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21
남자는 단순하다고들 말한다.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해서 남자는 소위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면 동시에 다른 걸 하지 못한다. 반대로 무언가를 할 때 누군가 말을 걸면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다. 하던 일을 멈추어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
반면 여자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일을 하면서 대화하는 게 가능하다. 남자는 일을 하면서 대화를 하면, 일을 실수하거나 대화를 건성으로 하게 된다. 여자는 다르다. 일과 대화를 동시에 하면서 둘 다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일을 실수하지도 않고, 대화도 건성으로 하지 않는다.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멀티태스킹이 되는 남자도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여자가 멀티태스킹이 되는 건 아니다. 멀티태스킹 능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남자는 멀티태스킹이 안 되고 여자는 멀티태스킹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나도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남자로서, 다른 하나는 내향인으로서 말이다.
앞서 남자에 대해 말했듯이, 내가 딱 그 짝이다.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하지 못한다. 한 번에 한 가지밖에 집중하지 못한다. 가령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면 대화에 집중을 못하거나 일에 집중을 못한다. 그러다가 대화가 길어지면 신경이 분산된다. 결국 이도 저도 안 된다.
또한 내향인으로서 나는 두 가지에 동시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건 남자로서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아니 아예 다르다고 해야 할까?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면 가능한 한 듣기만 한다. 대화에 참여하면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고, 멀티태스킹을 하면 피곤해지니까. 대화하는데 무슨 멀티태스킹을 하냐 싶겠지만, 관심 있게 살펴보지 않고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다양한 행위를 동시에 한다.
우리는 대화할 때 단순히 말하고 듣기만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말 뜻을 해석해야 하고,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올바른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의 바디랭귀지와 표정을 판독해야 하고, 내가 말할 때 적절한 바디랭귀지를 생각해서 구사해야 한다. 상대의 말에 적절하게 반응해야 하고, 상대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 외에도 처리하는 일이 더 있지만, 아무튼 우리는 대화하며 이 모든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멀티태스킹을 한다.
외향인이라면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겠지만, 내향인은 그렇지 못하다. 대화가 시작되고 처음 얼마간은 순조롭게 CPU(뇌)가 가동된다. 하지만 대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버벅거린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결국 과부하가 걸려 뇌가 진공 상태가 되어버린다.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듣기만 하는 상태가 된다.
내향인은 누군가와 대화할 때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처리해야 할 작업들을 동시에,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다. 말을 하면서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두 가지 작업을 버겁게 처리한다. 그게 뭐 어렵다고 처리하지 못하나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향인은 그렇게 단순히 넘어가지 않아서 그렇다.
가령 내향인은 상대의 표정을 스캔한 후에 머리를 빠르게 굴린다. 표정에 담긴 정보와 의미를 해석하고 또 해석한다.
‘내 말에 기분이 나빴나?’
‘어디 불편한가?’
‘저건 동의한다는 표정인가?’
‘아싸, 웃었다.’
‘왜 인상을 쓰고 있지?’
표정을 한 번 훑고, ‘표정이 안 좋군’까지만 생각해도 되는데 한 단계 아니 두세 단계 더 나아가서 생각한다. 그러니 간혹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화 주제에 대해 깊고 다양하게 생각해 본다거나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미리 가늠해보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한 가지에만 고도로 집중하다 보니 동시에 여러 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실 대화 중에 어느 하나에만 집중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괜한 에너지 낭비를 하는 것이다. 회사 간에 협상 테이블에서처럼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는 게 아닌 이상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는 다른 작업은 하지 말고, 그저 표면적인 정보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과부하가 안 걸린다. 하지만 어쩌랴. 기질의 특성인 것을. 내향인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그러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내향인이 멀티태스킹을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 가지에만 과도하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집중하지 않고, 느슨하게 집중한다면 이것저것 동시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향인은 무언가에 집중하는 습성이 있어서, 태성적으로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 물론 연습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렇게까지 연습하는 내향인이 있을까? 특별한 상황과 그럴 만한 계기가 있지 않고서야 살던 대로 살기 마련이다. 그게 편하니까.
내향인이 멀티태스킹을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 가지에만 과도하게 집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