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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Dec 12. 2019

나는 우울질입니다만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22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기질을 네 가지로 나눴다. 다즙질, 흑다즙질, 다혈질, 점액질이다. 그는 이 네 가지 체액 중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많으냐에 따라 기질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히포크라테스의 4대 기질론을 바탕으로 오늘날 ‘히포크라테스 기질 테스트가 만들어졌다. 히포크라테스 기질 테스트는 개인의 기질을 다혈질, 우울질, 담즙질, 점액질로 나누어 각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을 설명한다.

나는 네 가지 중에 하필 우울질이다. ‘하필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해지고, 그게 사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약해진다. 나는 육체 건강이 안 좋아지면 정신 건강도 나빠진다. 몸에 피로가 쌓이면 무조건 기분이 우울해진다.


몸 상태가 안 좋아질 때뿐만이 아니다. 아무 때나 우울 모드에 빠진다. 이제 우울 모드 가동~하며 우울해지는 게 아니다.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그런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크고 나서야 내 기질 때문이라는 걸 알고 안도했다.

기분이 우울해지면, 나도 모르게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 세상에  태어나서  고생이야, ‘앞으로 얼마나  살며 고생해야 하지?,  나는 평생 일벌레로 살아야 하는 거야등 온갖 우울한 생각을 하며 삶을 저주한다.

한때는 너무 자주 우울감에 젖어서 이러다 우울증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자존심이 세다. 정신적인 문제로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아서 우울증 문턱까지 갈 때마다 얼른 정신을 낚아챘다.




희한하게도 우울질은 내향인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희한할 것도 없다. 당연한 거니까. 우울질(과 점액질)은 내향적 기질이니까. 그래서 기질 테스트를 하면 내향인은 주로 우울질이나 점액질로 결과가 나오고, 외향인은 다혈질과 담즙질로 나온다.

내향인은 기질상 우울질일 수밖에 없다. 외향인처럼 에너지를 밖으로 방출하는 게 아니라, 내부에 가둬 두니까. 다시 말해서 관심을 외부 세계에 두고 생각과 행동을 외부로 향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에만 관심을 갖고 내부 세계에 빠져드니까, 어두운 자기 안에만 갇혀 있으니 당연히 우울질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내부에 가둬둔 에너지를 응축하고, 자신에 대한 관심을 덕후 기질로 바꾸면 예술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향인은 우울감을 선용하지 못하고, 그저 ‘ 우울해~하고 혼자 몸부림치는 걸로 그친다. 이건 국가적인 손해다(?). 예비 예술가들이 세계적인 예술가로 거듭나지 못하니까. 예술가로 데뷔 조차 못하니까.

내향인은 참 미련하다. 세계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음에도 그저 우울증 환자가 되고 마니까. 내향인은 걸핏하면 우울감에 젖어든다.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은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감성 모드로 들어간다. 감성 모드에 혼자 빠져들면 다행이지. 때때로 음울한 기운을 주변에 마구 흩뿌린다. 세상 다 산 듯한 표정을 짓고, 세상 고민을 혼자 다 짊어진 듯 괴로워하며 주변 사람들이 눈치 보게 만든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어둠의 기운을 방출하여 주변 사람들도 우울함으로 물들인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울감을 퍼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울해진 날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일 없는 듯, 밝은 척한다. 보통은 혼자 방구석에 처박힌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울해지면 나가기가 싫다.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꼴 보기 싫으니까. 저들은 저렇게 행복한데, 나는  이리 불행하고 힘들까괜히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질투하게 되니 방구석에서 혼자 괴로워하는 쪽을 택한다. 딱히 부족하다거나 잘못된 것도 없는 내 삶에 불만을 갖는다.

이것도 그리 솔직한 말은 아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나가기 귀찮다. 우울하지 않을 때도 나가기 귀찮은데, 우울해진 날이면 더욱더 나가기 귀찮다. 그래서 우울한 날은 방콕에 머물며 내 안에 있는 심연의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유럽에는 흐린 날이 많아서 - 유럽도 유럽 나름이겠지만 어쨌든 - 유럽 사람들은 우울증 지수가 높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Gloomy Sunday가 유럽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을 때 노래 분위기와 흐린 날씨가 맞물려 자살 사건이 줄줄이 벌어졌다고. 믿거나 말거나.

시도 때도 없이 우울감에 젖어드는 나이지만, 사실 나도 우울해지고 싶지는 않다. 나도 밝게 살고 싶다. 우울한 상태에 머무는 게 그리 달갑지 않으니까. 우울하면 기분이 불쾌하니까.

아마 우울한 기분을 일부러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아니, 지구 상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 물론 우울감이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 같다. 적당한 우울감은 감수성을 높여주어서 예술 활동, 창작 활동에 촉매제가 되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내게는 우울감이 쓸모없다. 예술가가 아닌 바에야 우울감으로 촉발되는 감수성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나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인이니, 내게 감수성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아니다. 아내와 연애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꾼이라고 불렸다. 그게 다 우울질을 기반으로 한 감수성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우울감이 꼭 쓸모없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은 취소.

어쨌거나 외향적으로 변하면 우울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아니, 외향적이라고 해서 우울감에 빠지지 않는 게 아니거니와 내향적인 기질을 쉽게 바꿀 수는 없으니 쓸데없는 생각이다. 나는 그냥 우울이와 친구가 되련다.




희한하게도 우울질은 내향인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희한할 것도 없다. 당연한 거니까. 우울질(과 점액질)은 내향적 기질이니까. 그래서 기질 테스트를 하면 내향인은 주로 우울질이나 점액질로 결과가 나오고, 외향인은 다혈질과 담즙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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