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향인은 혼자 놔두어야 한다. 일이든 공부든 알아서 하게 해야 한다. 외부에서 아무리 압박하고, 해야 할 이유를 주입해도 내부에서 납득할 수 없고 동의하지 않으면 내향인은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향인은 압박을 받으면 무엇이든 하기 싫어진다. 관심 갖던 일도 압박받는 즉시 관심이 사라진다. 해야 할 동기가 내부에서 일어나야 관심이 생기고 마침내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일 때는 집중력이 높아지고, 능률이 오른다. 외부에서 억지로 하게 할 때는, 해야 하니까 하긴 하지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잠깐 집중할 뿐이다. 능률이 떨어지니 결과가 좋을 수 없다.

내향인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해도 잘하지만 혼자 할 때는 더 잘한다. 단,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될 때만 말이다. 그러니 내향인을 둔 상사나 부모라면 부하 직원을, 자식의 그런 성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빨리 하라고 압박하고, 일과 공부 거리를 왕창 몰아준다면 해야 하니까 혼나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는 하겠지만,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런 결과물을 낼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맡은 업무는 대부분 혼자 처리한다. 종종 다른 직원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경쟁은 아니다. 업무량이 늘어 혼자 처리하기 힘들어질 때 도움을 받는 것뿐이다. 업무 속도와 진행은 나 혼자 계획하고 조율하고, 결과만 상사에게 보고한다. 전 직장과는 완전히 대비된다. 내 스타일과 딱 맞는다. 덕분에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역시 나는 혼자 알아서 일해야 능률이 팍팍 오른다.

일 뿐만 아니다. 무엇이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해야 잘한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게 낫다. 아무리 편한 사람과 있어도 혼자 있을 때보다 편할 수는 없으니까. 그럼 프리랜서를 해야 할까? 아니지. 프리랜서를 할 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설령 프리랜서를 하더라도 압박에 시달리면 능률이 떨어져 질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겠지.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지금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자. 지금 하는 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우니까.




내향인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해도 잘하지만 혼자 할 때는 더 잘한다. 단,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될 때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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